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라리오뮤지엄은 안경수 작가의 개인전 《겹겹》을 2026년 1월 18일까지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개최한다.
안경수는 폐허에 맞닿은 장면을 그린다. 여기서 폐허는 버려진 장소뿐
아니라, 아직 이름 붙여지지 못한 익명의 시간을 떠도는 징후적인 풍경 일반이다. 작가는 어떠한 사건도 되지 못하고, 평범한 일상도 아닌, 그 바깥에 잔존하는 감각을 모아 풍경 이미지로 재생한다.

이번 전시 《겹겹》은 폐허 풍경에 조금 더 밀착한 장면을 제시한다. 제주
함덕에 오랫동안 남아있던 파산한 공사 현장 속 검은 구덩이,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 당시 해일이
지나간 말레이시아 해변, 홀로코스트가 한창 이뤄지고 있을 시기
1944년 독일 다하우의 평범한 수영장, 언제부터 쌓였는지 알 수 없는 작업실 인근의 건설폐기물
더미들.
직접 목격했거나, 지나간 사진, 영상
자료로 확인할 수 있는 이미지들에서 안경수는 폐허 풍경을 길어 올려 캔버스 위에 정성스레 포개어둔다. 하나의
장면마다 여러 겹의 풍경을 발견하고 그를 불러 모아 매끈한 평면 위로 겹쳐두는 것이다.

그러나 안경수의 장면은 언제나 그림 바깥으로 기울어져 있다. 바깥은
그림 프레임의 물리적인 외부일 수도, 화면 너머 이어진 다른 풍경일 수도 있다. 그곳에 서서 작가는 겹겹이 쌓아둔 장면 사이에 발생하는 시차 속으로 끊임없이 관객을 밀어 넣고 유보를 제안한다.
관객은 마치 산수화를 감상하듯, 겹겹의 이미지 풍경 속을 거닐며, 그곳에서 폐허에 맞닿은 다른 시간대의 장면 사이를 떠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