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이해민선. 이정우. 전현선. 홍진훤
《올해의 작가상 2026》에 선정된 이해민선, 이정우, 전현선, 홍진훤은
회화, 영상, 사진, 설치
등 서로 다른 매체와 방법론을 사용한다. 얼핏 보면 네 작가를 하나의 경향으로 묶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들의 작업을 함께 살펴보면 현재 한국 동시대미술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몇 가지 흐름이 드러난다.
이들은 모두 오랜 시간 하나의 문제의식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으며, 자신이
사용하는 매체를 단순한 표현 도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회화와 사진,
영상과 인공지능이 현실을 어떻게 보고 기록하며 구성하는지, 사물과 환경은 시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다시 질문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역시 이번 전시에서 네 작가가 서로 다른 실천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재현의 결과보다 세계를 구성하는 조건과 구조에 주목한다”고 설명한다. 이해민선은 사물과 환경에 축적된 시간과 흔적을, 이정우는 기술 시스템과
데이터가 현실과 역사를 구성하는 방식을, 전현선은 회화와 공간의 관계를, 홍진훤은 이미지와 사회적·정치적 권력관계를 탐구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이러한 문제들은 한국미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AI와 데이터, 물질과 생태, 확장된 회화, 이미지와
정치의 문제는 오늘날 세계 동시대미술에서도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올해의 작가상 2026》은 한국 동시대미술의 현재와 세계 미술의 흐름이 어디에서 만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장면이다.
이해민선: 취약한
존재와 물질이 견뎌온 시간
이해민선은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물과 풍경을 바라본다. 임시
구조물이나 식물, 녹거나 부서지고 변형되는 물질처럼 안정적이거나 완전해 보이지 않는 대상들이 그의 작업에
등장한다.
그러나 작가의 관심은 사물 자체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있지 않다. 환경을
견디며 존재하는 사물의 상태와 그 위에 축적된 시간을 관찰하고, 이를 회화와 설치의 언어로 옮긴다.
이번 전시의 〈잔설〉(2026)은 겨울이 지나고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눈에서 출발한다. 눈 자체보다 주변에 남아 있는 먼지와 얼룩, 녹아내린
흔적을 통해 사라진 것의 존재를 드러낸다. 〈바깥〉(2026)과
〈직립식물_덩어리〉(2026) 역시 임시적인 것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는 상태와 서로 다른 물질이 기대어 형태를 유지하는 관계를 보여준다.

《올해의 작가상 2026》 이해민선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사진: 홍철기
이러한 작업은 최근 국제 동시대미술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생태적 감수성, 물질과
환경,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와 연결해 볼 수 있다. 실제로 Serpentine의 최근 생태 관련 프로그램 역시 인간을 중심에 놓는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동물과 식물, 균류, 기술 등 다양한 존재 사이의 관계를 예술적 질문으로 확장하고
있다. (Serpentine
Galleries)
하지만 이해민선의 특징은 이러한 문제를 거대한 생태 담론이나 직접적인 메시지로 제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물감의 표면과 사물이 변화하는 시간, 미세한 물질의 상태를 통해
관람자가 천천히 감각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한국적 서정성’과
같은 지역적 이미지로 설명하기보다 물질과 취약성,
생존과 지속이라는 동시대의 보편적인 문제를 회화적으로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2024년 타데우스 로팍 서울의 《Nostalgics
on realities》에서도 이해민선은 한국 동시대미술의 다양한 현실 인식을 보여주는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소개됐다. (Thaddaeus
Ropac)
이정우: AI의
가능성보다 AI의 오류를 바라보다
이정우의 작업은 최근 국제 미술계에서 빠르게 확장되고 있는 AI와
데이터, 기계시각의 논의와 특히 직접적인 접점을 갖는다.
그는 기술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순간보다 오류를 일으키거나 예상과 다르게 작동하는 순간에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그 오류를 통해 결과를 만들어낸 데이터와 규칙, 보이지 않는
편향을 역으로 추적한다.
이번 전시의 〈씌여진 영화, 씌여질 역사〉(2025–2026)는 해방 직후 제작된 영화 「자유만세」(1946)의
사라진 장면을 생성형 AI를 통해 다시 구성하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과거의
검열과 삭제가 오늘날 플랫폼 규정과 콘텐츠 필터링, 데이터 편향이라는 새로운 조건과 만나면서 역사와
이미지가 다시 만들어지는 방식을 질문한다.

《올해의 작가상 2026》 이정우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사진: 홍철기
생성형 AI가 등장한 초기에는 새로운 이미지를 얼마나 빠르고 놀랍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주목받았다. 그러나 논의는 점차 데이터가 누구의 것이며 무엇이 포함되고 배제되는지, 알고리즘이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표준화하는가라는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Tate의 연구 프로젝트 “Electronic
Life: AI Communities and the Collection” 역시 AI를
단순한 새로운 제작기술이 아니라 접근성, 정체성, 재현, 미술관 컬렉션과 사회적 관계의 문제로 다뤘다. (Tate)
이정우 역시 AI의 시각적 효과보다 시스템 내부의 누락과 편향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이를 추상적인 기술윤리에서 끝내지 않고 한국 현대사의 소실된 기록과 연결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의 작업에서 핵심은 AI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기술이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으며, 그 과정에서
역사가 어떤 방식으로 다시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이다.
전현선: 회화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
전현선의 출발점은 회화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벽에 걸린 하나의 독립된
화면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회화 속 이미지가 조각과 설치로 이동하고, 그림 자체가 전시장 공간을
구성하는 구조물이 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의 〈토끼도 굴을 두 개 판다〉(2026)는 30점의 대형 캔버스를 암벽등반장을 연상시키는 구조로
배치해 관람자가 이동하면서 서로 다른 이미지의 관계를 스스로 구성하도록 한다.

《올해의 작가상 2026》 전현선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사진: 홍철기
이는 오늘날 회화를 둘러싼 중요한 변화와 연결된다.
회화는 여전히 국제 미술시장과 전시 현장에서 강력한 매체지만, 동시대미술에서
회화의 가능성은 단순한 평면의 부활에만 있지 않다. 회화가 조각과 설치, 건축적 공간, 디지털 이미지, 관람자의
신체적 경험과 어떤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실험의 영역이 되고 있다.
전현선 역시 그림을 바라보는 대상에서 공간을 경험하게 하는 장치로 확장한다. 그의
작업에서 ‘확장된 회화’는 작품의 크기가 커지거나 여러 매체를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미지가 어떻게 공간 속에서 분해되고 연결되며 관람자가 그 관계에 개입하는지가
중요하다.
전현선의 작품을 소개하는 Esther Schipper 역시 그의 회화를
상징적 기하학과 암시적인 풍경, 인공적 이미지와 회화적 언어가 결합된 독자적인 시각체계로 설명한다. (Esther Schipper)
디지털 환경에서 끊임없이 분절된 이미지를 보고 연결하며 의미를 만들어내는 오늘날의 시각 경험과 비교해 보면, 전현선의 회화는 오래된 매체인 회화가 현재의 이미지 환경 속에서 어떻게 다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홍진훤: 사진은
현실을 기록하는가, 현실을 만드는가
홍진훤은 사진과 이미지를 둘러싼 권력관계를 지속적으로 관찰해 왔다. 사진, 영화, 웹프로그래밍 등을 사용하지만 그의 관심은 이미지를 만드는
기술보다 이미지가 사회에서 어떤 힘을 갖는가에
있다. 작가 역시 자신의 작업을 “사진과 이미지를 둘러싼
권력관계를 관찰하고 개입하는” 실천으로 설명한다. (홍진훤)
이번 전시에서는 집회와 투쟁, 빛과 어둠, 가시성과 비가시성의 문제를 통해 정치적 사건이 이미지로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방식을 살펴본다.
〈이미지의 최고 형태는 무장투쟁이다〉(2026)는 과거의 혁명적 선언과
오늘날 한국의 집회문화를 교차시키며 정치적 행동이 무대와 카메라, 이미지 생산의 구조와 어떤 관계를
맺게 되었는지를 질문한다.

《올해의 작가상 2026》 홍진훤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사진: 홍철기
오늘날 정치적 사건은 더 이상 현장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촬영되고 뉴스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면서 사건은 수많은 이미지로 다시 구성된다.
따라서 사진에 대한 질문도 “이 장면이 사실인가”를 넘어 누가 이미지를 만들고, 어떤 장면이 선택되며, 무엇이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무엇이 보이지 않게 되는가로 확대된다.
최근 MoMA의 《New
Photography 2025: Lines of Belonging》 역시 사진을 단순한 기록매체로 접근하기보다 서로 다른 지역의
역사와 공동체, 기억과 소속의 문제를 연결하는 동시대적 실천으로 다뤘다. (The Museum of Modern Art)
홍진훤의 작업은 한국의 집회문화와 정치적 풍경이라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 질문은 특정한 한국 정치사의 설명에 머물지 않는다. 이미지가
현실을 기록하는 동시에 현실을 구성한다는 문제는 소셜미디어와 플랫폼이 일상이
된 세계 어디에서나 유효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현실에서 세계의 질문으로
《올해의 작가상 2026》에 선정된 네 작가는 서로 다른 매체와 주제를
다루지만,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그것이 어떻게 구성되고 인식되는지를 질문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기술과 데이터, 이미지와 정치, 회화와
공간, 물질과 생태는 모두 현재 세계 동시대미술에서도 중요하게 논의되는 문제다. 따라서 이번 선정의 의미는 한국미술이 이러한 국제적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세계적으로 공유되는 질문을 한국의 역사와
사회, 장소와 경험을 통해 어떻게 다르게 바라보고 자신의 조형언어로 다시 만들어내는가에 있다.
지역적인 경험 역시 국제성을 위해 지워져야 할 요소가 아니다. 구체적인
현실에서 시작된 질문이 이미 존재하는 세계 미술의 담론에 새로운 시각을 더할 때 비로소 고유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 점에서 《올해의 작가상 2026》은 한국 동시대미술의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지금 한국미술이 세계 미술의 현재와 어디에서 만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중요한 좌표라고 할
수 있다.
전시 정보
전시명: 《올해의 작가상 2026》
참여 작가: 이해민선, 이정우, 전현선, 홍진훤
전시 기간: 2026년 7월 24일–12월 6일
전시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2전시실
공동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SBS문화재단 (국립현대미술관)
References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MMCA), 《올해의 작가상 2026》
전시의 전체 방향과 참여 작가, 일정 및 프로그램에 관한 공식 자료. MMCA는 이번 전시를 네 작가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경향과 동시대적 담론을 살펴보는 자리로 설명한다. (국립현대미술관)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국립현대미술관·SBS문화재단 《올해의 작가상 2026》 개최」, 2026.7.23.
네 작가의 신작 및 주요 작품 설명, 작가 약력, 전시
구성에 관한 공식 보도자료. (국립현대미술관)
Tate, “Electronic Life: AI
Communities and the Collection”
AI와 접근성, 정체성, 재현, 미술관 컬렉션의 관계를 다룬 연구 및 공공 프로그램. 이정우 작업과
연결되는 AI·데이터·재현의 국제적 논의를 참고할 수 있다. (Tate)
Serpentine, Arts Technologies / Ecology
Programmes
예술과 기술, 생태,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를
장기적으로 연구해 온 프로그램. 이해민선 작업을 생태와 물질성의 국제적 논의 속에서 바라보는 참고 자료다. (Serpentine
Galleries)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Photography 2025: Lines of Belonging》
사진을 서로 다른 지역의 역사, 공동체, 기억과
연결해 살펴본 MoMA의 동시대 사진전. 이미지와 사회적
현실의 관계를 이해하는 참고 자료다. (The Museum of Modern Art)
Esther Schipper, Hyunsun Jeon —
Biography
전현선의 회화 언어와 국제 전시 활동에 관한 공식 갤러리 자료. (Esther Schipper)
Thaddaeus Ropac, 《Nostalgics on realities》
이해민선의 최근 전시 활동과 한국 동시대미술에서의 작업 맥락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 (Thaddaeus
Ropac)
Hong Jin-hwon, Official Website
홍진훤의 작품세계, 전시 이력, 사진·영화·웹프로그래밍을 통한 이미지와 권력의 관계에 관한 작가의 1차 자료. (홍진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