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향갤러리 전시작품 / 사진 : 이도향갤러리

한국 작가 함진의 프랑스 첫 개인전《MICROmégas》가 파리 마레 지구에 위치한 Galerie Dohyang Lee에서 열린다.
 
극도로 작은 조각과 설치를 통해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해 온 작가의 작업을 파리에 처음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미시적 스케일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또 다른 조각적 시선을 제시한다.


〈벽타고 가는 인형〉, 1999, 쌀, 점토, 솜 / 사진:프로젝트스페이스사루비아

미시적 세계의 조형 전략
 
함진의 작업은 벌레, 알약, 손톱, 먼지, 생활의 잔여물과 같은 비전통적 재료와 합성 점토를 결합해 제작된다. 작가는 이러한 미세한 물질을 이용해 극도로 작은 인물과 장면을 구성하며 하나의 독특한 미니어처 세계를 구축해 왔다.
 
이 세계는 섬세하면서도 기이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하며 때로는 불안한 정서를 품는다. 작은 군상과 장면 속에는 인간의 욕망과 불안, 폭력성과 취약성이 동시에 응축되어 있다. 이러한 미시적 조형은 하찮게 여겨진 물질을 새로운 현실의 단위로 전환하며 사소한 것들 속에서 또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PKM 갤러리에서의 개인전《애완》전시장면, 2004 / 사진 : PKM 갤러리

그의 조형은 단순히 작은 크기의 오브제를 제작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관람자는 작품을 보기 위해 몸을 낮추고 가까이 다가가야 하며, 이 과정에서 시각의 거리와 감상의 방식 자체가 재조정된다. 작은 형상은 축소된 세계가 아니라, 관람자의 인식과 신체를 다시 조직하는 조형적 장치로 작동한다.



《MICROmégas》와 스케일의 정치학
 
전시 제목《MICROmégas》는 미시와 거대, 축소와 확장, 세부와 세계 사이의 긴장을 암시한다. 함진의 작업에서 스케일은 단순한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과 연결된다. 작은 조각은 보잘것없는 형식이 아니라 세계를 응축해 보여주는 하나의 조형적 방법론이 된다.


전시전경,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2023 / 출처 : 아트바바

20세기 후반 이후 조각과 설치가 점차 대형화되며 공간을 점유하는 규모가 전시의 가시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 왔다면, 함진은 극소의 형상을 통해 이러한 흐름에 대응한다. 관람자가 허리를 굽히고 눈을 낮추며 가까이 다가가야 비로소 드러나는 조형은 감상의 위계를 전도한다.
 
거대한 기념비적 구조 대신 먼지와 잔여물, 손톱과 벌레 같은 미세한 재료가 중심이 되는 순간 조각의 물질적 위상 또한 다시 질문된다. 함진의 미시 조형은 세계를 축소해 모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실의 복잡성과 긴장을 압축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함진,〈Untitled 2〉, 2011 / ©PKM 갤러리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작고 기괴한 모습의 다양한 인간 군상이 담겨져 있다.

한국 조각의 흐름 속에서의 함진
 
한국 현대 조각은 1970–80년대 물질 중심의 실험과 구조적 형식 탐구를 거쳐, 1990년대 이후 설치와 오브제의 확장으로 이어지며 다양한 변화를 경험해 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함진은 물질성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면서도 이를 거대한 구조나 공간 장악의 방식이 아닌 극도로 작은 조형 단위로 전환한 작가로 볼 수 있다.


(좌) 최만린,〈이브 58-1〉, 1958 / (우) 김종영,〈작품 79-8〉, 1979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그의 작업은 한국 조각이 오랫동안 추구해 온 견고한 물질감과 구조적 완결성, 공공적 스케일 중심의 조형성과는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대신 그는 사적이고 은밀한 크기, 주변적인 재료, 관찰을 요구하는 서사를 통해 조각의 존재 방식을 새롭게 설정한다.
 
이러한 접근은 조각이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의 문제를 넘어 조각이 어떠한 규모에서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는가라는 질문을 전면화한다. 한국 조각의 흐름을 물질과 구조의 역사뿐 아니라 스케일과 감각의 문제로 확장해 볼 때, 함진의 위치는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함진,〈엄마〉, 2022 / ©페리지갤러리

함진의 이번 개인전은 한국 동시대 조각이 국제 미술 환경 속에서 어떤 조형적 차별성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그의 작업은 한국적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표방하지 않으면서도 작은 것과 주변적인 것에 대한 감각, 비주류 재료를 통한 조형 실험, 비기념비적 스케일의 전략을 통해 동시대 한국 미술의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함진 작가 / ©PKM 갤러리

작가 소개

함진(Ham Jin)은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경원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뒤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작가이다. 그는 극도로 작은 조각과 설치 작업을 통해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해 왔으며, 일상의 잔여물과 비전통적 재료를 활용해 미세한 세계를 구성하는 작업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함진의 작품은 작은 형상 속에 인간 세계의 욕망과 긴장, 우스꽝스러움과 비애를 동시에 담아낸다. 이러한 압축된 상상력은 그의 작업을 단순한 미니어처가 아니라 하나의 응축된 세계로 확장시킨다.
 
1999년 서울 Project Space Sarubia에서 열린 개인전《Imaginative Diary》를 통해 처음 주목받은 이후 PKM Gallery, Aomori Contemporary Art Centre, Doosan Gallery, HADA Contemporary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작업 세계를 확장해 왔다.
 
그의 작업은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Espace Louis Vuitton, Minsheng Art Museum, Mori Art Museum 등 국제 기관 전시에 소개되었으며 작품은 Mori Art Museum과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등의 기관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파리 이도향 갤러리 전시모습 / 사진:이도향갤러리

Galerie Dohyang Lee

Galerie Dohyang Lee는 파리 마레 지구에 위치한 동시대 미술 갤러리로 영상, 설치, 조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의 실험적 작업을 중심으로 전시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국제 작가와 아시아 작가를 함께 소개하며 파리 전시 회로 안에서 동시대 미술 담론을 형성하는 플랫폼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번《MICROmégas》는 한국 작가의 조형 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전시 중의 하나로 기획되었다. 작가 중심의 프로젝트를 밀도 있게 제시하는 전시 구조는 함진의 미시 조형이 지닌 감각적 긴장과 서사를 드러내는 데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



전시 정보
 
전시명:《MICROmégas》
작가: 함진 (Ham Jin)
기간: 2026년 4월 4일 – 6월 13일
오프닝: 2026년 4월 4일 18:00–21:00
장소: Galerie Dohyang Lee, 73–75 rue Quincampoix, 75003 Paris, France
웹사이트: https://www.galeriedohyangl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