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동시대 미술, 그
영향력’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Korea Art Market
2025》가 공개한 Power 20은 한국 미술시장에서 영향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다. 올해
명단이 말하는 핵심 변화는 단순하다.
영향력은 더 이상 하나의 지점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과거 시장의 중심이었던 소수의 컬렉터와 기관이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제 그들의 영향력은 여러 새로운 주체들과 나란히 놓이며 재구성되고 있다.

8년만에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으로 복귀한 홍라희 — 한국 미술 컬렉션 구조의 역사적 중심축
삼성가의 방대한 컬렉션을 기반으로 한국 동시대미술의 전시 구조와 시장 분위기에 장기간 영향을 미친 대표적 인물이다. 제도 운영과 컬렉션 전략 모두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지녀왔으며, 전통적 권력을 상징하는 인물로 분석된다. / 사진: 세계일보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는 작가,
기업의 문화전략 담당자, 미술 플랫폼 운영자, 대중적
확산력을 가진 인물들이 모두 영향력의 일부를 담당하는 구조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미술계 내부의 힘만으로 시장을 설명할 수 없는 시대가
열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향력은 미술·대중·기업·도시 정책이 서로 연결되는 지점에서 발생하며, 그 흐름은 점차 복잡해지고 다층화되고 있다.
전통적 권력의 위치는 유지되지만 중심성은 분산된다
Power 20에는
여전히 한국 미술계를 오랫동안 지탱해온 주요 컬렉터들과 기관 관계자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들의 영향력은
과거처럼 절대적이지 않다.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려난 것이 아니라, 중심이
여러 개로 나뉜 구조 속에서 상대적 위상을 조정해가고 있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미술 시장은 더 이상 자본 중심의 단일 구조로 움직이지 않는다. 과거에는 큰 구매력을 가진 컬렉터가 시장의 방향을 결정했다면, 지금은
그 힘이 플랫폼에서의 노출, 글로벌 기관과의 네트워크, 팬덤
문화의 확산, 기업의 문화전략 등과 결합해 상대적 위치를 새롭게 형성한다. 전통적 권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더 이상 시장 흐름을 단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영향력의 생산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서도호 — 글로벌 제도권에서 작가 중심 영향력을 확립한 인물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지속적으로 전시하며 한국 작가의 국제적 위상을 넓혀온 대표적 사례다. 작품 세계 자체의 힘뿐 아니라, 작가 개인이 국제기관과 직접 연결되는 네트워크 구조가 influence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상징한다. / 사진: 아트선재센터
2024–2025년
시장 변화가 촉발한 영향력의 재구성
최근 1~2년간 한국
미술시장은 구조적 변화를 겪었다. 갤러리들은
단기적인 판매 성과보다 장기적인 신뢰 구축과 국제적 협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하고 있다. 이는
작가 육성과 기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시간축을 길게 보는 운영 방식’으로, 시장의 안정성과 국제적 연결 가능성을 동시에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다.

티나 김
뉴욕 티나 김 갤러리의 설립자이자 디렉터인 티나 김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갤러리스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박서보, 하종현 등 단색화 작가들을 뉴욕에 소개하며 국제적 인지도를 확장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고, 강서경의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 참여와 이미래의 테이트 모던 개인전 등 주요 국제 전시를 지속적으로 지원해왔다. 어머니 이현숙이 이끄는 국제갤러리와의 협업을 통해 한국 동시대 미술의 글로벌 위상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 사진: 티나킴 갤러리. 촬영: Vincent Tullo.
아트페어는 단순히 거래를 위한 이벤트에서 벗어나 도시와 결합된 문화 인프라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페어가 만들어내는 인구 이동과 도시의 문화적 활력은 시장을 넘어 사회적 효과까지 파급하며, 페어는 점점 더 ‘도시 플랫폼’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패트릭 리 & 권민주
두 사람은 2022년부터 프리즈 서울을 공동으로 이끌고 있다. 갤러리현대 전무이사를 역임한 패트릭 리는 프리즈의 첫 아시아 에디션인 프리즈 서울을 총괄하며, 이를 글로벌 교류의 핵심 플랫폼으로 성장시켰다. 아시아 VIP 및 비즈니스 개발 총괄인 권민주는 2018년 프리즈에 합류한 이후 아시아 VIP 네트워크를 관리해 왔으며, 네 차례의 프리즈 서울을 공동 운영하며 행사의 성공을 조율하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옥션 시장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투기 중심의 단기적 가격 변동을 좇던 흐름이 잦아들고, 작가의 작업
궤적과 장기적 가치 서사를 반영하는 거래가 증가하며, 옥션은 시장의 기록자이자 가치의 중장기적 가이드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기업의
문화전략 역시 미술시장 변화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 전시 기획, 공간 운영, 브랜드 협업 등이 기업 문화전략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으며, 기업은
미술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영향력 지형을 재편하는 주요 축이 되었다. 동시에 글로벌 기관과 연결되는
작가들이 증가하며, 작가 개인의 영향력도 과거보다 훨씬 강해졌다. 작가
중심의 영향력 확대는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상징하는 대표적 현상이다.

아모레 퍼시픽, 서경배 회장 — 기업과 미술을 연결하는 새로운 세대의 영향력
아모레퍼시픽의 문화전략은 전시 기획, 미술관 운영, 글로벌 프로젝트와 연계되며 한국 미술의 기업 참여 모델을 확장시켰다. 기업 브랜드 전략과 예술이 결합하는 방식의 대표적 사례다. / 사진: 비즈니스포스트
영향력의 기준이 달라지는 시대
2025년 한국 미술시장에서
영향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단순한 기준을 더 이상 적용할 수 없다. 영향력은 특정한 자원 하나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성격의 힘들이 끊임없이 교차하고 결합되면서 형성되는 구조적 결과에
가깝다.

아이돌 그룹 BTS의 RM(김남준) — 팬덤 기반 영향력의 결정적 등장
K-pop의 글로벌 영향력을 미술 분야로 확장시키며, 대중예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역할을 했다. 그의 컬렉션 공개와 예술 관련 콘텐츠는 미술의 대중적 접근성을 크게 확대하며 시장의 새로운 수요층을 만들었다. / 사진: 뉴시스
자본력과 제도 운영력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것만으로 영향력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글로벌 기관과의 접속을 통해
작가가 획득하는 국제적 신뢰, 플랫폼과 미디어를 통해 형성되는 대중적 확산력, 팬덤 문화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파급력 등은 모두 현대 미술 영향력의 핵심 요소로 편입되고 있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은 작가의 가시성을 단숨에 세계 단위로 확장시키며, 전통적인 제도 중심 영향력과는 다른 방식으로 힘을 만들어낸다.
기업의 문화 전략과 도시의 인프라 정책 역시 미술 영향력의 형성에
직접적으로 개입한다. 특정 전시나 프로젝트가 기업 브랜드 전략과 결합해 대중적 파급력을 갖게 되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도시 차원의 문화 지원 정책이 작가나 기관의 영향력 구조를 바꿔놓는 사례도 있다. 이처럼 영향력은 미술계 내부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화적 구조 속에서 형성되는 다층적 힘으로 변화하고 있다.
결국 영향력은 다양한 자원에 접근하고 이를 연결할 수 있는 능력, 즉 관계망을 조직하는 힘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한국 미술이 단일한
중심이 지배하던 시대를 지나 네트워크 중심의 영향력 체제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변화다.
향후 3~5년, 영향력은 더욱 분산되고 다변화될 것이다
Power 20은 단순한
올해의 영향력자 명단이 아니라, 향후 한국 미술 영향력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예고하는 지표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향후 3~5년
동안 영향력이 더욱 분산되고 다변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전통적 영향력자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지만, 그 영향력은 더 넓은 네트워크 구조 속에서 조정되며 작동할 것이다. 플랫폼
운영자, 글로벌 활동 작가, 기업의 문화전략 담당자들은 시장의
중요한 영향력 축으로 자리 잡으며, 서로 다른 성격의 영향력이 상호작용하는 구조가 일반화될 가능성이
높다.
영향력을 판단하는 기준 역시 자본 중심에서 관계·접속 중심으로 이동하게 되며, 미술시장은 문화산업의 여러 층위와 맞물린
복합 생태계로 더욱 확장될 것이다.
Power 20은
‘명단’이 아니라 변화의 지도
결국 Power 20은
단순히 영향력자 20명의 이름을 나열한 리스트가 아니다.
이 리스트는 한국 미술에서 영향력이 어떤 원리로 생성되고, 어떤 구조 속에서 움직이며, 앞으로 어디로 확장될지를 보여주는 ‘변화의 지도’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영향력은 단일한 중심에서 나오지 않는다. 여러 중심이 동시에 존재하며, 그 중심들 사이의 연결 방식—신뢰, 파트너십, 글로벌
접속성, 대중적 가시성—이 전체 지형을 결정한다.
Power 20은 한국 미술이 이미 복합적·다층적·네트워크 기반 영향력 체제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증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