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ng Chang Sup, Meditation No.991107, 1999, Tak fiber on canvas, 91x117cm ©Johyun Gallery

조현화랑 서울은 3월 6일부터 4월 20일까지 故 정창섭과 권대섭의 2인전을 개최한다.

닥나무로 만든 한지를 회화에 접목한 단색화 1세대 故 정창섭, 그리고 조선 백자의 전통을 계승하며 현대적 조형성을 탐구하는 권대섭은 각기 다른 시대와 전통 속에서 물성과 정신이 교차하는 한국적 미의 본질을 탐색해왔다.

이번 전시는 故 정창섭이 1980년부터 시작한 ‘묵고’ 시리즈 중 1999년에서 2003년까지의 작품 8점 및 2024년 제작된 달항아리 작품 4점을 통해 재료의 고유한 성질에 천착한 두 작가가 구축해온 조형 세계를 선보일 예정이다.

Chung Chang Sup, Meditation No.23702, 2003, Tak fiber on canvas, 130.3x162cm ©Johyun Gallery

정창섭은 서구의 앵포르멜 미학을 수용하면서도, 자연주의적 사상을 기반으로 한국적 추상미술의 가능성을 실험했던 작가다. 1970년대부터 닥나무로 만든 한지를 주요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 이후, ‘묵고’ 시리즈를 통해 ‘그리지 않지만 그려지는, 의도하지 않지만 이루어지는’ 형상을 탐구했다.

닥종이를 손으로 빚어 캔버스 위에 펼쳐 놓는 과정은 시각적 조형을 넘어 본연의 물성을 강조한다. 닥을 주무르고 반죽하며 손으로 두드리는 반복적인 과정은 한지의 물성 속에 우연적 형상과 내밀한 문양을 드러나게 하는 동시에, 자아를 비우고 몰입의 경지를 경험하게 한다.

Kwon Dae Sup, Moon Jar 대항아리, 2024, White Porcelain, 52x52x53(H)cm ©Johyun Gallery

권대섭은 50여년 가까이 조선 왕조 17~18세기 백자를 연구하며, 그 전통을 현대적 언어로 재구성해왔다. 그중에서도 높이 45cm의 묵직한 달항아리는 한국 고유의 도자 형태이다. 그는 전통과 실험 사이에서, 그는 정형화된 규칙이 아닌 감각과 본능에 따라 작업한다. 가식 없이,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든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한국 장인의 미학이 깃들어 있다.

정창섭의 묵고 시리즈와 권대섭의 달항아리는 단순한 형식을 넘어, 서로 다른 시대와 전통 속에서 한국적 정서를 현대적 언어로 풀어낸다. 두 작가의 작품을 통해 한국 미술의 독창성과 지속성을 조명하는 이번 전시는, 포스트-포스트모던 시대의 흐름 속에서 서구 미니멀리즘이 1970년대에 종언을 고한 이후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점점 더 주목받고 있는 한국적 미감의 과거와 미래를 조명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지연은 2021년부터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 에디터로 활동하였으며 2021년부터 2023년까지 samuso(현 Space for Contemporary Art)에서 전시 코디네이터로 근무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