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 뒤의 불안
오늘날 동시대 미술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보인다. 세계 곳곳의 아트페어는 수십만 명의 관람객을 불러 모으고, 경매장에서는
새로운 기록이 세워진다.

프리즈서울 2025에서 약 67억원으로 최고가를 기록한 마크 브래드포드의 작품앞에 많은 관람객들이 모여있다.
우리나라 역시 프리즈 서울을 기점으로 아시아 미술시장의 주목을
받으며, 아트부산·아트광주 등 지역 페어까지 확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SNS 피드는 전시 인증샷으로 넘쳐나고, 블록버스터
전시는 줄 서는 관람객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 화려한 풍경 속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불안을 느끼게 된다. 작품의 의미와 예술의 본질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고, 가격·브랜드·이미지 같은 외부 지표가 예술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주객전도의 시대’다.
주객전도란 무엇인가
‘주객전도’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원래 목적이어야 할 것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도구적 요소가 본질을 압도하는 현상이다.
본래 예술의 본질은 창작의 의미,
미적 탐구, 자율성에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본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시장 논리와 이미지 소비가 본질처럼 군림한다. 우리는 이 시대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본질이
비본질에 의해 왜곡된 결과로 보아야 할까? 여기에서 출발하는 질문은 동시대 미술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실존적 물음이다.

중국 상하이 파워롱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한국의 추상미술:김환기와 단색화》전시 중 이우환 회화 전시 전경.(2019) /사진: 서울경제

중국 상하이 파워롱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한국의 추상미술:김환기와 단색화》전시 중 이우환 회화 전시 전경.(2019) /사진: 서울경제
한국적 맥락: 단색화에서
젊은 작가까지
한국 미술의 풍경을 먼저 보자.
지난 10여 년간 단색화는 글로벌 시장에서 각광받으며 한국 미술의 ‘브랜드’로 자리했다. 그러나
단색화의 담론은 작품의 미학적 성취보다는 ‘한국적 모더니즘’이라는
상징성과 투자 가치로 소비되었다. 이어 등장한 젊은 작가들의 시장 또한 유사하다. 작품의 내용보다 “지금 사야 오르는 작가”라는 투자적 레이블이 먼저 붙는다. 작품은 이름값을 증명하는 부속물이
되고, 창작의 내적 의미는 부차화된다.

한국 단색화의 거장 고(故) 박서보 화백의 작품을 LG의 뛰어난 색채 기술과 AI 기술로 재해석해 «프리즈 서울 2025»에서 선보였다.

프리즈 서울 2025가 진행되는 서울 코엑스에 마련된 ‘LG OLED TV 라운지’ 전시장 입구 전경.

2021년 3월 11일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NFT 미술품으로서는 처음으로 입찰을 시작한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작품 <매일: 첫 5000일> 은 6930만달러(약 785억원)에 낙찰됐다. / 크리스티 경매 제공
세계적 맥락: 브랜드
작가와 NFT 버블
세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같은 작가는 작품보다 브랜드와 상품성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NFT 열풍은 예술의 내용과 무관하게 블록체인으로 보증된 ‘희소성’이 곧 예술적 가치로 포장된 대표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열풍이 꺼지자
남은 것은 투기적 버블과 신뢰 상실뿐이었다. 이처럼 예술은 본질적 가치보다 기호와 자본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가치—즉 ‘기호자본주의’—에 종속된다.

제프 쿤스: 풍선 강아지(마젠타) / 사진: www.jeffkoons.com

Gettin' Busy Balloon Dog Sculpture / Photo: artofplay.com
기호자본주의란 무엇인가
‘기호자본주의(sign capitalism)’라는 개념은 자본이 더 이상 물질적 생산에 국한되지 않고, 이미지·브랜드·기호 자체를
교환 가치로 삼는 체제를 가리킨다.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 코디최(60)의 1999년 데이터베이스(DB) 페인팅 연작 '애니멀 토템(Animal Totem)' 중 1점을 전환한 대체불가토큰(NFT·Non-Fungible Token) 작품으로 가격이 무려 7만이더리움(약 1750억원)이다.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기호가치(sign-value)’는 상품이 단순히 효용이나 가격이 아니라, 그것이
가진 상징성으로 소비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대 미술은 이러한 기호자본주의의 전형적인 장이다. 작품은 미적·내적 의미보다 “소속된
갤러리”, “팔로워 수”, “낙찰가”라는 기호적 지표로 가치가 매겨진다.
여기에 부르디외의 이론은 중요한 통찰을 더해준다. 그는 예술을 하나의 ‘장(field)’으로
보고, 그 안에서 작동하는 권력 관계를 ‘문화자본’과 ‘상징자본’으로 설명했다.
즉, 작품의 가치는
작품 자체의 본질에서 나오기보다, 그것을 둘러싼 제도·비평·갤러리·컬렉터의 권력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현상—작품보다 브랜드, 경험보다 인증—은 부르디외가 말한 상징자본이 극단적으로 기호화된
결과다. 작품은 미적 실천의 산물이 아니라, 특정 네트워크와
권위 체계가 부여한 기호로 거래된다.
또한 라자라토는 『Signs
and Machines』에서 현대 자본주의를 “기호와 욕망을 동원하는 체제”로 설명했다.
자본은 단순히 노동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기호·소비
욕망을 조직하여 새로운 가치 생산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동시대 미술은 바로 이 구조 속에 있다. 작품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기호 장치로 작동하며, SNS 인증샷과
아트페어 거래는 ‘욕망의 기호 경제학’을 충실히 반영한다. 라자라토의 시각에서 보자면, 오늘날 미술은 더 이상 자율적 예술행위가
아니라, 자본이 욕망을 조직하기 위해 동원하는 기호 기계(sign-machine)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전시의 변질: 감상에서
인증으로
전시의 성격도 달라졌다. 한국에서
론 뮤익 전시는 수십만 명을 모으며 흥행했지만, 관객의 관심은 작품의 의미보다는 SNS에 남길 사진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론 뮤익》전시장면 / 사진: 중앙일보

국립현대미술관의《론 뮤익》전시가 개막 90일 만에 누적관람객 수 50만 명 돌파 기록을 달성했다(2025.4.11.-7.9.).
세계적으로도 팀랩이나 반 고흐 몰입형 전시는 작품 감상이 아니라
체험 소비로 전환되었다. 전시는 감상의 장이 아니라 이벤트 산업의 무대가 되고, 작품은 이미지 소비를 위한 배경이 된다. 이러한 변질은 예술을 더욱
기호자본주의적 질서에 종속시킨다.
왜곡의 구조
이러한 전도 현상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첫째,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은 금융화된 자산으로 전락했다. 작품은 가격 그래프 속에서 거래되는 투자 대상이 되었다.
둘째, 디지털 전환과 SNS는 작품을 이미지 조각으로 환원했다. 관람의 시간은 즉각적 소비로
압축되고, 작품은 해시태그로 흘러간다.
셋째, 제도의 권위는
약화되었다. 과거 비평과 공공 미술관이 가치 판단의 기준을 제공했다면,
이제는 영향력을 잃고 흥행 지표와 여론에 의존한다. 그 결과 예술은 스스로 설 자리를 잃고, 외부 지표에 의해 규정되는 비본질적 장치로 전락했다.
가치 생산자의 문제
그렇다면 진정한 가치 생산자는 누구인가? 작가인가, 대중인가, 제도인가, 자본인가? 오늘날 가치 생산은 다중적으로 이루어진다.
아트페어 입성이 미술관 전시보다 더 큰 의미를 갖고, 세계적으로는 컬렉터·기관·알고리즘이
작가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가치의 다중화는 곧 본질의 희석을 뜻한다. 작품은 작품 자체로 의미를 가지기보다, 관계망 속에서 거래되는 기호로
소비된다. 이는 부르디외가 지적한 ‘상징자본의 독점적 힘’과, 라자라토가 말한 ‘욕망의
기호 장치’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대안: 신뢰의
재구성
이 모든 현실을 단순히 ‘새로운
시대의 필연적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는 본질이
비본질에 의해 왜곡된 상황이며, 우리는 그것을 비판적으로 직시해야 한다.
대안은 본질을 되찾는 데 있다.
물론 과거의 숭고와 자율성을 단순 복원할 수는 없다.
대신 새로운 신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비평은 다시 공적 언어를 제공하고, 미술관과 공공기관은 시장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예술적 가치 중심의 기획을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예술은 공동체적 가치,
윤리적 실천, 지속가능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
결론: 실존적
질문으로 돌아가기
“주객전도의 시대”는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동시대 미술이 직면한 실존적 위기의 이름이다. 한국과 세계 모두에서 예술은 여전히 본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기호자본주의라는 구조 속에서 비본질에 의해 잠식되고 있다.
부르디외의 언어로 말하면 예술은 상징자본의 독점이 지배하는 장이
되었고, 라자라토의 개념으로 보자면 미술은 욕망을 조직하는 기호 기계로 전락했다.
우리가 지금 잡아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성찰과 답변 없이는, 동시대 미술은 시장과 이미지의
소음 속에서 길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을 끝까지 붙들고, 본질을
다시 사유하는 길 위에서만 우리는 주객전도의 시대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