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미술(Modern Art)이 국제 미술계에 소개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흐름은 단색화(Dansaekhwa)다. 박서보, 윤형근, 정상화, 하종현, 이우환 등으로 이어지는 단색화는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국제적 서사로 자리 잡았다.
 
단색화는 명백히 한국 모더니즘 회화의 중요한 성취다. 물질성, 반복, 수행성, 평면성, 환원적 형식에 대한 탐구를 통해 단색화는 한국적 모더니즘의 독자적 가능성을 국제 미술계에 각인시켰다. 그러나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는 단색화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같은 시기, 혹은 그와 나란히 전혀 다른 방향에서 예술의 형식과 개념을 확장한 또 다른 흐름이 존재했다. 그것이 바로 1960~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이다.
 
이 지점에서 이강소의 작업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단색화가 한국 모더니즘 회화의 한 정점이라면, 이강소의 작업은 한국 미술이 컨템퍼러리 아트의 조건으로 이동하는 또 다른 전환을 보여준다. 그는 작품을 완결된 물질적 대상이 아니라, 행위와 시간, 장소와 상황, 관객의 참여 속에서 발생하는 열린 과정으로 이해했다.


《Lee Kang So: A Field of Becoming》전시전경 / 사진: 갤러리현대

현재 뉴욕 한국 문화원(Korean Cultural Center New York, KCCNY)에서 열리고 있는 이강소 개인전《A Field of Becoming》은 바로 이 또 다른 계보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전시다.
 
2026년 5월 13일부터 6월 20일까지 KCCNY의 Atrium & Gallery에서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이강소의 작업 세계를 회화, 조각, 설치, 사진,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조망한다.
 
이강소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실험미술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특정 매체나 양식에 자신을 한정하지 않고, 예술을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되는 과정으로 이해해왔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A Field of Becoming》역시 이러한 작업 세계를 함축한다. “생성의 장”이라는 제목은 이강소의 예술이 고정된 형태의 완성이 아니라, 변화와 흔적, 행위와 시간, 현실과 이미지 사이에서 발생하는 과정에 가깝다는 점을 드러낸다.


《Lee Kang So: A Field of Becoming》전시작품들 / 사진: KCCNY 홈페이지

이강소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대상이 이미지가 되고 다시 흔적으로 사라지는 과정이다. 그의 회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오리, 사슴, 배, 구름과 같은 형상은 특정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현실의 대상을 화면 위로 옮겨놓는 재현의 기호라기보다, 존재와 인식의 관계를 사유하게 만드는 매개체에 가깝다. 화면 위의 형상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명확해졌다가 흐려지며, 관람자는 그 사이에서 이미지와 현실의 간극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의 1970년대 실험미술 작업에서 이미 뚜렷하게 나타난다. 대표작〈소멸(선술집)〉(Disappearance – Bar in the Gallery, 1973)은 서울 명동화랑을 선술집으로 전환하고, 관객들에게 막걸리와 안주를 제공하며 그들이 머물고 대화하는 상황 자체를 작품으로 만든 작업이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의미의 회화나 조각이 아니라, 일상의 공간, 관객의 참여, 시간 속에서 사라지는 사건을 작품의 중심에 놓았다. 당시 한국 미술계에서 매우 급진적인 시도였으며, 현실과 예술, 관객과 작품, 일상과 전시 공간의 경계를 흔든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강소, 대표작〈소멸(선술집)〉(Disappearance – Bar in the Gallery, 1973)은 서울 명동화랑을 선술집으로 전환하고 관객들의 참여를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인 작업이다. © 이강소 / 사진 : 갤러리현대

이강소의 작업이 오늘날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예술은 한국적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표상하는 방식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1960~70년대 이후 국제 미술계에서 전개된 개념미술, 퍼포먼스, 프로세스 아트와 비교 가능한 문제의식을 지닌다.
 
그는 예술을 물질적 결과물로 고정하지 않고, 행위와 시간, 관계와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열린 과정으로 다루었다. 이 점에서 이강소의 작업은 한국 현대미술이 모더니즘의 회화적 성취를 넘어 컨템퍼러리 아트의 조건으로 진입하는 중요한 접점을 제공한다.
 
최근 국제 미술계에서 한국 실험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이번 전시를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공동 기획한《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는 한국 실험미술을 국제적 맥락에서 본격적으로 조명한 대표적 사례다.
 
이 전시는 전후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젊은 작가들이 기존 미술 제도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형식과 태도를 모색했던 시기를 다루었다.


《한국 실험미술 1960s–1970s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전시 전경, 2023,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 사진: 구겐하임 미술관

그 흐름 속에서 이강소는 단순히 한 세대의 작가로만 이해될 수 없다. 그는 한국 현대미술이 단색화 중심의 평면성과 물질성뿐 아니라, 행위, 사건, 시간, 장소, 관객 참여를 통해서도 전개되어 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가다.


《이강소: 風來水面時 풍래수면시》, (2024.11.1-2025.4.13)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단색화가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한 축이라면, 이강소가 속한 실험미술의 계보는 한국 컨템퍼러리 아트의 조건을 선구적으로 열어온 또 다른 축이다.
 
따라서 이번 뉴욕 개인전은 그래서 단순한 해외 전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한국 현대미술이 이미 확립된 모더니즘 회화의 국제적 성공을 넘어, 그동안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던 실험과 사유의 역사를 다시 세계 미술계에 제시하는 장면이다.
 
이강소의 작업은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가 하나의 양식이나 시장적 범주로 환원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한국 실험미술이 오늘날 국제 미술사 속에서 새롭게 읽힐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A Field of Becoming》은 이강소의 작업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또 다른 시간을 열어 보인다. 그것은 완성된 형식의 시간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화하고 생성되는 시간이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간 속에서 한국 실험미술은 단색화 너머, 한국 미술이 모던 아트에서 컨템퍼러리 아트로 이동해온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을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이강소 작가 / 사진: 갤러리현대

이강소 (Lee Kang So)
 
이강소는 1943년 대구에서 태어나 1965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 운동의 핵심 인물로 등장했으며, 이후 회화, 사진, 판화, 조각, 설치,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폭넓은 작업을 전개해왔다.
 
그는 예술을 고정된 물질적 결과물로 보기보다, 시간과 행위, 인식과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열린 과정으로 이해했다. 초기 퍼포먼스와 설치 작업에서부터 이후의 회화와 조각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은 현실과 이미지, 존재와 흔적, 생성과 소멸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최근에는 한국 실험미술에 대한 국제적 재조명과 함께 유럽과 미국의 주요 기관 및 갤러리를 통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좌측) 뉴욕 한국 문화원 전경, (우측) 한국 문화원 입구에 설치된 강익중의 설치작품 〈Hangeul Wall: Things I Love to Talk About〉, 2024. 이 작품은 26 x 72피트(8 x 22미터) 크기의 한글벽은 세계 시민들의 지혜와 경험을 연결하는 2만 개의 한글 타일로 구성되어 있다.
 
2024년 5월 뉴욕 한국 문화원은 LG CNS와의 협력으로 프로젝트 웹사이트를 런칭,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주제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창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웹사이트는 50개 이상의 국가에서 820만 회 이상의 방문을 기록했고, 두 달 동안 7,000여개의 작품이 제출되었다. 이 중 1,000개의 작품이 온라인 투표와 작가의 심사를 통해 선정되어 이 거대한 설치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 사진: KCCNY


뉴욕 한국 문화원

 
뉴욕 한국 문화원(Korean Cultural Center New York, KCCNY)은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한국 문화예술을 소개하는 대표 기관이다. 시각예술, 공연, 영화, 문학,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한국 문화와 국제 관객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KCCNY의 Atrium & Gallery는 한국 현대미술과 동시대미술을 미국 관객에게 소개하는 중요한 전시 공간이다. 맨해튼 중심부에 위치한 이 공간은 한국 작가들의 작업을 국제적 맥락 속에서 조명하며, 한국 미술의 해외 확장과 문화적 교류를 위한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전시 정보
 
전시명:《Lee Kang So: A Field of Becoming》
작가: 이강소 Lee Kang So
기간: 2026년 5월 13일 – 6월 20일
오프닝 리셉션: 2026년 5월 12일, 오후 6–8시
장소: Atrium & Gallery at the Korean Cultural Center New York
주소: 122 East 32nd Street, New York, NY 10016, USA
관람 시간: 화–금 10:00–18:00, 토 11:00–17:00
휴관: 일요일, 월요일
웹사이트:
https://www.koreanculture.org/gallery-korea/2026/05/lee-kang-so

https://www.koreanculture.org/exhibition-visual-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