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색채의 음식, 붐비는 해변에서 휴가를 보내는 가족, 관광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여행객, 쇼핑백을 든 사람들과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 영국 사진가 마틴 파(Martin Parr,
1952–2025)의 사진에 등장하는 것은 역사적 사건이나 특별한 인물이 아니다. 대부분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사람과 장소, 행동들이다.
그러나 그의 사진 속에서 평범한 장면은 더 이상 평범하게 보이지 않는다. 가까운
거리에서 포착된 인물과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음식과 상품, 어딘가 우스꽝스럽지만 낯설지 않은 표정과 몸짓은
현대인의 생활방식과 욕망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마틴 파는 이러한 일상적 행동을 통해 소비와 계층, 취향과 자기 연출이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관찰해 왔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마틴 파: We Are Martin Parr》는
그의 작업 세계를 초기부터 말년까지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14개 주요 시리즈의 사진 약 500점과 사진책 90권, 영상
자료를 통해 50여 년에 걸친 작업을 소개한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아시아에서 처음 개최되는 대규모 회고전으로, 매그넘 포토스와 마틴파재단이 협력했다.

전시 전경 “마틴파 : 사진책 90선 (Martin Parr: 90 Selected Photobooks)” 섹션 /사진: 지니프로젝트
평범한 일상을 기록하는 새로운 다큐멘터리
마틴 파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활동했지만, 그의 작업은 기존 다큐멘터리
사진의 익숙한 문법과는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사회적 갈등과 노동, 빈곤
등 공적인 현실을 주요 대상으로 삼아온 다큐멘터리 사진의 한 흐름과 달리, 그는 휴가와 쇼핑, 음식과 관광, 파티와 스포츠 경기처럼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순간에 관심을 기울였다.
마틴 파에게 사람들이 쉬고, 먹고,
소비하고, 여행하는 방식은 사소한 생활 장면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시대의 계급 구조와 문화적 취향, 욕망과 가치관이 드러나는 사회적 행위였다. 어떤 장소를 여행지로 선택하고, 무엇을 구매하며,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연출하는지를 통해 소비사회가 개인의 생활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그에게 소비와 여가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인 동시에 사회적 계급과 취향이 드러나는 영역이었다. 그의 사진에서 일상은 사적인 생활에 머물지 않고 소비문화와 대중관광, 계급과
지역, 세계화와 이미지 문화가 교차하는 동시대 사회의 축소판으로 확장된다.

전시전경 “Establishment” 섹션 /사진: 지니프로젝트
컬러사진으로 바라본 영국 사회
마틴 파의 초기 작업은 흑백사진에서 출발했다. 1970년대 영국 북부의
지역 공동체와 일상생활을 기록한 사진에는 이후의 강렬한 컬러 작업과 달리 비교적 차분하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나타난다. 그의 작업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컬러사진으로
전환하면서부터다.
대표작 〈The Last Resort〉는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영국 북서부의 해안 휴양지 뉴브라이턴을
촬영한 시리즈다. 해변과 놀이시설을 찾은 가족들, 아이들을
돌보는 부모, 쓰레기가 쌓인 공간에서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강렬한 색채로 기록되었다.

〈뉴 브라이튼, 영국〉, 1983-85 © 마틴 파 / 매그넘 포토스
이 작업은 발표 당시 적지 않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비평가들은
마틴 파가 노동계급의 여가문화를 냉소적이고 관음적인 시선으로 대상화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다른 평가에서는
이 시리즈가 전통적인 흑백 다큐멘터리의 엄숙한 문법에서 벗어나 컬러사진을 통해 당시 영국의 계급문화와 대중소비의 현실을 새롭게 기록했다고 보았다.
마틴 파는 사진 속 인물들을 이상화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조롱하지도 않았다. 그의 사진에는 유머와 불편함, 친근함과
거리감이 동시에 존재한다. 관람자는 화면 속 사람들을 보며 웃음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들의 행동과 취향이 자신과 완전히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리움미술관의〈가브리엘 오로즈코 정원〉전경 / 사진: 리움미술관
소비사회와 대중관광의 풍경
1980년대 이후 마틴 파의 작업은 영국을 넘어 세계 각지로 확장되었다. 그는 유명 관광지와 휴양지, 쇼핑센터와 패스트푸드점, 경마장과 미술관, 국제행사와 사교모임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이 소비와
여가를 경험하는 방식을 기록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관광지는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경험하는 장소인 동시에 유사한 상품과 이미지가 반복되는
소비 공간으로 변화했다. 사람들은 풍경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카메라로 장소를 기록하고, 기념사진을 남기며 여행의 경험을 이미지로 구성했다.
마틴 파는 관광명소 자체보다 그곳을 방문한 관광객의 행동에 주목했다. 그가
관심을 둔 것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상품을 구매하며,
어떠한 자세로 사진을 찍는가였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스페인의 휴양지 베니도름, 인도의 뭄바이 해변 등 서로 다른 장소에서 촬영한 사진들은 각
지역의 문화적 차이와 함께 세계 관광산업이 만들어낸 공통된 행동양식을 보여준다.
그의 사진은 세계화가 상품과 자본의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세계화는 사람들이 장소를 경험하고, 소비하고, 자신의
경험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방식까지 점차 유사하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시 전경 “Bad Weather” 섹션 / 사진: 지니프로젝트
매력과 불편함이 공존하는 이미지
마틴 파 사진의 가장 분명한 특징은 강렬한 색채와 가까운 시선이다. 그는
플래시와 접사 촬영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피부와 음식, 의상과 상품의 질감을 과장되게 드러냈다. 붉게 달아오른 피부와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 기름진 음식과 화려한
기념품은 실제보다 더욱 선명하고 인공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미지는 시각적으로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불편하다. 음식은 먹음직스러우면서도
과도해 보이고, 화려한 색채는 즐거움과 피로감을 함께 전달한다. 마틴
파는 소비사회를 외부에서 도덕적으로 비판하기보다 그 내부의 욕망과 즐거움, 과잉과 모순을 하나의 화면
안에 겹쳐 놓았다.
따라서 그의 사진을 단순한 풍자나 사회비판으로만 규정하기는 어렵다. 소비와
관광은 현대인에게 즐거움과 이동의 자유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과잉과 획일화, 계층적 차이를 드러낸다. 마틴 파의 사진은 이러한 양면적인 현실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시각적 긴장으로 제시한다.

전시 전경 “Autoportrait” 섹션 / 사진: 지니프로젝트
사진책으로 확장된 작업 세계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 작품과 함께 마틴 파의 사진책 90권이 중요한
비중으로 소개된다. 그에게 사진책은 완성된 작품을 정리하는 부수적인 기록물이 아니었다. 여러 이미지를 배열하고 반복함으로써 소비와 계급, 관광과 세계화에
관한 서사를 조직하는 독립적인 매체였다.
개별적으로 보았을 때 우연히 포착된 장면처럼 보이는 사진도 한 권의 책 안에서 축적되고 편집되면 보다 구조적인
사회적 의미를 형성한다. 마틴 파의 작업은 한 장의 결정적 이미지보다 여러 사진이 반복되고 연결되는
과정에서 더욱 분명한 의미를 획득했다.

사진책 90선이 놓인 자리 앞에 여러 장의 사진을 촘촘히 배열한 연작 전시 모습 / 사진: artinsight.co.kr
마틴 파는 사진가인 동시에 사진책 수집가이자 연구자였다. 여러 지역과
시대의 사진책을 수집하고 소개하면서 사진의 역사가 미술관 전시뿐 아니라 출판과 편집, 유통의 과정에서도
형성되어 왔음을 강조했다. 이번 전시는 사진과 사진책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그의 작업이 촬영에서 출판, 수집과 연구로 확장되어 온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마틴 파가 바라본 서울과 평양
이번 전시에서 한국 관람객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마틴 파가 한반도에서 촬영한 사진들이다. 전시에는 1997년 평양과
2004년 서울을 비롯해 남한과 북한에서 촬영한 작업이 포함된다.
그는 두 도시를 정치적 상징으로만 다루기보다 거리와 행사, 관광과
일상에서 발견되는 사람들의 행동과 시각적 풍경에 주목했다. 국가의 공식적인 이미지보다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 공공장소의 풍경과 일상적인 장면을 기록한 것이다.

평양의 일상을 촬영한 사진 / © 마틴 파/ 매그넘 포토스

서울의 일상을 촬영한 사진 / © 마틴 파/ 매그넘 포토스
특히 서울을 촬영한 사진은 급속한 경제성장 이후 대중소비와 도시적 생활양식, 글로벌
이미지 문화가 일상에 깊이 자리 잡은 시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 촬영한 그의 사진들과
함께 바라보면 서울 역시 글로벌 소비문화와 관광, 이미지 생산의 구조 안에서 변화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 촬영한 사진은 외국 사진가가 바라본 과거의 한국이라는 의미를 넘어, 당시의
공간과 생활방식이 오늘날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리고 어떤 행동과 욕망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이미지 시대를 기록한 동시대의 아카이브
마틴 파의 사진이 오늘날에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그가 관찰한 것과 유사한 이미지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음식과 쇼핑, 여행과 여가의 순간을
선명한 색채로 촬영하고 공유하는 방식은 소셜미디어에서 일상적으로 반복된다.
그가 작업을 시작하던 시기에는 스마트폰과 SNS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마틴 파는 사람들이 이미지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사회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방식을 일찍부터 관찰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여행이나 식사, 쇼핑을 경험하는 동시에 이를 촬영하고
공유하며, 자신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소비하며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이미지로 보여준다.

〈마틴과 수지 파〉/ 1983 월라시에서. © 피터 프레이저
그의 작업이 SNS 시대를 직접 예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소비와 여행의 경험을 이미지로 구성하고 타인에게 제시하는 행동이 디지털 시대 이전부터 형성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틴 파의 사진은 과거 소비사회의 기록을 넘어 이미지가 현대인의 행동과 욕망, 정체성을 조직하는 과정을 장기간 축적한 시각적 아카이브로 읽힌다.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는 평범한 일상의 장면이
어떻게 한 시대의 사회구조와 욕망을 드러내는 기록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틴 파의 사진은 소비와
관광을 풍자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이미지 속에서 자신을 연출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50여 년에 걸쳐 기록한 동시대 사회의 초상이다.
전시 정보
전시명:《마틴 파: We Are
Martin Parr》
전시기간: 2026년 7월 16일–10월 18일
전시장소: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참여작가: 마틴 파
전시구성: 사진 약 500점, 사진책 90권, 영상
자료
협력: 매그넘 포토스, 마틴파재단
관람료: 무료
웹사이트: https://sema.seoul.go.kr/kr/visit/photose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