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여전히 확장 중인 세계적 현상
 
최근에도 여전히 K-컬처의 확장은 멈추지 않고 있다. 리스본에서 열린 <뮤직뱅크 인 리스본> 공연은 IVE, 태민, RIIZE 등 여러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2만여 명의 팬을 모았다.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유럽 현지 팬덤을 기반으로 한 공연 기획과 실연 체계가 작동하고 있었다.


<뮤직뱅크 인 리스본> / 사진: KBS2



<뮤직뱅크 인 리스본> / 사진: KBS2



〈America’s Got Talent〉 무대에 올른 걸그룹 르세라핌(LE SSERAFIM) / 사진:유투브캡처

또한 걸그룹 르세라핌(LE SSERAFIM)은 미국의 대표 오디션 프로그램〈America’s Got Talent〉무대에 올라 영어 버전 곡을 선보이며, K-POP 걸그룹 최초로 대형 미국 방송 무대에 진출했다. 이는 한국 대중문화가 더 이상 외부에서 소비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글로벌 미디어 구조 속에서 작동하는 주체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K-POP Demon Hunters〉, 한류의 새로운 구조를 드러내다

2025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어 전세계를 강타한〈K-POP Demon Hunters〉는 K-컬처가 장르의 경계를 넘는 복합 구조로 진화했음을 상징한다.
 
음악, 애니메이션, 게임적 리듬, 신화적 서사를 결합한 이 작품은 공개 직후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스트리밍-극장-음원’이 연결된 통합 유통 모델을 구현했다.


EJAE, 오드리 누나(Audrey Nuna), 레이 아미(Rei Ami) — 〈K-POP Demon Hunters: Golden〉 출연, “더 투나잇 쇼(The Tonight Show)” 무대 / 사진: 유튜브 화면 캡처

이는 K-POP의 팬덤 문화, 애니메이션의 비주얼 언어, 게임의 세계관 확장성을 하나의 IP로 통합한 최초의 글로벌 사례라 할 수 있다. 결국 K-컬처는 더 이상 한 장르나 국가 브랜드를 넘어, 서사·이미지·소리·디지털 네트워크가 교차하는 복합 문화 시스템 으로 진화하고 있다.
 
 
 
K-컬처의 성공, 창의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외신과 학계는 한결같이 K-컬처의 확산을 구조적 결과로 본다.
 
프랑스 ‘르몽드(Le Monde)’는 “한국은 단 두 세대 만에 음악, 영화, 패션, 미식 등 전 영역에서 세계적 영향력을 구축했으며, 그 배경에는 정부의 전략적 투자와 산업자본의 결합, 그리고 콘텐츠 수출 인프라 구축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K-컬처의 성장 요인으로 디지털 플랫폼과 팬덤의 상호작용, 정부의 문화외교, 민간 자본의 집중적 투자, 그리고 창작자들의 자율적 실험을 꼽는다.

즉, 창의성이 독립적으로 작동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하는 제도·자본·정책·기술의 네 축이 맞물려 작동한 결과였다. 한국 문화가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은 ‘열정’이 아니라 시스템의 축적 덕분이었다.
 
 

한국 동시대 미술의 현재

최근 한국 동시대 미술계는 경제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 국제적인 수준의 미술관 전시와 비엔날레, 그리고 프리즈 등의 아트페어에서 한국 작가들의 이름이 점차 늘고 있다.


한국 동시대 미술 작가들의 해외진출 기사 / 사진: K-ARTNOW 캡처화면

하지만 이 현상은 한국 동시대 미술계의 인프라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역량과 일시적 기회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술계의 구조는 아직도 성과 중심의 행정 프레임 안에 묶여 있다. 완성된 전시, 관객 수, 해외 진출 실적 같은 수치가 성과의 기준이 되고, 창작의 과정과 실험의 실패는 평가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먼저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를 축적해 가는 ‘시간’과  ‘공간’ 이다.
 
 
순수예술을 제대로 지원해야 하는 이유

문화의 지속성은 그 나라의 순수예술 토대가 얼마나 굳건한가 에 달려 있다. 대중문화는 순수예술이 만들어내는 미적 감수성과 사유의 깊이 위에서 성장한다.
 
기초가 부실하면 문화는 일시적 유행으로 사라지지만, 기초가 단단하면 시대가 변해도 그 문화는 스스로를 갱신하며 살아남는다.


한국 동시대 미술 전문가들의 해외진출 기사 / 사진: K-ARTNOW 캡처화면

순수미술은 단순히 ‘하나의 장르’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어떻게 사고하고, 무엇을 아름다움으로 여기는가 를 드러내는 집단적 지성의 총체다.
 
따라서 순수예술을 지원한다는 것은 개별 작가를 돕는 행정 행위가 아니라, 국가의 미적 사고력과 창의적 상상력을 확장하는 일 이다. 문화산업이 지속되려면 그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과 언어가 태어나야 한다. 그 원천은 언제나 순수예술의 실험과 탐구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문화가 내일의 산업으로 이어지려면, 지금 바로 기초예술의 생산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결국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은 그 나라의 순수예술이 얼마나 자유롭고 지속적으로 창작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순수예술이 약한 나라는 문화를 소비할 수는 있어도, 제대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


한국 동시대 미술 전문 기관들의 해외진출 기사 / 사진: K-ARTNOW 캡처화면

그러나 오늘의 한국 문화정책은 이 기초 영역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순수미술은 각종 산업 담론 속에서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며, 대부분의 지원사업은 ‘결과물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미 완성된 전시나 발표, 유통 단계에 예산이 집중되고, 정작 창작의 출발점인 리서치·스튜디오 환경·장기 프로젝트는 뒷전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지원 성과에 대한 결과 및 예산 집행의 불투명성이다. 
 
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등 주요 기관은 선정 과정과 이후 성과에 대한 데이터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고, 그 결과가 실제로 예술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구조가 없다. 이로 인해 지원정책은 공공적 신뢰를 잃고, 예술가와 행정 사이의 불균형만 심화된다.
 
이러한 구조는 국제 미술 생태계의 기준과도 거리가 멀다. 해외 주요국들은 투명한 평가와 장기적 지원을 통해 예술의 다양성과 실험성을 키워가지만, 한국은 여전히 단기성과 중심·불투명한 행정 운영에 머물러 있다.
 
결국 순수미술의 창의적 토양이 약화되고, 이는 한국 문화 전체의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위협한다.
 
이런 구조는 예술가의 지속 가능한 창작을 보장하기보다, 이미 성과를 낸 작품을 ‘소비 가능한 상품’으로 다루는 경향을 강화한다. 결과적으로 국가가 내세우는 ‘콘텐츠 생태계’와도 모순된다. 진정한 생태계란 순환과 성장의 구조이지, 단기 성과물의 집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순수미술 분야는 창작 공간, 연구, 아카이브, 장기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은 거의 미비하며, 예술가 개개인이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기반 인프라는 여전히 취약하다.
 
그 결과 많은 젊은 작가들이 국제 무대에서 성취를 이루면서도, 국내에서는 안정적 창작 환경을 확보하지 못해 상업 시장에 종속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문화정책의 구조적 결함이자 장기적 손실이다.
 
 
 
세계 문화 강국들의 공통된 전략 ― 기초예술의 제도화
 
독일, 프랑스, 영국 등 문화 강국들은 오래전부터 기초예술을 국가 경쟁력의 근간으로 삼았다.
 
독일은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협력하여 예술가 아틀리에와 쿤스트할레를 운영하고, 실험적 프로젝트에 장기적 지원을 제공한다.
 
프랑스 국립현대미술센터(CNAP)는 작가에게 연구비와 제작비를 지원하고, 파리·마르세유 등의 공공 레지던시 공간을 통해 예술가를 ‘성과 생산자’가 아닌 ‘연구자’로 인정한다.
 
영국의 아트카운슬은 결과가 불확실하더라도 예술적 가치만으로 지원을 결정하며, 일부 프로그램은 3년 이상 장기적으로 운영된다. 이들은 예술을 ‘경제의 부속물’이 아니라 사회가 미래를 상상하는 방법으로 본다.


영국의 아트 카운슬 홈페이지 캡처화면



영국의 아트 카운슬 홈페이지 캡처화면



예술경영지원센터 홈페이지 화면 캡처

순수미술 정책의 구조적 문제

한국의 순수미술 정책은 여전히 성과 중심 행정 구조에 머물러 있다.
 
정부와 지원기관은 완성된 전시, 해외 진출 실적 등 측정 가능한 결과물만을 기준으로 예산을 배분한다. 그 결과 예술의 본질인 창작 과정—리서치, 실험, 실패, 축적—은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대부분의 지원 사업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도 않고 그 목적도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불분명하다. 또한 예산도 대부분 일시적이거나 단년도에 묶여 있어 장기 프로젝트나 연구형 창작이 구조적으로 어렵다.
 
기초예술은 기본적인 컨텐츠의 생산구조에 대한 지원이 필수적이지만 이 부분은 완전히 도외시되며 단기성과나 상업적 결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예술경영지원센터 홈페이지 화면 캡처

한국 미술의 세계화를 위한 현실적 해법

한국 동시대 미술이 세계 미술의 주요 생산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순수미술에 특화된 모델을 갖춘 완전히 개혁된 인프라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술경영지원센터 홈페이지 화면 캡처

예를 들어, 예술가가 장기적으로 연구하고 실패할 수 있는 제도적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3~5년 단위의 장기 창작지원 제도를 통해, 창작을 결과물이 아닌 지식생산 과정으로 인정해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가 제일 취약한 국가 단위의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을 구축해 작가, 전시, 비평의 기록을 통합하고, 이를 국제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기록의 축적은 예술의 신뢰이자 국가의 소중한 문화적 유산이다. 아울러 이러한 기반이 마련되지 않으면 해외 진출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데 이런 부분에 대한 공통적 인식이 거의 없는 것이 우리나라 미술계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제 한국 동시대 미술계가 해야 할 일은 K-컬처가 이룬 성과를 교훈삼아 구조적 지속성을 이룰 수 있는 근본적인 체질 개혁을 이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낙후된 구조를 개혁하고 글로벌 스탠다드를 갖춘 인프라 구축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만 지금 세계적인 K-컬처의 흐름을 K-아트의 시대로 이을 수 있으며, 비로소 한국 미술은 세계 동시대 미술의 중심 무대에서 ‘순수미술의 생산자이자 생산지’ 로 제대로 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