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은 백남준(1932–2006)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되는 해다.
 
백남준은 월드와이드웹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인 1974년, 글로벌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를 예견하며〈전자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를 구상했다. 1964년에는〈로봇 K-456〉을 선보이며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예술적 실험의 장으로 끌어들였다.


백남준,〈로봇 K-456〉, 1965 / 사진: Hanns Sohm | © Nam June Paik



백남준의〈로봇 K-456〉(1964) / 사진: Peter Moore



뉴욕 휘트니미술관 앞에서〈로봇 K-456〉의 교통사고 퍼포먼스, 1982 / 사진 제공: Nam June Paik Estate

〈로봇 K-456〉은 1982년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 회고전에서 “교통사고”를 당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 장면은 삶과 소멸을 경험하는 존재로서의 기계를 제시하며, 기술 문명 속 인간의 조건을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 타계 20주년을 기념하여〈로봇 K-456〉을 중심으로 권병준 등 작가들과 함께 “AI 로봇 오페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경주 우양미술관은 지난해 개막한 백남준 전시를 오는 5월까지 이어간다.


백남준 1991년작〈고대기마인물〉/ 사진제공 : 우양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오는 4월 백남준의 대형 작품〈거북선〉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미국 게티연구소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와 협력해 백남준 연구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브라질 상파울루 피나코테카미술관은 오는 11월 백남준아트센터와 공동 전시를 개최할 계획이다.

1993년 대전엑스포 당시 전시된〈프랙탈 거북선〉. 뒤편에는 백남준의 다른 TV 작품인 〈퀴리부인〉이 보인다. / 사진 : 대전시립미술관



백남준이 참가한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 / 사진 : 갤러리현대 홈페이지

휘트니 비엔날레 뉴욕 1993
 
1993년 뉴욕에서 열린 “휘트니 비엔날레 1993” 은 단일 전시 이상의 의미를 지닌 사건이었다. 이 비엔날레는 회화와 조각 중심의 전통적 미학에서 벗어나 영상, 설치, 퍼포먼스, 텍스트, 리서치 기반 작업을 전면에 배치하며, 미술이 사회적 갈등과 제도적 구조를 어떻게 드러낼 수 있는지를 전시의 핵심으로 삼았다.


”휘트니 비엔날레 1993” 뉴욕 전시장면 / 사진 : 휘트니 미술관




”휘트니 비엔날레 1993” 뉴욕 전시장면 / 사진 : 휘트니 미술관

당시 전시는 “지나치게 정치적이며 미학적 즐거움이 결여되었다”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고, 휘트니 비엔날레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사례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 비판은 곧 이 전시의 성격을 정확히 지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전시는 동시대 미술이 더 이상 합의된 취향이나 안정된 미적 기준 위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도적으로 선언했다.






“Looking Back: 1993”,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2013년 2월 23일, 뉴욕 뉴뮤지엄

오늘날 미술관에서 보편화된 담론 중심 큐레이션, 정체성 정치, 리서치 기반 전시는 대부분 이 시기의 급진적 선택에서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Whitney Biennial 1993” 은 문제적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미술 제도가 작동하는 조건을 형성한 출발점에 가깝다.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 1993


1993년 경기도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의 포스터. / 사진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Beyond the Border Line》이라는 제목으로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전이 개최되었다. 이는 휘트니 비엔날레 역사상 최초의 해외 개최 사례였다.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 전시에 참여한 미국작가 재닌 안토닌(오른쪽 아래)이 개막식 행사로〈사람의 보살핌〉이라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 전시 오프닝 모습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이 전시는 단순한 국제 교류나 해외 대형 전시의 유치가 아니었다. 서울에 도착한 휘트니 비엔날레는 즉각적인 관심과 함께 혼란과 반발을 불러왔다. “이것이 과연 미술인가”라는 질문이 공개적으로 제기되었고, 전시는 난해하며 불친절하고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국공립 미술관에서 왜 이런 전시를 해야 하는가라는 비판 역시 뒤따랐다.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 1993” 리플렛과 행사 안내 © 국립현대미술관

그러나 이 충돌은 우연이 아니었다.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전은 감상의 쾌적함을 제공하기 위한 전시가 아니었으며, 한국 미술계가 그동안 상대적으로 회피해 왔던 동시대 미술의 불확실성과 직접 대면하도록 설계된 사건이었다. 이 전시는 한국 미술이 세계 미술의 ‘현재형’에 동시대적 자격으로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백남준이 들여온 것은 ‘성과’가 아니라 ‘위험’이었다
 
이 전시를 적극적으로 주선하고, 자비를 들여 작품 운송까지 도운 인물이 백남준이었다. 그가 서울로 들여온 것은 미국 미술의 성취나 이미 검증된 명작이 아니었다. 그는 미국 미술이 가장 불확실하고 논쟁적인 국면에 도달해 있던 ‘동시대 그 자체’를 선택했다.
 
휘트니 비엔날레는 완성된 결과를 감상하는 전시가 아니라, 아직 성공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작가와 경향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장이다. 백남준은 한국 미술계가 세계 미술과 같은 시간대, 같은 위험 조건 속에서 사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당시 휘트니 비엔날레 전과 관련한 조선일보 기고문(1993. 08.03)을 통해 이 전시의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 이 전시는 관람의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선진 미술 정보와의 격차를 해소하고 동시대 미술의 불확실성과 직접 마주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인식이었다. 특히 그는 이 전시가 젊은 작가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음식이든 깨뜨려 먹을 수 있는 ‘강한 이빨’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보호된 환경에서의 감상이 아니라, 세계 미술의 가장 경쟁적이고 불안정한 조건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능력을 요구하는 태도였다.
 
 

1990년대 한국 문화의 분기점과 선택의 구조
 
1990년대 초 한국 사회는 문화적으로 중요한 전환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대중음악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이후 서구 음악의 모방이나 수입을 넘어, 국내 창작 생태계가 주도권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 – “난 알아요” (1992) 앨범 자켓 표지




방탄소년단과 함께 무대에 오른 서태지는 1집 “난 알아요” 부터 4집 “컴백홈” 까지 8곡에 걸친 댄스곡을 안무와 함께 소화했다. / 사진 서태지컴퍼니




1995년 “다른 하늘이 열리고” 콘서트 당시 스타일로 재현한 “교실이데아” 무대. / 사진 : 서태지컴퍼니

이 변화는 단기간의 성과가 아니었다. 불확실성과 비판을 감수한 선택이 누적된 결과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와 논쟁이 발생했지만, 그 구조적 전환은 오늘날 K-팝과 한국 영화·드라마가 세계 문화의 중심부에서 논의되는 기반이 되었다.
 
중요한 점은 이 성취가 안전한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패 가능성을 감수하지 않는 구조에서는 문화적 주도권도 형성되지 않는다.

 
 
오늘의 한국 동시대 미술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현재 한국 동시대 미술이 놓인 조건은 과거보다 훨씬 유리하다. 한국 작가들은 주요 비엔날레와 국제 미술관에서 지속적으로 초대받고 있으며, 제도적·환경적 조건 역시 크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는 영속적이지 않다. 동시대 미술은 시기를 놓치면 같은 조건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미 평가가 끝난 해외 작가와 완결된 서사를 반복적으로 호출하는 선택은 안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이 지속될수록, 지금 이 순간에도 생성 중인 한국 동시대 미술의 불확실한 가능성은 제도 안으로 들어올 기회를 잃는다. 이는 단순한 전시 구성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미술이 현재형으로 세계 미술사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소진하는 행위에 가깝다.


 
백남준이 남긴 유산


“휘트니 비엔날레 199”3 서울 오프닝 모습 우측이 백남준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1993년 백남준이 휘트니 비엔날레를 서울로 들여왔을 때, 그 전시는 이해하기 어렵고 불편했으며 수많은 논란을 낳았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동시대 미술의 가능성과 조건을 충족하고 있었다. 그는 완성된 세계를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대신 실패 가능성과 비판, 오해까지 포함한 상태 그대로의 현재를 마주하게 함으로써, 한국 미술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감각을 요구했다.


쾰른 쾰니셔 쿤스트페어라인에서 열린《Nam June Paik Werke 1946–1976: 음악—플럭서스—비디오》(1976) 전시에 설치된 〈TV 체어〉(1968/1976)에 앉아 있는 백남준. / 사진: F. 로젠스틸, 쾰른, 국제 미술상업 중앙아카이브(ZADIK), 쾰른

최근 국공립 미술관들은 해외 유명작가나 유명 전시를 수입하기에 바쁘다. 물론 일반인들의 문화향유도 중요하고 대중들의 미술관 관람도 좋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생적인 한국 미술을 지원하고 생산해서 전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미술관의 전시는 작품을 나열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어떤 질문이 동시대 미술의 중심에 놓일 수 있는지를 설정하는 해석의 장이다.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배제하는가는 곧 동시대 미술의 경계를 규정하는 일이며, 그 선택의 축적이 한 사회의 미술사를 형성한다. 이것이 동시대 미술관의 본질이다.
 
백남준 타계 20주년을 맞은 이 시점에서 그가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전을 통하여 남겼던 화두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여전히 완성된 서사 속에서 안심하려 하는가, 아니면 거대한 혼란이 도사리고 있는 당대의 이슈들과 정면 승부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창조가 없는 불확실성은 있지만, 불확실성이 없는 창조란 있을 수 없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