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서울에서 각각 개막하는 티노 세갈(Tino Sehgal)과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의
전시는 스케일과 담론적 밀도 모두에서 2026년 국내 최대 이벤트로 평가된다.
두 전시는 단지 ‘해외
유명 작가들의 빅 이벤트가 아니라, 동시대 미술이 지난 30년간
어떤 방식으로 가치를 생산해왔는지를 양 극단에서 비교 가능하게 만드는 극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티노 세갈, 비물질적
조각과 제도의 재구성
세갈은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적어도
전통적인 의미에서 그렇다. 그는 오브제를 제작하지 않으며, 사진·영상 기록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작품은 오직 ‘상황(constructed situations)’을 통해 존재한다. 퍼포머는 작가가 설계한 구조 안에서 관객에게 말을 걸고, 움직이며, 노래하거나 질문한다. 그 순간의 관계적 사건이 곧 작품이다.
무용과 정치경제학을 공부한 이력은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핵심 배경이다. 세갈은 예술을 노동, 교환, 제도, 가치 생산 구조의 문제와 연결해 사유한다. 작품은 판매되지만, 계약서는 작성되지 않고 구두 합의로 거래된다. 이는 예술 제도의
법적·물질적 기반을 의도적으로 비틀어, ‘작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도 내부에서 재가동시키는 전략이다. 작품은 실행 속에서만
존재하고, 실행이 끝나는 순간 사라진다.
그의 대표작〈This
Progress, These Associations〉는
관객을 작품의 일부로 편입시킨다. 관객은 작품을 “본다”기보다 “겪는다”. 그
경험은 반복될 수 없고 복제될 수도 없다. 세갈은 미술관을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관계가 생산되는 공간으로 전환시킨다.

2012년 테이트 모던 터빈 홀에서 열린 티노 세갈의 유니레버 시리즈 커미션 작업 〈These Associations〉 / Photo credit : Jo Higgins
Solomon R.
Guggenheim Museum, Tate Modern, Centre Pompidou 등 주요 기관에서의 개인전, 그리고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은 비물질적 실천이 국제
제도권의 중심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세갈은 관계미학 이후의 조건을 제도적 차원에서 재구성한
작가로 평가된다.

2004년 구겐하임에서 열린 티노 세갈의 퍼포먼스 작업〈키스〉/ 사진: Too Much Art
국내 제도는 오랫동안 오브제 중심, 기록 중심의 전시 구조에 기반해 왔다. 세갈의 전시는 아카이브와
소장 개념, 작품 보존 방식, 관람객의 역할을 동시에 재사유하게
만든다. 전시는 하나의 ‘전시’라기보다, 미술관이라는 장치를 실시간으로 시험하는 구조적 실험에 가깝다. 비물질성은 여기서 부재가 아니라, 제도의 전제를 드러내는 방법이
된다.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모습 / 사진 : 가디언
이러한 관점에서 티노 세갈의 이번 개인전은 단순한 쇼를 넘어 한국
동시대 미술관의 운영구조 자체를 총체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급진적 시도라 할 수 있다.
데이미언 허스트

데이미언 허스트,〈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서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1991.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Artimage 2018. Photo: Prudence Cuming Associates Ltd.
이미지, 죽음, 시장 — 현대 신화의 구축
허스트는 1990년대
영국 YBA 세대를 대표하며, 동시대 미술과 글로벌 아트
마켓의 관계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 인물이다. 포름알데히드에 보존된 상어(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점 회화(Spot
Paintings), 나비 회화, 약장 캐비닛 시리즈 등은 생명과 죽음, 신앙, 과학, 소비 문화의
상징 체계를 결합한다.

데이미언 허스트,〈약국(Pharmacy)〉, 1992. 유리, 페인트, 강철, 나무, 알루미늄, 플라스틱, 혼합매체 설치. 약품병, 약장, 의약품 패키지, 조명 등을 포함한 공간 설치 작업.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1992년 뉴욕 코헨 갤러리(Cohen Gallery, New York)에서 최초 발표.
허스트의 작업은 미학적 차원과 시장 구조를 분리하지 않는다. 그는 2008년 경매를 통해 갤러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작품을 판매하는
전략을 구사하며 미술 시장의 권력 구조를 전복적으로 활용했다. 이는 예술과 자본의 관계를 노출시키는
동시에, 예술가의 브랜드화와 산업화에 대한 논쟁을 촉발했다.
비평적으로 볼 때, 그의
작업은 죽음과 숭고, 장식성과 반복, 산업적 생산 시스템을
병치한다. 스튜디오 시스템은 전통적 ‘작가-수공’ 개념을 넘어, 개념
설계와 제작 분업 구조를 전면화한다. 이는 현대 예술이 ‘작품’이 아니라 ‘구조’로 작동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데이미언 허스트,〈천 년 (A Thousand Years)〉, 1990, 유리, 강철, MDF, 파리, 구더기, 소의 머리, 설탕, 물, 인섹트-오-큐터(Insect-O-Cutor), 설치 /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세갈의 전시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경험으로 기억된다. 허스트의 전시는 이미지의 축적으로 기억을 구성한다. 그러나 두 작가는
공통적으로 예술을 단순한 미적 대상이 아니라, 가치가 생성되는 구조로 다룬다. 하나는 구조를 비워내고, 다른 하나는 구조를 극대화한다.
한국은 최근 글로벌 아트 마켓의 주요 허브로 부상했다. 이 맥락에서 두 작가의 전시는 단순한 스타 작가 초청을 넘어, 예술과
자본, 제도와 브랜드, 대중성과 비평적 가치 사이의 긴장을
가시화하는 사건으로 읽힌다.
세갈이 ‘비물질’을 통해 제도를 흔든다면, 허스트는 ‘과잉의 물질’을 통해 제도의 구조를 가시화한다. 한쪽은 완벽한 소거를 통해 예술의 본질을 질문하고, 다른 한쪽은
물성의 극대화를 통해 적나라하게 모든 것을 노출한다. 2026년 3월
서울에서는 이 양 극단에서 펼쳐지는 두 전략을 ‘우연히’도
동시에 목격하는 필연적 행운을 맞이한다.
전시 정보
티노 세갈 (Tino
Sehgal)
전시명:《티노 세갈 (Tino Sehgal)》
장소: 리움미술관
기간: 2026년 3월 3일 – 6월 28일
위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웹사이트: https://www.leeum.org
데이미언 허스트
(Damien Hirst)
전시명:《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There Is No Truth, Yet Everything Is Possible)》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기간: 2026년 3월 20일 – 6월 28일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0
웹사이트: https://www.mmc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