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 Unstill〉, 2025,
Oil on canvas, 162 × 227.3 cm
임선희 작가의
개인전《STILL UNSTILL》은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강박과 이중성, 그리고 그 불안한 아름다움을 동시대 바니타스 정물화로 재해석한 전시다.
작가는 “멈춰 있으나 멈춰 있지 않은(still yet unstill)” 존재의
역설을 정물이라는 고요한 형식 안에서 섬세하게 포착하며, 인간이 감추고 외면해온 내면의 균열을 예술적
언어로 드러낸다.
임선희는 2000년대 초반부터 미디어 이미지와 자아의 문제를 다뤄왔다. 초기작
〈Hello, I’m Sunhee〉(2003)에서
드러나듯, 영화나 뉴스, 드라마 속 대중문화적 도상에 자신을
복제하는 작업을 통해 “이미지로 규정된 자아”를 탐구했다.
이후 〈Wonder_self〉(2004), 〈Wonder_people〉(2006)에서는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감정과 정체성의 코드화를 해석하며, 자아의 사회적 구성 방식을 비판적으로 조명했다.
작가의 관심은
점차 ‘타자화된 자아’에서
‘매체로서의 회화’로 이동했다. 2015년 개인전
《The Flat》(인천아트플랫폼)에서 임선희는 “평면성”과 “색채”의 문제를 통해
회화의 본질을 다시 묻기 시작했다.
세잔 이후 제기된 회화의 자율성,
마티스의 색채적 평면화, 리히터의 매체적 회화 실험 등 서구 회화사의 주요 논점을 자기
언어로 번역하며, 시각적 구조와 감정적 울림을 동시에 추구했다.
이후 〈The Medium: Layered, Lined〉(2019)에서는
색채, 붓질, 레이어, 선의
관계를 통해 “회화에 대한 회화”를 실험했다. 이 시기의 작품은 평면의 구축과 해체가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하며, 회화를
하나의 ‘조형적 구조물’로 제시했다.

〈King Charles Spaniels〉, 2019, Oil on canvas, 145.5 x 112 cm
전통적인 원근감과 공간감을 버리고 일정한 크기로 표현된 강아지들의 정면 배치를 통해 화면을 구성하여 작가가 색채와 붓놀림으로 대상의 평면성을 강조한 작품이다.

〈Layered Pink Cake and Blue Guitar I〉, 2019, Oil on canvas, 227 x 162 cm
대상들은 재현적 묘사로 그 형태가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물감의 농도, 다양한 색의 활용으로 구분되어지고 평면적 화면 위에서 각각의 형태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탐구의
연장선에서 탄생한 ‘STILL UNSTILL’은 그 동안 탐구해 온 회화적 형식과 주제를 작가 개인의
삶과 시각으로 전환시켰다는데 의의가 있다.
팬데믹 이후
사회적 고립과 불확실성의 시대를 직접 체험한 작가는, 욕망과 불안, 무거움과
가벼움, 삶과 허무가 교차하는 내면의 진폭을 시각적으로 재구성한다.
17세기 네덜란드 바니타스 정물화가 죽음과 허무의 은유였다면, 임선희의 바니타스는 ‘살아 있음의 불안’을 직면하는 동시대적 형식이다.

〈Still Life with Black Jug and Fruits〉, 2023, Oil on canvas, 60 x 64 cm
부서지기 쉬운
도자기, 시들어가는 꽃, 부패를 앞둔 과일 등은 모두 덧없음의
상징이지만, 작가는 그 표면의 빛과 질감을 통해 오히려 생의 강렬한 리듬을 불어넣는다.
이 모순적 긴장—아름다움과 위태로움의 공존—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밝은 시선과
인간적 깊이를 보여준다.

〈Still life with Cheetah Lamp〉, 2023, Oil on canvas, 115 x 88 cm
특히 이번 전시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제시된 ‘키치(kitsch)’
개념을 중심축으로 삼는다.
쿤데라가 말한 “키치는 존재로부터 똥을 제거하는 절대적 부정”이라는 정의처럼, 작가는 오늘날 사람들이 불편한 진실을 삭제하고 자극적이며 표피적인 아름다움 만을 소비하려는 태도를 예술적으로
비판한다. SNS와 인간의 허위의식이 만들어낸 ‘필터된 현실’은 바로 그 키치의 동시대적 재현이다.
임선희의 정물화는
이 ‘진실의 삭제’ 시대에 반응하는 회화적 저항의 언어다. 예술은 다시 복잡한 감정과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는 것을,
그녀의 화면은 조용히 증명한다.
대표작〈Still Unstill〉에서 도자기는 인간의 연약함을, 꽃은 순간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을, 과일은 풍요와 동시에 부패를 상징한다. 이들이
한 화면 안에서 긴장과 조화를 이루며, 인간 내면의 모순은 미학적 균형으로 전환된다. 정물의 정적(靜寂) 속에는
파동이 있고, 평온의 표면 아래에는 불안을 품은 생명의 리듬이 흐른다.
결국《STILL UNSTILL》은 ‘불안과 강박의 시대에 예술이 존재를
증언하는 방식’을 묻는 전시다. 작가는 정지된 사물들을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의 끊임없는 흔들림을 드러내며, 완벽함의 환상 속에 감춰진 결핍을 드러낸다.
고요함과 긴장, 아름다움과 허무, 현실과 이상이 교차하는 그 경계에서, 임선희의 회화는 “우리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으며, 그 흔들림 이야말로 우리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인간적인 진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임선희 작가 / 사진:임선희
임선희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회화·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서양화 전공으로 조형예술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회화와 미디어를
아우르는 실험적 접근을 통해 현대 사회 속 인간의 내면과 존재를 탐구해 온 그는 지금까지 14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서울시립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 아르코미술관, 일민미술관 등 국내 주요 기관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또한 한국현대판화공모전과
송은미술대상전에서 입상 및 선정됐고, 국립창작스튜디오(창동레지던시)와 인천아트플랫폼의 입주작가로 활동한 바 있다.
현재는 서울과
인천을 중심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시정보
제목:《STILL UNSTILL》
장소: 부연 (인천 중구 개항로 106번길 8)
기간: 11월 3일(월) – 11월 15일(토)
Instagram: @buyeon.site / @joah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