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산수화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지금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의 전시 공간에는 산수화가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통 산수화와는 사뭇 다르다.
이정배(b. 1974)는 산수화의 동시대성에 대해서 고민하며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현대사회의 풍경을 그려온 작가이다. 작가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표현하면서도 필요와 욕망을 위해 무분별하게 자연을 착취하는 우리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최근에 그는 도시에서 발견한 자연의 파편들을 날카로운 시선이 아닌 고요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번 개인전 “문지르고 끼이고 빛이 나게”는 작가의 내적 변화와 새로운 영역으로의 예술적 도전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자연을 기하학적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 주목하고, 색을 바르고 사포로 갈아내는 작업을 반복함으로써 작품 표면에 드러나는 미묘한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같은 색을 반복적으로 발라 작품을 완성하는 동양화처럼 작가는 전통 회화 기법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한다. 전시에는 태양, 산, 달빛 등 자연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표현한 작품부터 순금과 은으로 만든 ‘인왕산’, 신작 ‘돌과 나무 드로잉’ 시리즈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