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키아프와 프리즈 아트페어의 성과를 보면 아직은 한국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가 되었음을 증명한 자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젊은 작가들의 실질적인 판매 성과와 국내
중견 갤러리들의 안정적 실적이 확인되면서, 한국 시장이 단순한 소비의 장이 아니라 생산과 유통이
함께 작동하는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2025 포커스 아시아 스탠드상 수상자, Kohesi Initiatives. 사진: Wecap Studio. 제공: Frieze
프리즈라는 국제 수준의 아트페어를 통해 한국 미술 시장의 외연이
넓어졌고, 프리즈의 4년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한국 동시대 미술 시장 운영의 체계화를 통하여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세계 무대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젊은 작가들의 성과, 시장
활력의 새로운 신호
프리즈 서울의 가장 뚜렷한 변화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활발히
거래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미래는 스프루스 마거스를 통해 약 4,800만
원대($36,000)의 작품을 판매하며 국제 무대에서 주목을 받았다.
정희민은 타데우스 로팍 부스에서 3천만 원대($30,000)의
회화를 판매했고, 강서경은 티나 킴 갤러리에서 2천만 원대($17,000) 조각을 판매하며 해외 컬렉터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미래 작가 모습

테이트모던 터빈 홀에서 2024년 개최된 《현대 커미션: 이미래: Open Wound》 전시모습
신생 갤러리 디스위켄드룸의 사례도 눈길을 끌었다. 김진희의 회화가 2천만 원 후반~3천만
원대 초반(€18,000~€20,000)에 판매되었고, 최지원과
김서울 역시 각각 2천만 원 후반대 작품을 거래하며 젊은 작가군이 안정적인 성과를 냈다.

디스위켄드룸, 프리즈 서울 2025. 사진: Wecap Studio. 제공: Frieze

신생갤러리 디스위켄드룸 전경 / 사진:바자

개인전 대표 작품 <멈춰버린 순간>(2023) 앞에 선 최지원 작가 / 사진:디스위켄드룸
이러한 거래는 단색화 거장이나 근대 작가군에 국한되지 않고, 현재 활동하는 젊은 세대의 작품도 시장에서 충분한 수요를 얻고 있음을 증명했다. 특히 2천만~5천만 원대
거래는 신규 컬렉터의 시장 진입을 촉진하는 중요한 가격대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최근 국내외 아트페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제이슨 함 갤러리 부스 모습
중견 갤러리들의 안정적 판매, 자생적 성장의 증거
국내 중견 갤러리들의 성과도 확연했다. 학고재는 김환기의 1960년대 작품을 약 20억 원에 판매하는 동시에, 송현숙의 회화를 1억 원대에 거래시키며 근대와 동시대 작가군을 아우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국제갤러리는
하종현의 회화를 2억 원대에 판매한 것을 비롯해, 이기봉의
작품을 1억 원대, 함경아의 자수 작품을 5천만 원대, 김윤신의 회화를 3천만
원 전후에 판매하며 다양한 가격대에서 성과를 기록했다.

프리즈서울 2025에 참가한 국제갤러리 부스 모습

프리즈서울 2025에 참가한 르롱 갤러리 부스에 전시된 전현선의 작품 모습
티나 킴 갤러리는 하종현의 회화를 3억 원대 후반에, 강석호의 회화를
6천만 원대에 판매하며 안정적인 실적을 이어갔다. 이러한 거래 사례는 해외 메가갤러리에만
의존하지 않고도, 국내 중견 갤러리들이 독자적인 브랜드와 작가군을 통해 국제 컬렉터를 끌어낼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향후 한국 미술 시장의 자생적 성장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다.

국내 주요 중견작가들을 중심으로 전시하는 피비갤러리 부스 모습
반복되는 블루칩 중심 전략,
한계와 과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많은 갤러리들이 수년째 동일한 블루칩 작가군을 반복적으로 전시하며 안정적인 판매에만 집중해 왔다. 이러한 전략은 단기적인 매출에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새로운 컬렉터층
유입과 시장의 확장을 막는 요인이 된다.
신생 갤러리들이 최근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동시대적 감각을 반영한 작업을 시장에 선보였기
때문이다. 프리즈 서울에서 신생 갤러리들의 부스가 활발한 거래로 이어진 것은,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시도가 시장을 성장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임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시장 전문화와 체계화를 위한 구조적 변화
한국 미술 시장이 앞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외연 확대를
넘어 전문화와 체계화가 필요하다.
첫째, 아트페어
갤러리 선별 기준 강화가 요구된다. 단순한 판매 실적이 아니라,
젊은 작가 발굴 능력과 동시대성을 보여주는 기획력이 참가 조건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반은 안정, 반은 도전”이라는 포트폴리오가 가능해져야 한다.
둘째, 거래 데이터의
투명화가 필수적이다. 이번에도 키아프와 프리즈는 판매성과를 알려주지 않고 대표적인 세일즈 결과만
프레스를 통하여 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앞으로는 프리즈 서울과 같은 국제 아트페어에서 발생한 거래
데이터를 표준화해 아카이브화하고, 이를 시장 분석과 정책 수립에 활용해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거래 구조는 시장 신뢰를 떨어뜨리고, 국제
컬렉터와 기관의 참여를 저해하기 때문이다.
셋째, 신규 컬렉터
기반 확대가 필요하다. 2천만~5천만 원대 작품을
중심으로 첫 구매 경험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장치—예컨대 입문자 대상 미술 교욕 및 투어 프로그램, 작품 보관 및 보험 가이드, 세제 혜택 안내—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단순 구매자가 아닌 지속적인 컬렉터
커뮤니티를 육성할 수 있다.
넷째, 정책과
제도의 정비가 뒤따라야 한다. 미술품 기부에 대한 세제 혜택,
상속세 완화, 공공 미술품 리스 제도 도입 등은 고가 작품의 유통을 촉진하는 중요한 장치다. 또한 해외 반출·반입 절차의 간소화, 국제 운송 지원 같은 실질적인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2차
시장의 연계 강화가 중요하다. 경매 시장과 1차 시장(갤러리, 아트페어)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작품 가격 형성이 안정화되고, 작가 경력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적 과제
한국 미술 시장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단순히 작품을
“수출”하는 수준을 넘어,
국제 담론 생산지로 기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해외 기관과의 공동 전시, 공동 제작 프로젝트가 활성화되어야 하며, 갤러리와 기관은 해외 네트워크와의
협업을 통해 작가를 세계 담론에 편입시켜야 한다.
또한 글로벌 기업과의 파트너십,
국제 재단과의 협업을 통해 한국 미술이 단순 소비재가 아니라 창조적 파트너임을 입증해야 한다. 프리즈 서울에 맞춰 진행된 다양한 협력 전시와 프로젝트는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앞으로는 이러한 시도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제도적으로 정착해야 한다.
결론: 새로운
시도가 한국 미술 시장의 미래를 결정한다
프리즈 서울은 한국 미술 시장의 현재와 과제를 동시에 보여준 자리였다. 젊은 작가들의 거래 성과는 시장의 활력을 확인시켰고, 중견 갤러리들의
안정적 판매는 자생적 성장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그러나 반복적인 블루칩 중심 전략은 한계를 드러냈으며, 시장 체계화와 전문화를 위한 변화가 절실하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투명한 데이터, 새로운 작가 발굴, 신규 컬렉터 기반 확장, 제도적 지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도에
보상이 따르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한국 미술 시장은 단순히 넓어진 판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동시대 미술 속에서 신뢰할 수 있는 생산과 유통의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