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주영한국문화원이 2026년 9월 25일부터 12월 31일까지 기획전 《The Unclassified》를 개최한다. 신미경, 김아영, 정은영, 갈라 포라스-김 등 한국 및 한국계 작가 네 명이 참여하는 이번 전시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문화를 보존하고 기록하며 분류하는 방식을 살펴본다. 작품과 유물을 통해 문화적 지식이 형성되는 과정, 그리고 그 체계 안에서 충분히 포착되지 않는 경험과 기억이 전시의 중심에 놓인다.
 
미술관에 들어온 사물에는 제작 시기와 지역, 재료와 용도에 따른 이름이 부여된다. 이러한 정보는 사물을 이해하는 기초가 되지만, 그것이 사용되던 환경과 사람들의 관계까지 모두 담아내기는 어렵다. 이번 전시의 기획은 이 간극에서 출발한다. 보존과 변화, 공식 기록과 다른 서사, 물질적 자료와 신체적 기억 사이의 관계를 네 작가의 작업으로 검토한다.


〈Korean Classic: In Use〉 (2026) 전시장면 / 사진: 주한영국문화원

신미경 — 사용과 접촉으로 변화하는 조각
 
신미경의 신작 프로젝트 〈Korean Classic: In Use〉(2026)는 비누 조각을 영국의 일상 공간으로 보낸 뒤, 사용의 흔적이 쌓인 상태로 전시장에 돌아오게 한다. 러쉬와 협업한 이 프로젝트에서 조각은 카페와 대학, 문화기관, 매장 등에서 사람들의 손에 닿고 물에 씻기며 형태를 바꾼다. 작가가 지속해 온 〈Toilet Project〉를 확장한 작업이다.
 
조각의 형태는 한국의 미술교육에서 익숙한 그리스·로마 고전 두상의 석고상을 참조한다. 견고한 규범으로 학습되어 온 고전의 형상이 마모되는 비누로 옮겨지면서, 작품에는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의 접촉이 새겨진다.
 
이 과정은 보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원형의 유지라는 기준에서 보면 마모는 손상이지만, 신미경의 작업에서는 사람들과 만난 경험을 드러내는 기록으로 읽을 수 있다. 전시장으로 돌아오는 조각은 최초의 형상과 그 형상을 변화시킨 생활의 시간을 함께 지닌다.


(참고이미지) 정은영, 〈분장의 시간 (The Masquerading Moment)〉의 한 장면, 2009 / 사진: 정은영

정은영 — 몸과 목소리로 이어지는 아카이브
 
정은영은 2008년부터 이어 온 《여성국극 프로젝트》를 통해 여성국극의 역사와 전승을 탐구한다. 여성 배우들이 남성 배역까지 맡는 여성국극은 1950년대 한국에서 활발하게 공연되었다. 작가는 영상과 퍼포먼스, 인터뷰,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배우들의 기억과 신체에 남은 지식을 추적한다.
 
공연의 역사는 사진과 대본만으로 충분히 설명되기 어렵다. 목소리를 내는 방식, 움직임의 습관, 배역을 익히고 전달하는 과정에는 문서로 환원하기 어려운 경험이 존재한다. 정은영의 작업은 이러한 경험을 문화적 지식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 관점에서 아카이브는 과거의 자료를 모아두는 장소와 함께, 기억이 다른 몸과 세대로 전달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여성국극이 만들어 온 성별 표현과 관계의 역사 역시 그러한 전승 속에서 새롭게 읽힌다.


(참고이미지) 김아영, 〈PH 익스프레스〉, 2011, 2채널 영상, 영상 스틸. / 사진: 작가 홈페이지.

김아영 — 역사적 기록과 허구의 교차
 
김아영은 2채널 영상 〈PH Express〉를 선보인다. 작품은 19세기 말 영국의 거문도 점령 사건을 소재로, 포트 해밀턴으로 불렸던 거문도를 둘러싼 제국주의 역사의 장면들을 다룬다. 역사적 조사에 기반한 자료와 허구적 서사를 교차시키는 작업이다.
 
이번 전시는 이 작품을 역사가 기록되는 방식과 그 권한을 질문하는 맥락에 배치한다. 여기서 살펴볼 것은 기록의 내용과 함께 기록이 만들어진 위치다. 같은 사건도 누가 서술하는가에 따라 중심인물과 주변부, 사건의 원인과 의미가 달라진다.
 
김아영의 작업에서 허구는 역사적 사실을 다시 살펴보게 하는 장치로 읽힌다. 자료 사이를 연결하는 서사의 방식을 드러냄으로써, 관객은 이미 정리된 역사와 그것을 정리한 시선 사이의 거리를 생각하게 된다.


갈라 포라스-김, 〈All Earth energy sources are known to come from the Sun〉, 2025, 황동·햇빛, 가변 크기. 이미지 출처: Sprüth Magers.

갈라 포라스-김 — 보존과 해석의 범위
 
갈라 포라스-김은 〈Burial chamber scene〉(2025)과 〈All Earth energy sources are known to come from the Sun〉(2025)을 선보인다. 전자는 무덤 내부에서 바라보는 시점을 상상하며, 후자는 황동판으로 자연광을 전시장 벽에 반사해 환경의 변화에 따라 흔적이 남도록 하는 작업이다.
 
두 작품을 함께 읽으면, 사물을 보이게 만드는 일과 그 의미를 이해하는 일 사이의 간극이 드러난다. 유물의 형태와 재료를 분석하더라도 그것이 속했던 믿음과 경험을 완전히 복원하기는 어렵다. 빛과 시간에 따라 생기는 흔적 또한 전시장 안에서 계속 작동하는 환경의 존재를 환기한다.
 
이러한 작업은 보존과 해석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묻는다. 사물을 관리하고 설명하는 제도의 능력과 함께, 그 사물이 여전히 품고 있는 불확실성도 작품을 이해하는 조건이 된다.
 
 
 
문화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지점은 한국과 한국계 작가들의 구체적인 경험이 문화의 보존과 해석이라는 문제에 연결된다는 데 있다. 미술교육 속 고전의 형상, 여성국극의 전승, 거문도를 둘러싼 역사, 유물과 자연환경의 관계는 각각 다른 출발점을 지니면서도 문화적 지식이 만들어지는 조건을 질문한다.
 
이 관점에서 《The Unclassified》는 한국 동시대미술의 국제적 역할을 생각하게 한다. 작가들은 자신의 역사와 경험을 바탕으로 무엇을 문화로 인식하고 어떤 방식으로 다음 세대에 전달할 것인지에 관여한다. 전시가 제안하는 논의의 깊이도 여기에 있다. 사물을 보존하는 기술과 더불어, 그 사물에 얽힌 삶과 기억을 이해하는 방식까지 함께 검토하는 것이다.


주영한국문화원(Korean Cultural Centre UK, KCCUK) /사진: 주영한국문화원

주영한국문화원(Korean Cultural Centre UK, KCCUK)은 2008년 런던에 개원한 주영국 대한민국대사관 산하 문화기관이다. 트래펄가 광장 인근에 위치하며, 전시·공연·영화·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의 문화예술을 소개하고 한영 문화교류를 촉진한다.
 
 
 
전시 정보
 
전시: 《The Unclassified》
기간: 2026년 9월 25일–12월 31일
장소: 주영한국문화원, 런던
참여 작가: 신미경, 김아영, 정은영, 갈라 포라스-김
관람료: 무료
웹사이트: 주영한국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