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컨템퍼러리 미술을 둘러싼 위기 담론은 대체로 의미의 상실이라는
진단에서 출발한다. 동시대 미술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고, 비판은
반복되며 형식은 진부해졌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단은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지 못한다. 지금 동시대 미술이 직면한 위기는 의미가 고갈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생산된 의미를 판단하고 축적해 온 내부의 기준과 역량, 그리고 새로움을 판별하려는 의지 자체가 구조적으로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컨템퍼러리 미술은 여전히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사회적 불평등, 정치적 갈등, 기술
환경의 변화, 정체성과 제도의 문제는 전시와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호출된다. 담론은 사라지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담론과 의미들이 어떤 기준에
의해 중요하다고 판단되었는지, 무엇이 성취로 남았고 무엇이 실패로 기록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거의
남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글이 출발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지금의 위기는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문제이며, 그 판단의
문제가 하나의 개인적 태도가 아니라 구조적 상태로 굳어졌다는 인식이다.
판단 구조의 약화와 그 결과
컨템퍼러리 미술은 오랫동안 가치의 우열을 가르는 판단 자체를 경계해
왔다. 단일한 미학 기준, 위계적 서열화, 형식 중심의 배제 논리는 모던 미술의 권력 구조로 비판되었고, 그
대안으로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가 하나의 미학적 윤리처럼 자리 잡았다.
이 판단의 유예는 복합적인 현실을 다루기 위한 전략으로서 일정
부분 유효했다.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열어두고, 하나의 기준이
다른 가능성을 억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유예가 전시와 제도 안에서 반복적으로
작동하면서, 점차 가치 판단 자체를 미루는 상태로 고착되었다.
작품이 무엇을 성취했는지, 그
성취가 왜 설득력을 가지는지, 어디에서 한계가 드러났는지를 명시적으로 말하는 행위는 점점 부담스럽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사실은, 판단을
하지 않는 상태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판단이 내부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때, 판단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방식은 대체로 미술 내부의 본질적 기준이 아니라, 외부의 비본질적 작동 논리에 의해 결정된다.
판단의 공백을 채운 선택의 논리
내부의 판단 구조가 약화되자, 작품과
전시의 선택은 점차 다른 논리에 의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 논리는 새로운 미학이나 이론이라기보다, 얼마나 빠르게 이해될 수 있는가, 얼마나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 얼마나 원활하게 유통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가깝다.
이러한 선택 논리는 작품의 깊이나 완성도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즉각적인 인지 가능성, 명확한 메시지, 설명하기 쉬운 형식, 전시 환경과 유통 구조에 대한 높은 적합성이
우선시된다. 복잡한 판단을 거치지 않아도 선택할 수 있는 작업, 설명
없이도 소비 가능한 작업이 반복적으로 호출된다.
이 과정에서 작품은 점점 시장의 작동 방식에 잘 맞는 형태로 조정된다. 여기서 말하는 시장은 단순한 판매의 공간이 아니라, 전시, 유통, 홍보, 담론이
결합된 선택의 시스템 전체를 의미한다. 이 시스템에 잘 부합하는 작업들은 지속적으로 선택되고, 그 선택의 반복이 곧 가치 판단처럼 작동하게 된다.
시장 친화적 작품과 본질의 왜곡
시장 친화적 작품이 반드시 상업적인 외형을 띠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급진적인 이미지나 비판적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 급진성과 비판성 또한 자본과 제도의 논리 안에서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작동한다.
작품은 문제를 제기하지만, 그
문제는 작품의 형식과 구조 안에서 충분히 검증되기보다는 전시와 담론, 유통 구조 속에서 마찰 없이 소비된다. 이때 작품의 선택 기준은 본질적 성취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선택
가능성에 대한 판단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비본질적인 요소들이 본질을 대신 말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작품의 완성도, 설계의 밀도, 사유의
깊이는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채, 노출의 빈도와 선택의 결과가 가치를 대체한다. 본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판단되지 않은 채 가려진다. 결과가 과정을 평가하고, 외형이 내면을 대신 판단하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실패가 기록되지 않는 구조
이 구조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실패가 기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패가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은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며,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축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전시는 끊임없이 열리고 새로운 작품은 계속 등장하지만, 무엇이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거의 남지 않는다. 그 결과
다음 선택은 이전 선택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형식은 바뀌는 것처럼 보이지만, 선택의 논리는 반복된다. 이 상태에서는 변화는 발생하지만 발전은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 동시대 미술이 놓인 특수한 위치
한국 동시대 미술은 이 구조를 특히 빠른 속도로 경험해 왔다. 국제적 전시 형식과 담론을 신속하게 수용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가치는
내부 판단에 의해 형성되기보다 외부의 반응과 선택의 결과에 의해 규정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어떤 작업이 국제 전시에 포함되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었는지가 곧 가치의 근거로 작동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를 내부에서 분석하고 재판단할 구조는 충분히 마련되지 못했다. 그 결과 한국 동시대 미술은
이중의 상태에 놓인다. 내부에서는 판단을 유예하며 명시적인 평가를 회피하고, 외부에서는 이미 내려진 판단을 사실처럼 받아들인다. 이 간극이 커질수록
작품의 고유한 성취는 내부에서 설명되지 못한 채, 선택의 결과만이 의미를 대신하게 된다.
한국 동시대 미술계가 놓치고 있는 것
현재 한국 동시대 미술계가 가장 크게 놓치고 있는 것은 가치 판단과
그에 대한 책임의 문제다. 판단이 곧 배제나 폭력으로 오해되면서, 판단을
말하지 않는 태도가 윤리적인 선택처럼 자리 잡았다. 그러나 판단을 회피하는 태도는 결과적으로 선택의
책임을 시장과 제도, 외부 반응에 넘기는 결과를 낳았다.
또 하나 간과되고 있는 것은 축적과 기록의 관점이다. 개별 전시와 작품이 무엇을 남겼는지, 이전의 시도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결과 동시대 미술은 항상 현재에 머물며, 스스로를 점검할 기준을 갖지 못한다.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유행이나 더 급진적인
형식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판단의 회복이다. 여기서 말하는
판단은 과거와 같은 위계적 서열화가 아니라, 작품이 무엇을 성취했는지,
어디에서 설득력을 얻었고 어디에서 밀도가 부족했는지를 언어로 남기는 행위다.
전시는 문제 제기로 끝나서는 안 된다. 무엇을 제기했고, 그것이 작품의 형식과 구성, 관람 경험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었으며, 어디에서 설득력을 얻었고
어디에서 실패했는지를 말해야 한다. 비평은 설명에 머물지 않고, 분석과
판정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기록하는 용기다. 실패를 말할 수 있을 때에만 수정이 가능하고, 수정이 가능할 때에만
축적이 이루어진다.
한국 동시대 미술은 왜 아직 중심이 되지 못했는가
지금까지 살펴본 구조는 한국 동시대 미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판단의 유예, 시장 친화적 선택,
비본질이 본질을 대체하는 현상은 이미 글로벌 미술계 전반에서 공유되고 있는 조건이다. 한국
동시대 미술은 이 구조의 예외가 아니라, 오히려 이를 가장 압축적으로 경험한 장에 가깝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여기에 있다. 세계 미술계의 중심부에 위치한 미술 생산 주체들은, 동일한 조건
속에서도 판단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다. 무엇이 성취였는지, 무엇이
실패였는지, 어떤 형식과 문제 설정이 다음 단계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내부적으로 기록하고 논쟁한다. 판단은 충돌하고, 실패는 비판의 언어로 남는다. 이 축적된 판단의 기록이 곧 미술사의 일부가 된다.
반면 한국 동시대 미술은 오랫동안 어디까지 도달했는가에 집중해
왔다. 국제 비엔날레 참여, 글로벌 갤러리 진입, 해외 기관 전시는 성취의 지표로 기능했지만, 무엇을 남겼는지, 어떤 판단을 생산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왔다. 그
결과 한국 동시대 미술은 세계 미술계에서 사례로는 자주 호출되지만, 기준을 제시하는 주체로 인식되지는
못한다.
세계 미술계의 중심이란 더 많이 전시되는 위치가 아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지를 말할 수 있는 위치다. 중심은
노출이나 생산량이 아니라, 판단을 축적하는 능력에서 형성된다.
포스트 컨템퍼러리의 조건을 사유한다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선언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작동하고 있는 조건을 직시하고, 그
조건 속에서 판단을 다시 생산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일이다.
한국 동시대 미술이 세계 미술계의 중심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 빠르게 반응하는 데 있지 않다. 더 정확하게 판단하고, 그 판단을 축적하는 데 있다. 이 조건이 마련될 때, 한국 동시대 미술은 더 이상 세계 미술계의 하나의 사례가 아니라, 세계
미술계가 참조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