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리지갤러리는 이예승 작가의 개인전 《다락: 기억·구름·신기루》를 11월
29일까지 개최한다.
이예승은 VR, AR, 3D 프린터,
AI 등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작업해 온 작가이다. 이번 전시 《다락: 기억·구름·신기루》에서
관객은 공간 입구에 놓인 실을 손에 쥐고 들어서 커튼으로 구획된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전시의 제목인 ‘다락’은
우리나라 전통 가옥에 있는 창고를 뜻한다. 평소 눈에 띄지 않던 미지의 장소 앞에서 호기심이 발동하고, 마침내 낯선 곳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모험이 주는 떨림과 두려움, 설렘과
같은 복잡한 감정이 일어날 것이다. 현실의 장소로 돌아와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 경험은 기억의 파편으로 남아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작가에게 다락은 이러한 이동과 접촉을 통해 감각적 경험을 하게 되는 현실이자 비현실의 공간이며, 무언가 남겨진 비물질적 장소이다.

Installation view of 《DARAK: Memory, Cloud, Mirage》 © Perigee Gallery
그는 커튼 뒤 설치물들을 통해 관객 각각의 잠재된 기억이 작업과 접촉하는 순간 새로운 인식으로 전환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커튼을 열고 닫고,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접촉의
움직임, 공간에 앉아 글을 읽거나 전시 전체를 관조하는 정적인 행위를 통해 기억과 감각을 응시할 수
있다.
작가는 감각적 접촉과 관념적 사유를 통해 획득되는 개인의 사적인 경험과 기억의 가능성을 믿는다. 나아가 객관적으로 쌓여가는 정보와 감각적으로 나타나는 주관적 경험이 서로 접촉하는 사이의 지점에서 균형을 잡는
태도에 집중한다.

Installation view of 《DARAK: Memory, Cloud, Mirage》 © Perigee Gallery
이를 위해 전시장은 물질의 존재 양태인 형태, 밀도, 움직임 외에도 빛, 색, 공기와
같은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는 동적이면서도 정적인 시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허상인 신기루를 현실에
계속해서 존재하는 새로운 실재로 남겨놓기 위해 서로의 거리를 천천히 느끼고 생각하게 하려는 작가의 사유를 담고 있다.
이예승이 이번 전시를 통해 의도하는 바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어 공유 가능한 가상, 공유 불가능한 현실을 이어 나가며, 서서히 드러나는 형체와 감촉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사유는 우리 손에 쥐어진 실처럼 어떤 결론으로 귀결되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해, 지금의 현실 혹은 비현실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며 계속해서 이 순간을
의심하게 만드는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