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되는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는 단순한 해외 유명 작가 전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전시는 한 명의 작가를 소개하는 사건인 동시에, 오늘날 동시대 미술 제도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국립미술관이 그 구조 속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Tate Modern Exhibition View at 2012 /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12
동시대 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무엇이 전시되는가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기준과 맥락 속에서 그것이 선택되는가이다. 전시는 언제나 선택의 결과이며, 그 선택은 제도의 판단을 반영한다. 특히 국립미술관의 전시는 민간 기관의 프로그램과 달리 공적 판단의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국립기관의 전시는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공적 방향을 드러낸다.
따라서 이번 데이미언 허스트의 전시는 단순히 해외 유명 작가의 빅 이벤트가 아니라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한 국가를 대표하는 공공 미술기관이
스스로를 어떻게 위치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실적 지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Damien hirst, A Thousand Years, 1990 (installation view), glass, steel, silicone rubber, painted mdf, insect-ocutor, cow’s head, blood, flies, maggots, metal dishes, cotton wool, sugar and water,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12
데이미언 허스트라는 상징적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는 1990년대 영국 YBA(Young British Artists)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동시대 미술에서 가장 강력한 상징적 존재 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의 작업은 죽음, 소비, 스펙터클, 그리고 예술과 자본의 관계를 극적으로 드러내며 동시대 미술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상상력과 시장 구조를 결합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대표작〈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1991)은 포름알데히드 속 상어라는 장치를 통해 죽음을 시각적 사건으로 전환한 작품이다.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glass, painted steel, silicone, monofilament, shark and formaldehyde solution,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2012

Image from Crystal World Exhibition Centre / © Morbid Curiosity!
이후 스팟 페인팅, 제약 캐비닛, 나비 연작, 다이아몬드 해골〈For the Love of God〉(2007)에 이르기까지 허스트의 작업은 미술과 시장, 스펙터클과 제도의 결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오늘날 허스트는 단순한 작가라기보다 하나의 “상징자본(symbolic capital)”으로 기능한다. 그의 이름은 특정 작품을 지칭하기보다 1990년대 이후 동시대 미술이 구축해 온 미술사적 서사와 문화적 권위를 동시에 호출하는 장치가 되었다.
두 작가의 회고전과 포스트 컨템퍼러리 조건
데이미언 허스트의 Tate Modern 회고전(2012)과 제프 쿤스의
Whitney Museum 회고전(2014)은 동시대 미술 제도의 시간 구조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Installation view of Jeff Koons: A Retrospective at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in New York (2014), 2014 / © David Zwirner Gallery
전통적으로 회고전은 작가의 생애 말년이나 사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두 회고전은 작가가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시점에서 개최되었다.

Jeff Koons describes his work to YI participants, July 2014. Photograph by Filip Wolak / © Whitney museum official Website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제 작가의 위치는 더 이상 장기간의 시간적 검증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지 않고 동시대 미술의 시장, 제도, 미디어가 동시에 작동하는 환경 속에서 의도적 역사화의 과정으로 압축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즉, 과거에는 시간이 작품을 역사로 만들었으나 이제는 제도가 시간을 거슬러 작가를 역사로 만들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이 바로 오늘날 동시대 미술이 직면한 포스트 컨템퍼러리 조건의 중요한 상징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가 제공하는 경험
이번 전시는 한국 관객에게 중요한 경험을 제공한다. 많은 관객이 허스트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그의 작업을 실제 규모와 맥락 속에서 경험한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포름알데히드 작업, 스팟 페인팅, 약품 캐비닛, 나비 연작 등 다양한 작품군을 한 자리에서 접하는 경험은 1990년대 이후 서구 동시대 미술이 어떤 방식으로 충격과 이미지, 시장과 제도를 결합해 왔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된다.
또한 이 전시는 한국 미술계에서 자주 나타나는 하나의 구조적 간극을 드러낸다. 그것은 이름의 인지도와 작품 이해 사이의 거리다. 유명한 작가를 아는 것과 그의 작업 세계를 실제로 이해하는 것은 서로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한국 미술 제도에서의 ‘시간성’의
의미
동시에 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에서의 ‘시간성’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허스트의 작업이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강력한 현재였던 시점과 서울의 국립현대미술관이 그를 대규모 전시로 소개하는 시점 사이에는 일정한 시간적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미술 제도가 세계 미술의 흐름을 수용하는 방식과 관련된 문제를 보여준다. 오늘날 동시대 미술은 플랫폼 환경, 지정학적 변화, 생태적 감수성, 기술 환경의 변화 등 다양한 문제를 중심으로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 하나의 역사로 박제된 그것을 과거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동시대 미술의 질문으로 어떻게 조직하고 제시할 것인가라는 ‘동시간성’의 문제인 것이다.
1993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휘트니 비엔날레 전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 과천 전은 다른 의미의 사건이었다. 그 전시는 미국 사회 내부의 인종, 젠더, 정체성 문제를 격렬하게 제기한 전시였으며 같은 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개되었다.

(좌) 1993년 경기도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의 포스터. / 사진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우)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 전시에 참여한 미국작가 재닌 안토닌(오른쪽 아래)이 개막식 행사로〈사람의 보살핌〉이라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좌)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 전시 오프닝 모습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우)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 1993” 리플렛과 행사 안내 © 국립현대미술관
그 사건의 의미는 해외 전시를 단순히 수입해 들여왔다는 사실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동시대 미술의 가장 첨예한 논쟁을 한국 사회 안으로 끌어온 사건이었다.
그 전시는 상징을 소비하는 사건이 아니라 동시대의 현재를 공유하는 사건이었다.
나아가며
다시한번 정리하자면, 이번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는 한국 관객에게 동시대 미술의 중요한 흐름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전시다. 하지만 동시에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제도가
동시대 미술을 어떤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계기이기도 하다.
이미 세계 미술의 제도와 시장 속에서 상징자본이 된 이름을 반복적으로 호출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따라서 국립미술관이 수행해야 할 역할은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곳에 있다. 그것은 아직 충분히
제도화되지 않은 질문을 발견하고, 그 질문을 하나의 공적 담론으로 조직하며, 그 담론을 통해 한국 동시대 미술이 세계 미술의 지형 속에서 새로운 위치를 형성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나아가 한국 동시대 미술이 세계 미술의 중심지가 되려면 단순히 유명한 작가를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처한 현실 속에서 우리 시대의
질문과 아젠다를 스스로 생산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질문을 생산하고 조직하는 일이야말로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이끌어갈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문화 전략기관의 가장 절실하고 급박한 역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