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도위도I>, 2025, Oil on linen, 180x220 cm ⓒ 정수진, 이미지 S2A 제공
정수진의 개인전《부도위도(不圖爲圖)》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그릴 수 있으며, 무엇을 결코 그릴 수 없는가
라는 질문을 통하여, 회화를 ‘인식의 구조를 가시화하는 매체’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전시이다.
“Budo Wido (不圖爲圖)”는 눈에 보이는 형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지각·사유·의식의 구조처럼
직접 볼 수 없는 것들에 형태를 부여하여 이미지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가 그 동안 구축해온 색(色)과 형(形) 체계 역시
단순한 시각적 추상화나 조형적 실험이 아니라, 의식의 구조를 시각적 패턴으로 변환하기 위한 도구라 할
수 있다.
<극미와 극대 사이의 붓질이 만든 정물화>, 2025, Oil on
linen, 180x220 cm ⓒ 정수진, 이미지
S2A 제공현실계가 물리적 세계라면, 형상계는
그 세계를 바라보는 무수한 관점의 중첩이다. 그의 화면은 이 두 층위가 닿는 좁은 틈, 즉 인식의 구조가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지점에서 생성된다.
그러므로 ‘그릴 수
없는 것을 그린다’는 것은 단순히 추상적 형식의 제시나 재현의 결과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인 감정·지각·사유·무의식을 하나의 시각적 구조로 조직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릴 수 없는 감정, 언어화되지
않는 사유, 포착되지 않는 인식의 미세한 떨림. 정수진의
화면은 이 미세한 구조적 흔들림을 포착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병의 반복된 형상, 색의
편차, 선의 비껴난 배열은 감정을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이 사라진 자리에서 남는 의식의 잔향을
드러낸다. 이 잔향의 층위는 색면 추상이나 형식적 회화의 문법과는 다른, 더 느리고 미세한 파동으로 작동한다.
그 결과 전통적 회화의 감정 표현 방식이 아닌, 감정이 제거된 후 남는 의식의 구조적 흔적이 화면을 지배한다. 따라서 정수진이 말하는
“그리지 않는 것을 그린다”는 의미는 단순한 반(反)재현적 태도가 아니라, 이미지를
가능하게 만드는 근원적 상태에
대한 질문이다.
<극미와 극대 사이의 붓질이 만든 느낌의 시공간>, 2025, Oil
on linen, 180x220 cm ⓒ 정수진, 이미지
S2A 제공지난 수십 년간 한국 미술계에서 회화는 재현과 비재현, 서정적 추상과 개념적 추상 사이를 넘나들며 서양 회화의 역사에서 수없이 보여진 ‘회화 자체의 조건’을 검증해 왔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디지털 이미지 환경의 확산은 오히려 화면의 질서와 물질성 그리고 조형적 균형을 탐구하는 전통적 방식을 통하여 회화의 역할을 재정의해왔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정수진의 회화는 이미지의 완성이나 조형적 완결성이 아니라, 이미지가 출현하기 이전의 상태, 형태가 결정되기 전의 인식의 진동 등 인간의 의식이 어떠한 시각적 언어로 대응
가능한가를 탐구한다는 점에 그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균일한 단절>, 2025, Oil on linen, 100x100 cm ⓒ 정수진, 이미지 S2A 제공
따라서 정수진의 회화는 “추상
회화”라는 범주로 환원되기를 거부하며 시각적 단순화나 조형적 질서의 구축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가 현실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지각의
구조적 조건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수진의 회화는 21 세기 한국 동시대 회화를 어떻게 규정하고 바라 볼 것인가에 대해 하나의 중요한 시사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부도위도》 전시 전경 ⓒ 이미지 S2A 제공

《부도위도》 전시 전경 ⓒ 이미지 S2A 제공

《부도위도》 전시 전경 ⓒ 이미지 S2A 제공

《부도위도》 전시 전경 ⓒ 이미지 S2A 제공

《부도위도》 전시 전경 ⓒ 이미지 S2A 제공
정수진의 회화는 보이지 않는 세계는 어디에 존재하며,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감각될 수 있는가. 그리고 인간은 어떤 시간
속에서 그 세계와 접속하는가를 묻는다.
정수진에게 회화는 감각적 이미지의 조합이 아니라, 인식 작용을 기록하는 구조적 기호 체계로서 감정·인지·관찰·무의식을 구조화하기 때문에 물질적 표면은 최소화되고, 화면은 하나의 인식의 지도로서 회화를 언어적 체계로
재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작가가 수년간 축적해온 사유 체계를 회화라는
구조적 장치 안에서 본격적으로 선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또한 한국 동시대 회화의
이미지 과잉과 재현적 현상을 넘어 회화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새롭게 환기하는 중요한 전시라 할 수 있다.

정수진 작가 ©노블레스
작가 소개
정수진(1969-)은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SAIC)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쌈지 레지던시와 두산 레지던시 뉴욕 등을 거치며 작업세계를 확장해왔고,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시립미술관(SeMA), 파리 에스파스 루이 비통, 국립타이베이현대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기관 전시에 참여해왔다.
이번 개인전 《부도위도》는 2025년
프리즈 서울의 솔로 부스에서 주요 관심을 받으며 국제적 위상을 강화한 이후, 그의 사유적 회화 세계가
본격적인 구조적 체계로 전개되는 첫 번째 전시라 할 수 있다.
전시 정보
전시 제목 : 정수진
개인전《부도위도(不圖爲圖)》
전시 기간 : 2025.11.11.(화) – 2026.1.10.(토)
전시 장소 : S2A 전관 (서울특별시 강남구 영동대로 325, S-Tower 1층)
주최/주관 : S2A (Space 2 Art)
연락처 : T.
02-6252-7777 / www.s2a.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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