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이름으로 포장된 “투기”

오늘날의 미술시장은 “투자”라는 용어로 포장된 거대한 투기 구조 위에서 작동한다.

작품은 더 이상 감정과 사유의 산물이 아니라, 가격 변동을 예측하는 지표처럼 읽히며, 갤러리는 자산운용사의 논리로 움직이고, 작가는 브랜드 공급자로, 컬렉터는 시장 분석가로 기능한다. 예술작품이 ‘소유의 기쁨’보다 수익에 대한 기대치로 해석되는 순간, 예술의 고유한 내면은 점점 더 뒷전으로 밀려난다.

“예술이 시장의 언어를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 미학은 숫자의 그림자에 불과해진다.”
 


스티브 코헨 ― 금융자본의 시선이 만든 새로운 감상 방식

미국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코헨(Steve Cohen) 은 오랫동안 현대미술 컬렉터로 활동해 온 대표적 인물이다.


스티브 코헨 / 사진: 뉴욕타임즈

그의 수집 방식은 예술작품을 감정적·미학적 대상으로 보기보다, 리스크 관리와 자산배분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자산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작가 제프 쿤스가 2009년 9월 29일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 전시《Pop Life, Art In A Material World》프레스 뷰에서 자신의 작품 〈Rabbit〉(1986) 앞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 BEN STANSALL/AFP/Getty Images.

2019년, 제프 쿤스(Jeff Koons)의〈Rabbit〉(1986)이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9,108만 달러에 낙찰되었을 때, 일부 언론에서는 해당 작품이 코헨의 컬렉션으로 이동했다는 보도를 내놓았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이 사건은 예술작품이 ‘고가 자산’으로 다뤄지는 방식과 금융적 시선이 예술 시장을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코헨의 시선은 예술을 감정의 문제에서 리스크의 문제로 이동시키는 금융 언어의 확장이며, 이 관점은 오늘날 미술시장을 이해하는 하나의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찰스 사치 ― 예술을 ‘현상’으로 구축한 기획의 힘

광고계 출신의 컬렉터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는 1990년대 영국에서 “YBAs(Young British Artists)” 운동이 부상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챨스 사치 / 사진: 구글

그는 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사라 루카스 등 신진 작가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며 이들의 작업이 대중적·문화적 현상으로 확장되는 데 기여했다.

사치의 전략적 큐레이션과 미디어 활용은 예술이 단순한 창작물이 아니라 문화적 브랜드이자 시장의 현상으로 소비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예술의 후원자이면서 동시에 예술 생태계의 시장적 구조를 설계한 연출자였으며, 이 과정은 예술이 어떻게 ‘기획 가능한 상품’으로 변모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다.
 


데미안 허스트 ― 창작과 시장 사이의 전략적 균형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는 1990년대 이후 현대 미술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가진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데미안 허스트 / 사진: 더 타임즈

그의〈상어〉작품 (1991) 과 ‘약통’ 시리즈는 죽음·신체·기억의 문제를 다루는 급진적 실험으로 평가받는 동시에, 시장에서도 지속적인 수요를 구축했다.
 
2008년, 허스트는 갤러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소더비 경매에서 신작을 판매하는 실험을 감행했다.


데미안 허스트가 자신의 작품〈The Incredible Journey〉와 함께 2008년 런던 소더비 미술관 겸 경매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 Shuan Curry/AFP/Getty Images.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경매에 출품된 2008년 소더비 경매 “Beautiful Inside My Head Forever” 현장 / 소더비 제공.

이는 예술가가 전통적인 유통 구조를 넘어 스스로 시장을 구성한 사례로 기록되며, 미술계와 금융적 구조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허스트의 행보는 예술성과 시장성이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그는 예술가이자 브랜드 운영자로서 동시대 미술시장의 이중 구조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미술품 투자 ― ‘예술의 시장화’가 드러내는 제로섬의 구조

미술시장은 종종 “모두가 성공하는 시장”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희소성과 경쟁에 기반한 구조 속에서 움직인다. 소수의 작가와 작품이 가격 상승을 경험하는 동안 그 이면에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못한 수많은 작가가 존재한다.

가격이 상승할수록 담론은 축소되고, 미학적 가치보다 시장의 관심이 앞서는 경향이 강화된다.
 
“예술은 더 이상 세계를 해석하지 않는다. 이제 세계의 가격표를 반사할 뿐이다.”
 
이 현상은 예술이 감정과 사유의 언어에서 투자 심리와 시장 기대치의 언어로 이동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예술과 자본 ― 공생과 기생의 양면성

자본은 미술을 확장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예술의 언어를 변형시키는 힘이기도 하다. 수요가 증가할수록 작품의 표현은 단순해지고, 희소성은 수익률로 환산되며, 예술의 진정성은 시장 신뢰라는 또 다른 가치로 재해석된다.

예술과 자본의 관계는 공생적이지만, 그 공생은 언제든 기생적 구조로 전환될 위험을 안고 있다. 예술이 자본의 기준에 따라 변형될 때, 예술의 내면적 언어는 점차 소멸한다.
 


‘얼마’가 아닌 ‘왜’로 돌아가기

‘미술품 투자’라는 언어는 자본이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프레임일 수 있다. 

예술이 본래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얼마짜리 예술’이 아니라 ‘왜 존재하는 예술’이라는 질문이 회복되어야 한다. 이 질문이 복원되는 순간, 예술은 시장의 게임판을 벗어나 다시 인간의 감각과 사유의 언어를 말할 수 있게 된다.

진정한 예술의 가치는 가격이 아니라 사유의 깊이, 시장성이 아니라 표현의 필연성 속에서 완성된다. 그리고 이 깊이는 자본이 소유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