Esther Schipper Seoul의 올해 첫 전시《Still Life: Objects of Our Time》은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15인의 작가가 참여한 그룹전으로 구성되었다.


전시 장면 / 사진 제공: 에스더 쉬퍼 갤러리




전시 장면 / 사진 제공: 에스더 쉬퍼 갤러리




전시 장면 / 사진 제공: 에스더 쉬퍼 갤러리

이 전시는 정물화라는 오래된 회화 장르를 동시대의 조건 속에서 다시 호출하며, 사물이 오늘날 어떤 방식으로 감각되고 해석될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세대를 가로지르며, 각자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운 정물화를 제작했다. 전시는 정물화를 단순한 재현의 형식이나 미술사적 관습으로 다루기보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동시대 문화 속에서 사물이 지니는 기억, 감정, 사회적 맥락을 회화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정물은 더 이상 정지된 대상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장면으로 기능한다.


권세진, 〈메모리 스케이프_케이크〉, 2025, 한지에 아크릴, 60 × 45 cm / 사진: 에스더 쉬퍼 갤러리

권세진의〈메모리 스케이프_케이크〉는 케이크와 촛불이라는 익숙한 축하의 이미지를 호출하면서도, 흰 안료의 중첩과 붓질의 흔적을 통해 기억의 관습성을 밀어낸다. 이 작품에서 사물은 기념의 표상이 아니라, 흐릿해지고 재구성되는 기억의 풍경으로 전환된다.


문성식,〈붉은 장미가 있는 정물〉, 2025, 린넨에 라이트 모델링 페이스트, 은박, 알루미늄 포일, 목탄 분말, 과슈, 아크릴, 60.6 × 45.5 cm / 사진 제공: 에스더 쉬퍼 갤러리

문성식의〈붉은 장미가 있는 정물〉는 장미 연작의 연장선상에서, 알루미늄 포일이라는 새로운 표면을 도입함으로써 작가와 대상 사이의 관계를 재설정한다. 압력과 속도에 민감한 표면 위에 남겨진 선들은 사물에 대한 친밀한 접근보다는, 회화 행위 자체에 내재한 거리감과 긴장을 드러낸다.


방정아,〈신경 쓰이는 관계〉, 2025, 캔버스에 아크릴, 45 × 60 cm / 사진 제공: 에스더 쉬퍼 갤러리

방정아의〈신경 쓰이는 관계〉는 서로 닮은 두 사물 사이에 형성되는 미묘한 관계에 주목한다. 이 작품에서 관계는 인간의 시선 이전에 이미 발생한 사건처럼 제시되며, 관람자는 사물을 관찰하는 주체가 아니라 또 하나의 존재로서 이 관계 앞에 서게 된다.


박신영,〈What Lies Before Us〉, 2025, 종이에 실크스크린, 실크스크린 모노타입, 수채, 60.8 × 45.5 cm / 사진 제공: 에스더 쉬퍼 갤러리

박신영의〈What Lies Before Us〉는 동시대의 구조적 혼란과 역사적으로 축적된 사건의 잔여들을 정물의 형태로 응축한다. 작품 속 사물들은 현재를 둘러싼 불안과 위기의 징후를 암시하는 기호로 기능하며, 정물화가 시대의 징후를 기록해온 장르라는 점을 다시 환기한다.


유근택,〈연기와 촛불〉, 2025, 캔버스에 한지, 유채, 60.8 × 45.5cm / 사진 제공: 에스더 쉬퍼 갤러리

이 외에도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정물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김진희와 김지원은 반복과 중첩의 구조를 통해 사물이 지닌 시간의 축적과 사용의 흔적에 주목한다. 이들의 작업에서 정물은 완결된 대상이라기보다, 반복된 행위와 리듬이 남긴 결과로서 제시되며, 노동과 시간의 감각은 화면의 구성 방식 속에 스며든다.
 
민정기와 임노식은 정물과 풍경, 개인적 기억과 사회적 맥락을 교차시키며 사물을 보다 넓은 역사적 시선 속에 위치시킨다. 사물은 일상의 일부로 등장하지만, 그 배치와 맥락을 통해 한국 사회의 시간성과 장소성을 환기한다.
 
이진주와 정수정은 섬세한 화면 구성과 색감을 통해 사물의 정서적 분위기를 조율한다. 이들의 정물은 명확한 서사를 제시하기보다, 화면 속 밀도와 간격을 통해 감정의 흐름을 형성한다.
 
류예림은 재료와 감각의 층위에 집중하며, 사물을 시각적 대상이 아닌 감각적 경험에 가까운 존재로 다룬다.
 
전병구, 선우, 한진의 작업 역시 사물의 배치와 구성 방식을 통해 시선과 관계의 문제를 탐구하며, 정물화를 동시대적 회화 언어로 확장한다.
 
《Still Life: Objects of Our Time》은 정물화를 과거의 장르로 고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전시는 사물이 여전히 동시대적 질문을 생산할 수 있는 유효한 매개임을 보여준다.
 
말 없는 사물들은 화면 속에서 침묵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한국 사회의 기억과 현재, 그리고 회화라는 매체의 가능성이 응축되어 있다.
 

 
전시정보
 
전시제목 :Still Life: Objects of Our Time
기획 : 채민진
참여 작가 : 권세진, 김진희, 김지원, 민정기, 문성식, 박신영, 방정아, 임노식, 이진주, 유근택, 류예림, 전병구, 정수정, 선우, 한진
전시 기간 : 2026.1.14 – 2.14
관람 시간 : 화–토 11:00–18:00
전시 장소 : 에스더 쉬퍼 서울 (서울 종로구 북촌로 40)
웹사이트 / 인스타그램 : estherschipper.com / @estherschip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