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서울(Frieze Seoul)’‘키아프 서울(Kiaf SEOUL)’의 파트너십이 5년 추가 연장되었다. 한국화랑협회 임시총회에서 전원 찬성에 가까운 합의로 통과된 이번 결정은 단순한 계약 연장을 넘어, 키아프를 총괄 운영하는 한국화랑협회가 현재의 아트페어 구조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2월 18일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화랑협회 임시 총회 모습. / 사진: 한국화랑협회

2022년 첫 공동 개최 이후 4년, 그리고 2031년까지 이어질 장기 협력 체제는 이제 단발적 이벤트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고정된 시스템으로 자리 잡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공존 구조가 향후 한국 미술시장에 어떤 역할과 방향성을 부여하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프리즈의 진입이 만든 가시적 성과
 
프리즈 서울의 등장은 서울을 단기간에 아시아 미술 시장의 주요 거점으로 부상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세계적 브랜드가 보유한 컬렉터 네트워크, 메가 갤러리의 지속적인 참여, 글로벌 미디어의 집중 조명은 기존 국내 아트페어가 독자적으로 도달하기 어려웠던 지점을 비교적 빠르게 넘어설 수 있게 했다.


키아프와 프리즈서울의 주요 인사들이 지난 8월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공동 기자간담회를 갖고 9월 공동 아트페어에 대한 구상을 발표하는 모습.
오른쪽부터 패트릭 리 프리즈 서울 대표, 이성훈 화랑협회 회장, 김정숙 화랑협회 홍보 이사. / 사진: 국민일보

이 과정에서 키아프는 프리즈와의 병행 개최를 통해 해외 컬렉터와 국제 미디어의 동선 안으로 진입하는 데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었다. 이를 통해 한국 미술시장이 국제 미술시장과 보다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접점이 마련되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병행 개최의 구조, 공유와 분리의 공존
 
그러나 지난 4년간의 공동 개최는 성과만큼이나 분명한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두 행사는 같은 공간과 시기를 공유하지만, 기획과 큐레이션의 방향과 밀도는 뚜렷하게 갈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건축사무소 사무소효자(Samuso Hyoja)가 설계한 프리즈 하우스 서울의 입구 전경. 일본 건축 스튜디오 SANAA가 제작한 설치작품(site-specific installation)이 함께 선보였다. / 사진: 프리즈(Frieze) 공식 홈페이지.

프리즈가 국제적 기준에 기반한 큐레이션 섹션과 담론 중심 프로그램을 통해 동시대성을 강조해온 반면, 키아프는 여전히 전통적인 부스 중심 구조와 국내 갤러리 위주의 출품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두 행사는 나란히 열리지만, 서로 다른 언어와 리듬을 가진 플랫폼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최근 국내외 아트페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제이슨 함 갤러리에 참가한 한국의 젊은 작가들과 프리즈 서울 2025의 부스 모습 / 사진: K-ARTNOW

특히 프리즈는 2025년 한국의 젊은 작가들과 신생 갤러리와의 협업을 통해, 자본 중심의 아트페어를 한국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기획의 장으로 확장했다. 이는 2026년 이후 프리즈가 수행할 수 있는 또 다른 역할을 기대하게 만드는 중요한 지점이다.
 
 
 
“프리즈는 보고, 키아프는 산다”는 인식의 고착

이러한 구조적 차이는 관람객 인식의 분화로 이어졌다. “프리즈는 보러 가고, 키아프는 사러 간다”는 말은, 키아프가 볼거리가 부족한 전형적인 시장 중심 아트페어로 인식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매년 유사한 형식의 이벤트가 반복되고, 국내 주요 작가들의 출품 부재가 이어지면서 키아프가 한국 동시대 미술의 현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플랫폼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 역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는 키아프가 여전히 로컬에 머물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고급화의 이면, 내부 생태계의 균열

프리즈 서울의 성공은 한국 미술시장의 확대와 상대적인 고급화를 촉진했지만, 그 이면에서는 생태계 내부의 양극화 또한 감지된다. 일부 중소 갤러리들은 임대료와 부대 비용 상승, 주목도 경쟁에서의 불리함으로 인해 상대적 소외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글로벌 브랜드의 유입은 시장의 외형을 키우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그 성과가 고르게 분배되지 못한 채 자본 중심 구조로 고착되는 문제 역시 함께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키아프가 확보해야 할 차별적 위치

이 지점은 키아프가 단순히 프리즈와 ‘함께 열리는 연례 행사’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를 분명히 보여준다. 키아프는 프리즈와 동일한 모델을 반복하기보다, 프리즈가 구조적으로 포괄하기 어려운 영역을 전략적으로 확장해 나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 비영리 전시 플랫폼, 지역 기반 창작자 네트워크와의 연계와 같은 프로그램은 그 대표적인 가능성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로컬 생태계의 밀도를 기획과 프로그램으로 전환할 수 있을 때, 키아프는 단순한 거래의 장을 넘어 한국 동시대 미술의 토양을 진단하고 확장하는 생태계를 갖춘 새로운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다.
 
 
 
기획의 문제, 양이 아닌 질의 경쟁

키아프가 직면한 과제는 더 이상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참가 화랑 수나 해외 갤러리 유치에만 의존하는 확장 방식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신진 작가 육성, 실험적 전시 형식, 나아가 동아시아·동남아시아 미술계와의 구조적 연계를 통해 단순 소비 시장이 아닌 생산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를 대표하는 큐레이터와 기획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주제 기반 섹션과 프로젝트를 새롭게 구성하고, 키아프만의 문제의식과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이제 플랫폼의 위상은 ‘무엇을 사고파는가’가 아니라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Kiaf SEOUL 2026 갤러리 신청 ©Kiaf

향후 5년, 키아프의 시험대

이번 5년 연장은 키아프에게 국제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유예 기간이자 중요한 시험대다. 프리즈와의 병행 개최는 더 이상 그 자체로 성과가 될 수 없으며, 이제는 키아프가 기존의 방식을 넘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된다.
 
키아프는 글로벌 브랜드에 기대는 지역 파트너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동시대적 역할을 스스로 재정의하며 한국 미술시장 생태계를 재구성하는 주체로 나아갈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향후 5년간 키아프의 기획과 실행을 통해 드러날 것이며, 그 결과는 한국 미술의 국제적 위상뿐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의 문화적 좌표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