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스트리아 빈의 세세션에서 열린 《이미래: 내 기계의 심장은 황금빛 납(Mire Lee: The Heart of My Machine is Golden Lead)》 전시 전경, 2026. 사진: 아이리스 란칭거(Iris Ranzinger). 이미지 제공: 티나 킴 갤러리.
한국 작가 이미래의 개인전 《Mire
Lee: The Heart of My Machine is Golden Lead》가 오스트리아 빈의 세세션(Secession)에서 열리고 있다.
2026년 6월 26일 개막한 이번 전시는 모터와 배관, 산업용 기계와 유동하는 물질을 결합해온 이미래의 조각 언어를 세세션의 역사적 건축과 공간 구조에 반응하도록
구성한 대규모 설치다.
최근 몇 년 동안 테이트 모던,
뉴뮤지엄, 베니스 비엔날레, MMK 프랑크푸르트
등 주요 국제 미술기관에서 작업을 선보여온 이미래는 이번 전시에서 기계와 신체, 작동과 붕괴, 생산과 소진의 관계를 더욱 직접적인 공간 경험으로 확장한다. 전시는 8월 30일까지 이어진다.
멈추지
못하는 기계의 심장
전시장 중심을 가로막는 거대한 경사진 벽 뒤편에는 내부가 상처처럼
절개된 시멘트 믹서가 느린 속도로 회전하고 있다. 본래 건설 현장에서 시멘트와 골재를 혼합하는 효율적인
산업 장치지만, 이미래의 설치 안에서 기계는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도구라기보다 손상되고 노출된 신체처럼
보인다.
둔탁하고 반복적인 소리는 심장 박동처럼 공간 전체에 퍼진다. 멈추지 못한 채 계속 회전하는 기계는 생명력과 기능 장애, 지속과
붕괴의 중간 상태에 놓인다.
PVC 배관은 혈관처럼
전시장을 가로지르며 산화철과 황동 가루, 톱밥 등이 섞인 붉고 점성 있는 물질을 순환시킨다. 액체는 시멘트 믹서 내부에서 뒤섞이고 배관을 따라 이동하며 벽과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전시가 지속되는 동안 물질은 마르고 굳어가며 표면에 녹슨 딱지와 피부를 연상시키는 층을 형성한다.
전시는 완성된 조각을 고정된 상태로 보여주기보다 물질이 순환하고
축적되며 점차 변형되는 시간을 작품의 일부로 포함한다. 관객은 작품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기계의
소리와 움직임, 물질의 점성과 냄새, 변화하는 전시장의 분위기를
신체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빈의 세세션에서 열린 《이미래: 내 기계의 심장은 황금빛 납(Mire Lee: The Heart of My Machine is Golden Lead)》 전시 전경, 2026. 사진: 아이리스 란칭거(Iris Ranzinger). 이미지 제공: 티나 킴 갤러리.
효율적인
기술에 대한 저항
이미래의 기계는 매끄럽고 정확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모터와 배관, 회전 장치는 삐걱거리고 누출되며 자신의 작동 자체를
힘겨워하는 것처럼 움직인다. 현대 기술이 지향하는 속도와 효율성, 정밀성과
청결함 대신 작품은 마찰과 지연, 오염과 피로를 전면에 드러낸다.
이러한 기계는 인간을 대신해 끊임없이 생산하는 산업 장치이면서
동시에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 소진되는 신체를 연상시킨다. 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나의 기계’는 외부에 존재하는 기술적 장치만을 가리키기보다 반복적인
제작과 노동, 생산의 압력을 감당하는 인간의 신체와도 중첩되어 읽힌다.
따라서 기계의 심장은 작동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인 동시에 멈출
수 없는 생산과 노동의 압력을 내면화한 신체를 떠올리게 한다. 이미래의 작업에서 기계와 인간은 서로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다. 두 존재는 피로와 욕망, 취약성과
불완전성을 공유하며 하나의 복합적인 유기체처럼 겹쳐진다.

오스트리아 빈의 세세션에서 열린 《이미래: 내 기계의 심장은 황금빛 납(Mire Lee: The Heart of My Machine is Golden Lead)》 전시 전경, 2026. 사진: 아이리스 란칭거(Iris Ranzinger). 이미지 제공: 티나 킴 갤러리.
황금빛
납, 아름다움과 독성의 공존
전시장 뒤편에는 과거 세세션 전시의 홍보에 사용됐던 대형 배너들이
펼쳐져 있다. 배너 위에는 황동박으로 덮인 문자 조각과 납 성분이 포함된 땜납으로 제작한 선과 무늬가
중첩된다.
이 작업은 세세션에 영구 설치된 구스타프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가
보여주는 장식적이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조형 언어를 산업적 열기와 독성, 물질의 잔여물과 연결한다.

오스트리아 빈의 세세션에서 열린 《이미래: 내 기계의 심장은 황금빛 납(Mire Lee: The Heart of My Machine is Golden Lead)》 전시 전경, 2026. 사진: 아이리스 란칭거(Iris Ranzinger). 이미지 제공: 티나 킴 갤러리.
납은 과거 건축과 공예, 화장품과
장식 등 다양한 영역에서 폭넓게 사용됐다. 가공하기 쉽고 광택을 지닌 물질로 인식됐지만, 오늘날에는 인체와 환경에 심각한 피해를 일으키는 유독 물질로 규정된다. 전시
제목의 ‘Golden Lead’는 이처럼 아름다운 광택과 치명적인 독성을 동시에 지닌 모순적인 물질을
가리킨다.
이미래는 납의 빛을 더 이상 순수하게 욕망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제시한다. 그것은 화려함과 영광의 상징이라기보다 과거의 욕망과 산업문명이 남긴 멜랑콜리한 잔여물에 가깝다.
전시는 아름다움과 위험, 장식과
오염이 서로 분리될 수 없음을 드러내며 세세션의 역사적 장식 언어를 오늘날의 물질적·사회적 조건 속에서
다시 바라보게 한다.
신체의
내부에서 사회의 구조로
이미래의 작업은 신체의 외형을 직접 재현하기보다 신체가 내부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기계적 구조로 번역한다. 액체를 순환시키는 배관과 회전하는 믹서, 절개된 기계의 내부와 표면에 쌓이는 침전물은 혈액과 장기, 체액과
피부를 연상시킨다.
동시에 작품은 개인의 신체를 넘어 현대사회의 생산과 노동 구조에
대한 비유로도 읽을 수 있다. 끊임없이 회전하지만 명확한 결과물을 생산하지 못하는 기계는 반복적인 노동과
소진의 순환에 갇힌 존재처럼 보인다. 반복되는 작동은 생명력의 징후인 동시에 피로와 붕괴를 예고하는
움직임이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미래의 기계는 생명과 비생명, 인간과 기술 사이의 경계를 단순히 모호하게 만드는 데 머물지 않는다. 작품은
오늘날 인간의 신체와 감정, 노동과 욕망이 이미 기술적 시스템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시장 전체는 기계와 신체가 함께 작동하고 소모되며 끊임없이 변형되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세세션의
역사와 만나는 이미래의 조각
세세션은 1897년
구스타프 클림트와 요제프 호프만, 콜로만 모저를 비롯한 빈 분리파 예술가들이 보수적인 미술제도와 결별하며
설립한 작가 중심의 독립 비영리 전시기관이다. 건물 정면에 새겨진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이라는 문구는 기존 제도의
권위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을 추구했던 세세션의 정신을 상징한다.
이미래는 이번 전시에서 세세션의 역사와 건축을 단순한 배경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전시장의 천장 유리판 일부를 제거해 자연광을 내부로 끌어들이고, 중앙에 거대한 경사진 벽을 세워 공간을 분할하는 동시에 그 뒤편에 시멘트 믹서를 감춘다.
또한 과거 세세션 전시의 홍보 배너와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가
지닌 장식적 형식을 작품의 재료이자 참조점으로 활용한다.
전시는 세세션이 상징해온 예술적 자유와 진보의 역사를 산업사회의
오염과 소진, 인간 신체의 취약성이라는 현재의 조건 속에서 다시 읽는다. 유럽 근대미술사의 상징적 공간과 이미래의 불완전하고 오염된 기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과거의 진보를 상징했던 기술과
장식은 더 이상 순수한 이상으로 남아 있지 않는다.
이번 개인전은 이미래가 국제적 명성을 얻은 이후에도 자신의 조각
언어를 특정 장소의 역사와 건축에 맞추어 새롭게 변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2024년 테이트
모던 터빈홀 커미션 《Open Wound》이후 대규모 기계 장치를
다루는 방식이 장소의 역사와 건축, 물질에 축적된 문화적 의미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전시라 할 수 있다.
빈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이어지는 전시
이미래의 개인전은 세세션과 주오스트리아 한국문화원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한국문화원에서는 《Women
I Loved 내가 사랑한 여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작가의 영상 작품들을 별도로 소개한다.
기계와 산업 재료를 중심으로 구성된 세세션의 설치와 영상 작업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이미래의 작업에 내재한 신체와 여성, 욕망과 기억의 문제를 보다 폭넓게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세세션 전시의 일부 요소는
2026년 11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아우데 케르크(Oude
Kerk)에서 공개되는 새로운 장소특정적 설치에 편입될 예정이다.
작품이 하나의 전시에서 완결되는 대신 분해되고 이동하며 다른 건축과
만나 새로운 형태로 변화한다는 점에서도 이미래의 조각이 지닌 유동적이고 순환적인 성격은 이어진다.

이미래 작가 / 사진: 멜리사 슈릭(Melissa Schriek). 티나 킴 갤러리 제공.
작가
소개 | 이미래
이미래는 1988년
서울에서 태어나 현재 서울과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미디어아트를 복수전공했다.
모터와 철, 실리콘, 시멘트, 점토, 오일과
배관 시스템 등을 결합한 조각과 대규모 설치를 통해 신체와 기계, 욕망과 취약성, 생성과 붕괴의 관계를 탐구해왔다.
주요 전시로는 베를린 쉰켈 파빌리온에서 열린 H. R. 기거와의 2인전 《HR
Giger & Mire Lee》(2021), MMK 프랑크푸르트 졸암트의 개인전
《Look, I’m a fountain of filth raving mad with love》(2022), 뉴욕 뉴뮤지엄의 《Black Sun》(2023), 런던 테이트 모던 현대자동차 터빈홀 커미션 《Open Wound》(2024–2025) 등이 있다.
2026년에는 프랑스
빌뢰르반의 IAC에서 《The (PSYCHO)SOMATIC ZONE》을
개최했으며, 현재 빈 세세션에서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 세세션 전시관 / 사진: 벨레시크(Welleschik)
기관
소개 | 세세션
세세션은 1897년
구스타프 클림트와 요제프 호프만, 콜로만 모저를 비롯한 빈 분리파 예술가들이 설립한 오스트리아의 작가
운영 독립 비영리 전시기관이다.
1898년 완공된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의 건축물과 구스타프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도 작가들이 기관 운영과 전시 프로그램 구성에 직접 참여하는
구조를 유지하며 국제 동시대미술 작가들의 실험적인 개인전과 신작 제작을 지원하고 있다. 역사적 건축물과
동시대 작가의 새로운 작업이 지속적으로 충돌하고 대화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유럽 현대미술의 중요한 상징적 공간으로 평가된다.
전시
정보
전시명:《Mire Lee : The Heart of My Machine is Golden Lead》
기간: 2026년 6월 26일–8월 30일
장소: Secession, Vienna, Austria
운영 시간: 화요일–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큐레이터: Haris Giannouras
동시 개최 전시: 이미래
《Women I loved 내가 사랑한 여자들》
기간: 2026년 6월 26일–8월 30일
장소: 주오스트리아 한국문화원
운영 시간: 화요일–일요일, 정오–오후 6시
후속 전시: Mire Lee,
Oude Kerk, Amsterdam
기간: 2026년 11월 13일–2027년 3월 1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