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jin Moon, Seeded Paper (씨앗이 심겨진 종이), 2025 ©CR Collective

씨알콜렉티브는 2025년도 CR 신진작가지원 공모 선정 작가인 문서진의 개인전 《뿌리내리며 떠돌아다니는》을 11월 15일까지 개최한다.

문서진은 텃밭을 가꾸는 노동과 몸의 경험을 통해 소멸과 재생이 교차하는 리듬을 기록하고, 삶을 살아내는 생명 순환의 언어를 발화해왔다. 밭을 갈고 씨앗을 심고 열매를 거두는 반복의 경험은 개인적 서사를 넘어, 생태계의 순환과 그 속에서 인간이 위치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토대가 된다.

이번 전시 《뿌리내리며 떠돌아다니는》은 종이와 씨앗, 식물의 생애가 얽힌 물질적 구조 속에서, 인간과 자연, 죽음과 삶이 서로 매개하는 생태적 장면을 펼쳐낸다.

Sujin Moon, The Cast, 2025, Seeded paper, Dimensions variable ©CR Collective

문서진의 작업에서 종이는 단순한 기록 매체가 아니라, 죽음과 재생, 정착과 이동이 교차하는 생명 순환의 한 국면이자 관계적 차이를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한 장들 (Single Sheets)〉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작가가 머문 장소에서 얻은 건초로 만든 종이들로,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품은 채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리는 여백으로 제시된다.

〈던져진 것들 (The Cast)〉은 씨앗이 심어진 종이를 전시장 벽에 던져 붙이는 행위에서 시작하며, 시간이 흐르며 종이 위의 씨앗은 싹을 틔운다. 이 작업은 생명이 개별적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과 빛, 표면, 환경과 얽히며 형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서 있는 것들 (The Standing)〉은 직립한 종이가 비와 이슬을 맞으며 무너지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식물이 돋아나는 과정을 담는다. 종이는 죽음과 생명의 경계에 서서 수직과 수평, 상승과 하강의 긴장을 동시에 드러낸다. 문서진의 작업은 이처럼 죽음과 삶이 단순히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관계적 장 안에서 서로를 전환하며 나타남을 보여준다.

Sujin Moon, The Standing, 2025, Handmade paper, Dimensions variable (200x100x90cm) ©CR Collective

〈텃밭에서 (In the Garden)〉는 이러한 생태적 사유를 디지털 공간 속으로 확장한다. 이 작업은 마스트리히트 뒷마당 텃밭을 3D 스캐닝하여 구현한 인터랙티브 터치스크린 신작으로, 관객은 가상의 텃밭에 초대되어, 화면을 더듬으며 촉각적 사운드와 시 낭송의 목소리를 듣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들이 수군거리듯 들려오고, 특정 지점에 다가가면 목소리가 더 선명하게 울리면서, 텃밭을 가꾸는 일이 몸의 감각을 통해 터득되는 촉각적 이해의 과정으로 전환된다.

마지막으로, 신작〈뿌리내리며 떠돌아다니는 것들 (Driftroot)〉은 패러글라이딩 퍼포머(실제 쌍둥이 자매)가 하늘에서 수제 종이를 흩뿌리는 장면을 기록한 퍼포먼스 영상이다. 종이는 하늘에서 흩날리다 땅에 닿아 사라지고, 며칠 뒤 그 자리에서 씨앗이 움튼다. 

Sujin Moon, In the Garden, 2025, Interactive touch screen ©CR Collective

여기서 뿌려진 종이의 흩날림과 씨앗의 발아는 자연 속으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의 리듬 속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일이 된다. 패러글라이딩의 비상은 그러한 관계적 생애의 장을 드러내며, 인간과 자연이 서로를 비추는 순간적 카타르시스를 불러낸다.

전시는 제목처럼, 뿌리내리며 동시에 흩날리는 존재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작가는, 우리는 어디에 뿌리내리며 떠돌고, 죽음의 자리에 솟아나는 생명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비추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이번 전시 《뿌리내리며 떠돌아다니는》은 이 물음을 시각적·물질적 풍경으로 펼쳐내며, 모두가 종이처럼 생태계의 일부로서 끊임없이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존재임을 일깨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