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사에는 아직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한국 근대미술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한국 현대미술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그리고 한국 동시대미술은 언제부터라고 말할 수 있는가.
각 시대를 다룬 연구는 적지 않다. 그러나 근대·현대·동시대를 하나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연결하고, 각 시대의 성격과 경계를 일관된 기준으로 설명하는 체계는 아직 충분히 확립되지 않았다. 연구자에 따라 출발점이 다르고, 동일한 용어가 서로 다른 시대와
개념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문제는 연대를 어디에서 나눌 것인가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대 구분은
미술의 형식과 개념, 제도와 사회적 조건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설명하는 역사적 틀이다. 용어가 불분명하면 변화의 성격도 분명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 동시대미술의 시작을 논하기에 앞서, 근대·현대·동시대라는 용어가 언제 형성되었고 어떤 의미로 사용되어 왔는지부터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대미술’이라는
용어의 번역
한국에서 ‘현대미술’이라는
말은 현재 확인되는 연구에 따르면, 그 사용은 적어도 192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화가이자 비평가였던 김찬영은 일본 유학을 통해 접한 ‘Modern Art’를
‘현대미술’로 번역해 사용했다. 권행가와 김영나의 대담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영어의 ‘modern’이
‘근대’와 ‘현대’로 혼용되었으며, 김찬영이 1920년대
초 ‘모던 아트’를 ‘현대미술’로 번역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1]
김찬영은 1920년대 초『폐허』,『창조』,『영대』 등에서 후기인상주의 이후의 새로운 서구미술을 ‘현대미술’의 문제로 소개하고 옹호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역시 그를 후기인상주의
이후의 현대미술을 주장한 한국 초기 모더니스트로 설명한다.[2]
따라서 한국에서 ‘현대미술’이라는
용어는 1920년대 초 서구의
Modern Art를 수용하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근대’와 ‘현대’가 비교적 분명한 시대 개념으로 구분되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였다. 해방 이후의 작가들은 자신들의 시대를 식민지 시기의 앞선 세대와 구분하려 했고, 1950년대 이후에는 ‘근대미술’과
대비되는 ‘현대미술’이라는 표현이 널리 사용되었다. 이 과정에도 일본에서 사용되던 번역어의 영향이 있었으며, 당시에도
용어의 의미가 충분히 검토된 상태에서 정착한 것은 아니었다는 지적이 있다.[3]
이를 정리하면, 한국에서 ‘현대미술’은 1920년대 초 Modern Art의 번역어로 도입되기 시작했고, 해방 이후 특히 1950년대를 거치며 근대미술과 구분되는 시대 명칭으로 일반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번역 자체를 오늘날의 기준으로 잘못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이후 서구 미술사에서 Modern Art와 Contemporary
Art가 서로 다른 역사적 범주로 구분되었음에도, 한국에서는 두 개념이 계속 ‘현대미술’이라는 하나의 말로 번역되어 왔다는 점이다.
Modern과
Contemporary가 모두 ‘현대미술’이
되다
‘현대미술’이 Modern Art의 번역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초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문제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한국이 주로 수용하던 것은 인상주의 이후의 서구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였으며, Contemporary Art는 아직 오늘날과 같은 독립적인 미술사적 범주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서구 미술에서는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을 기존의 Modern Art와 구분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팝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퍼포먼스, 설치, 영상과 복합매체가 확산되면서 모더니즘과 그 이후의 미술을
하나의 범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Modern Art와 Contemporary Art가 모두 ‘현대미술’로 번역되는 관행이 이어졌다. 모더니즘을 다루는 책도 ‘현대미술사’가 되고,
Contemporary Art를 다루는 책과 전시도 ‘현대미술’로 소개되었다.
하나의 한국어 용어가 서로 다른 두 개의 영문 개념을 동시에 지칭하게 된 것이다.
이 문제는 단순한 언어적 중복이 아니다. Modern Art가 모더니즘을
중심으로 전개된 역사적 미술을 가리키고 Contemporary Art가 그 이후 형성된 새로운 미술의
조건을 의미한다면, 두 개념을 모두 ‘현대미술’이라고 부르는 순간 미술사적 전환의 경계도 흐려질 수밖에 없다.
김기수는 2018년 「어떻게 ‘컨템퍼러리
아트’를 번역할 것인가?」에서 Modern Art와 Contemporary Art를 구별되는 개념으로
전제하고, 두 용어의 한국어 번역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 체계로 정립되어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4]
이 논문은 특정 번역어 하나를 절대적인 정답으로 확정하기보다,
Contemporary Art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Modern Art의 번역 또한
함께 조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어 2019년 발표된 「한국 현대미술의 시대구분의 재정립의 문제」는 1960~70년대, 특히 1989년
이후 전개된 국제적 컨템퍼러리 아트 담론을 고려하여 한국 미술사의 시대 구분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5]
이미 국내 연구에서도 문제는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번역어 하나를
변경한다고 해서 혼란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근대·현대·동시대를 어떠한 역사적 기준으로 구분할 것인지가 함께 정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근대·현대·동시대의 불분명한 경계
한국 근대미술의 시작을 어디에서 설정할 것인가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었다.
개항과 서구 문물의 유입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 근대적 미술교육과
전시제도의 형성을 기준으로 볼 것인지, 서양화의 도입이나 ‘미술’이라는 자율적 제도의 성립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에 따라 시작 시점은 달라진다.
식민지 근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도 이 문제와 연결된다.
현대미술의 시작 역시 해방과 국가체제의 전환, 한국전쟁 이후의 추상미술, 1950년대 후반 앵포르멜, 1970년대의 모더니즘과 단색화 가운데
무엇을 중심적인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다르게 설명된다.
동시대미술 또한 1970년대 실험미술과 개념적 경향,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과 민중미술, 1990년대 세계화와 비엔날레
체제 가운데 어떤 변화를 핵심적인 전환으로 보느냐에 따라 출발점이 달라진다.
따라서 한국 동시대미술의 시작을 먼저 확정한 다음 근대와 현대를 그 앞에 배치하는 방식은 순서가 뒤바뀐 접근이
될 수 있다. 근대의 형성과 현대의 성격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동시대가 무엇으로부터 전환되었는지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하나의 연도를 정답으로 확정하는 일이 아니다. 정치사적
변화, 미술제도의 형성, 조형언어의 전환, 미술 개념의 변화와 국제 미술계와의 관계를 구분하여 검토하고, 각
시대의 중심적인 성격을 설명하는 일이다.
용어의 낙후와 인식의 왜곡
용어는 단순한 명칭이 아니다. 학문은 개념을 통해 사고하고, 개념은 용어를 통해 전달되고 축적된다.
Modern과
Contemporary를 모두 ‘현대미술’이라고
부르면 두 시대의 차이를 인식하기 어려워진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동시대미술이 모두 ‘현대미술’이라는
하나의 범주 안에 포함되고, 미술사적 시대와 현재 활동 여부도 뒤섞이게 된다.
이러한 혼란은 세 가지 층위에서 나타난다.
첫째는 번역의 혼란이다. 서로 다른 원어가 하나의 한국어로 번역된다.
둘째는 시대 구분의 혼란이다. 모던아트와 컨템퍼러리 아트의 역사적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셋째는 분류의 혼란이다. 현재 전시되거나 거래된다는 이유만으로
과거의 미술까지 동시대미술로 분류되기도 한다.
용어 사용의 낙후는 개념의 혼란을 낳고, 개념의 혼란은 시대 인식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불분명한 개념이 교육과 번역, 전시와
출판, 미술시장에서 반복되면 그 자체가 하나의 제도적 관행으로 굳어진다.
이러한 현상을 개념의 시대착오, 즉 개념적 아나크로니즘이라고 부를 수 있다. 과거에 만들어진 용어가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시대적
조건이 달라졌음에도 그 용어가 새롭게 형성된 개념적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채 사용된다는 점이 문제다.
단색화는 모던인가, 컨템퍼러리인가
단색화는 이러한 혼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단색화는 1970년대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흐름으로, 대체로 한국 모더니즘의 맥락에서 연구되어 왔다. 회화의 평면성과
물성, 반복적인 행위, 재료와 지지체에 대한 탐구, 재현을 최소화한 형식은 모더니즘 미술의 주요 문제와 연결된다.
그렇다고 단색화를 서구 모더니즘의 단순한 반복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단색화에는
한국의 물질문화와 신체적 수행, 자연관, 전후 사회와 미술제도의
특수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 작업이 형성되고 전개된 주된 미술사적 기반이 모더니즘이었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국제 전시와 갤러리, 아트페어와 미술시장에서는 단색화를 ‘Korean Contemporary Art’ 또는 ‘Contemporary
Korean Art’의 범주에 포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기에서 Contemporary는 미술사적 시대 명칭이라기보다 ‘현재 국제 미술계에서 전시되고 거래되는 한국미술’이라는 포괄적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시장과 전시의 분류에서는 생존 작가, 현재
유통되는 작품, 전후미술과 동시대미술이 하나의 컨템퍼러리 부문에 함께 배치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장과 전시의 실무적 분류를 미술사적 시대 구분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전시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작품이 동시대미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최근까지 활동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작가의 모든 작업이 같은 미술사적 시대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한
작가의 작업 안에서도 모더니즘적 국면과 그 이후의 변화가 함께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유통되는 한국미술’이라는
의미와 ‘동시대미술’이라는 미술사적 개념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단색화 사례는 현재성(currentness)과 동시대성(contemporaneity)이 반드시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단토와 오스본,
서로 다른 출발점
동시대미술의 시작을 둘러싼 서구 이론의 차이는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아서 단토는 1964년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를 미술사적 전환의
상징적 사건으로 보았다. 예술작품과 일상 사물이 외형만으로 구별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엇이 예술인가를
판단하는 문제는 시각적 형식에서 철학적·개념적 해석으로 이동한다.
단토가 말한 ‘미술의 종말’은
미술 제작의 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의 양식이 앞선 양식을 극복하며 역사를 진보시킨다는 모더니즘의
서사가 더 이상 미술 전체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 이후에는 다양한 양식과 매체가 공존하는
다원주의적이고 ‘포스트히스토리컬’한 상황이 전개된다.[6]
피터 오스본은 동시대미술을 포스트컨셉추얼 아트로 규정한다. 그의 관점에서 1960년대 후반 솔 르윗과 조셉 코수스로 대표되는 개념미술은 작품을 특정 매체와 동일시하던 기존의 미술관을
해체한 결정적인 계기였다. 개념성은 동시대미술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며, 작품은 개념과 물질적·미학적 구현을 함께 포함한다.[7]
오스본은 동시에 1989년 이후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초국가적 네트워크, 서로 다른 역사적 시간들이 하나의 현재 안에서 결합하는 글로벌 동시대성에 주목한다. 따라서 오스본에게 1989년은 개념미술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최초의
미술사적 전환이라기보다, 포스트컨셉추얼 미술이 글로벌 동시대미술의 체제로 조직되는 역사적 조건에 가깝다.
김기수의 연구 역시 컨템퍼러리 아트가 1960~70년대를 거쳐, 특히 1989년 이후 모던아트를 미술사적으로 대체한 담론으로 공론화되었다고
설명한다.
단토와 오스본의 차이를 1960~70년대와 1989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로만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단토는 주로 미술 내부의 역사적·철학적 전환을 설명한다.
오스본은 그 전환을 계승하면서 포스트컨셉추얼
미술의 존재 방식과 글로벌 동시대성의 조건을 설명한다.
동시대미술의 시대 구분에서는 미술 내부의 변화가 먼저 검토되어야 하고, 이미
변화한 미술이 세계화된 제도와 네트워크 안에서 어떻게 재편되었는지는 다음 층위에서 설명할 수 있다.
하나의 이론을 정설로 만드는 문제
국립현대미술관이 공개한 조주연의 「현대 미술의 세 개념」과 같은 강의는 현대·포스트모던·컨템퍼러리를 구분하는 이론을 공공 미술교육의 장에서 소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동시대문화예술강좌 역시 미술 양식의 변화가 역사와 사회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며 현대미술의
확장된 이해를 시도해 왔다.[8]
그러나 특정 강의나 저술에서 오스본의 동시대성 논의와 1989년 이후의
글로벌 전환이 주요 기준으로 제시된다고 해서, 그것이 동시대미술의 유일한 정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스본의 논의는 1989년 이후의 글로벌 컨템퍼러리 아트를 설명하는
매우 영향력 있는 모델이다. 하지만 미술사적 시대 구분에는 단토의 포스트히스토리컬 다원주의, 개념미술과 매체 개념의 해체,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비서구 지역에서 일어난 서로 다른 역사적 전환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특히 한국 미술사에는 서구의 연도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별도의 조건이 존재한다. 한국의 1970년대 실험미술과 단색화, 1980년대 민중미술과 다양한 형상미술, 1990년대 국제화와 비엔날레
체제는 서로 다른 미술사적·정치사회적 변화를 반영한다.
따라서 1989년은 한국 동시대미술을 해석하는 중요한 참고점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한국 미술사의 모든 변화를 설명하는 절대적 기준은 될 수 없다.
한국 미술사의 새로운 기준
한국 미술사의 시대 구분은 서구의 연대를 그대로 옮기거나 정치사의 구분만을 적용하는 방식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새로운 시대 구분은 적어도 네 가지 층위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첫째는 미술 개념의 변화다. 미술이 재현과 전통적 장르에서 벗어나
자율적 조형과 개념, 행위, 설치와 복합매체로 확장된 과정을
살펴야 한다.
둘째는 미술제도의 변화다. 미술교육과 전람회, 미술관, 비평, 갤러리와
시장, 국제교류가 어떠한 방식으로 형성되고 재편되었는지를 보아야 한다.
셋째는 작품과 조형언어의 변화다. 한국 미술 내부에서 기존의 양식과 미학이
언제 실질적으로 해체되거나 새로운 문제로 대체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넷째는 세계사적 조건의 변화다. 식민지배와 해방,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 세계화와
디지털 전환이 미술의 생산과 유통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근대·현대·동시대는
단순히 연도별로 잘라낸 구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미술적 조건을 가진 역사적 국면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한국의 근대미술은 서구적 미술 개념과 제도, 새로운 작가상과 전시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현대미술은 전후 추상과 모더니즘을 중심으로 미술의 자율성과 형식적·매체적
탐구가 전면화된 시기로 설명할 수 있다.
한국의 동시대미술은 모더니즘의 단일한 역사 서사가 해체되고, 개념·설치·영상·퍼포먼스와 사회적·정치적 실천이 다원화되며, 이후 글로벌 미술체계와 연결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각 시대의 정확한 출발점과 세부 기준은 후속 논의를 통해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세 시대가 같은 개념이 아니며, 각각의 형성과 전환을
설명할 일관된 기준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시대 구분을 위하여
한국 미술계가 다시 검토해야 할 것은 동시대미술이 1970년대에 시작되었는가, 1989년에 시작되었는가라는 단일한 연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먼저 근대는 무엇이며, 현대는 무엇이고, 동시대는 무엇인지를 미술사적으로 다시 정의해야 한다.
근대의 형성을 설명하지 못하면 현대가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극복했는지 알기 어렵다. 현대의 성격을 분명히 하지 못하면 동시대미술이 어떤 패러다임 이후에 등장했는지도 설명할 수 없다. 동시대의 조건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포스트 컨템퍼러리나 미래의 미술을 논하는 것 역시 개념적 공백 위에
새로운 용어를 덧붙이는 일이 될 수 있다.
‘현대미술’이라는 말이 1920년대 초 Modern Art의 번역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당시의 역사적 조건에 따른 결과였다. 당시의 번역 자체를 오늘의 관점에서 잘못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Modern Art와 Contemporary Art의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용어와 시대 구분이 반복되고 있다는 데 있다.
시대가 변했음에도 시대를 설명하는 언어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인식은
과거의 분류 체계에 머물게 된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미술계에서 다시 검토해야 할 개념의 시대착오다.
한국 미술사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새로운 번역어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근대·현대·동시대를 하나의 연속된 역사 속에서
검토하고, 각각의 시대를 구분하는 미술사적 기준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시대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과거를 정리하기 위한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한국 동시대미술의 미래를 논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각주
[1] 권행가·김영나,「저자와의 대화로 살펴본『한국의 미술들: 개항에서 해방까지』」. 대담에서는 일제강점기 영어 ‘modern’이 ‘근대’와
‘현대’로 혼용되었으며, 김찬영이 1920년대 초 일본 유학기에 접한 ‘Modern Art’를 ‘현대미술’로 번역했다고 설명한다.
[2] 김찬영은 1920년대 초『폐허』,『창조』,『영대』를 통해 후기인상주의와 입체주의, 미래주의 등 새로운 서구미술을 소개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김찬영」항목 참조.
[3] 권행가·김영나의 대담에 따르면 ‘근대’와
‘현대’가 명확한 시대 개념으로 구분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이며, 1950년대 이후 ‘현대미술’이 널리 사용된 배경에는 일본식 용어의 유입이 있었다.
[4] 김기수는 Contemporary Art의 한국어 번역 후보들을 검토하고,
Contemporary Art와 Modern Art의 번역이 상호 모순되지 않는 개념 체계로
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5] 김기수의 2019년 논문은 컨템퍼러리 아트 담론을 고려해 한국 현대미술의 시대 구분을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6] 아서
단토에게 ‘미술의 종말’은 미술 자체의 소멸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양식이 미술의 진행 방향을 독점하던 서사의 종결을 의미한다. 이후의
미술은 특정 양식의 필연적 우위를 인정하지 않는 다원주의적 상태에 놓인다.
[7] 피터
오스본은 동시대미술을 포스트컨셉추얼 아트로 규정한다. 개념성은 동시대미술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며, 작품은 개념과 물질적·미학적 구현을 함께 포함한다.
[8] 국립현대미술관이
공개한 조주연의「현대 미술의 세 개념」은 국내 공공 미술교육에서 현대·포스트모던·컨템퍼러리의 구분이 소개되는 사례다. 본문은 특정 강의자의 전체 이론을
평가하기보다 하나의 이론적 설명이 정설로 단순화될 가능성을 검토한다.
참고문헌
Arthur C. Danto, After the End
of Art: Contemporary Art and the Pale of Histor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7.
Peter Osborne, Anywhere or Not
at All: Philosophy of Contemporary Art, Verso, 2013.
김기수,「어떻게 ‘컨템퍼러리
아트’를 번역할 것인가?」,『서양미술사학회 논문집』제48집, 서양미술사학회, 2018, 211–237쪽. (KCI)
김기수,「한국 현대미술의 시대구분의 재정립의 문제: 컨템퍼러리 아트의 담론의 관점에서」,『현대미술학 논문집』제23권 제1호, 현대미술학회, 2019, 35–62쪽. (KCI)
권행가·김영나,「저자와의
대화로 살펴본『한국의 미술들: 개항에서 해방까지』」,『한국근현대미술사학』제47집,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24, 413–430쪽. (KCI)
김영나,『한국의 미술들: 개항에서
해방까지』, 워크룸프레스, 2024.
김영나,『1945년 이후
한국현대미술』, 미진사, 2020.
김찬영,「현대예술의 대안에서—회화에
표현된 ‘포스트임프레셔니즘’과 ‘큐비즘’」,『창조』제8호, 1921년.
이승현,「한국 근현대미술의 새 역사, 어떻게 쓸 것인가?」,『미술사학보』제40집, 미술사학연구회,
2013, 35–69쪽.
한국학중앙연구원,「김찬영」,『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John Rapko, “Anywhere or Not at All:
Philosophy of Contemporary Art,” Notre Dame Philosophical Reviews,
December 7, 2013.
국립현대미술관,「현대 미술의 세 개념」, 조주연, 동시대문화예술강좌. (국립현대미술관)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