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No Arrow of Time (無向時間)》 ©Space Willing N Dealing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은 강주리 작가의 개인전 《무향시간(無向時間)》을 11월 2일까지 개최한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시각예술가 강주리는 종이와 펜이라는 드로잉의 기본 재료를 기반으로 회화와 설치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주제에 충실하면서도 조형성을 중시해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화면을 점유해 가는 과정’ 자체에 주목한다.

다양한 개체들이 콜라주처럼 균등하게 배치된 화면은 확장과 수렴을 반복하며,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부유하는 풍경을 드러낸다.

Installation view of 《No Arrow of Time (無向時間)》 ©Space Willing N Dealing

어린 시절 전문적인 바둑 교육을 받았던 강주리는 철저한 계산과 예측 속에서 머릿속으로 수많은 수를 두며 사고하는 법을 익혔다. 그러나 361개의 칸으로 고정된 바둑판 위에서 더 이상 확장되지 않는 제한된 공간은 그에게 일종의 답답함으로 남았다.

이러한 경험은 작가가 모듈화된 화면을 연속적으로 이어가며, 각 화면이 결말을 맺지 않은 채 다음으로 확장되어 가는 유기적 구축성을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는 올해 전주에서 종이 제작을 경험하며 그 과정 속에서 발생한 예기치 못한 오류를 작업의 일부로 수용했다. 정형화된 제작 과정을 벗어나 우연적 효과를 만들어내는 실험을 통해 종이의 현존성과 물질감을 부각시켰다.

Installation view of 《No Arrow of Time (無向時間)》 ©Space Willing N Dealing

또한 지난해 시도했던 설치 작업에서 바위를 종이로 캐스팅했던 것처럼, 이번 전시에서도 실제 존재의 상태를 그대로 옮기는 ‘프로타쥬(frottage)’ 기법을 활용한다. 식물과 동물, 혹은 서로 다른 동물들이 혼합되어 생성된 그로테스크하게 꿈틀거리는 이미지들처럼, 종이의 섬유질이 뒤얽혀 형성된 물질은 생태계의 표면을 캐스팅하는 매체로 기능한다.

이처럼 장소의 질감을 품은 종이의 층들은 전시장 내에서 관람객이 직접 그 표면의 감각을 체험하도록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