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바톤에서는 정희승(b. 1974)의 개인전 《윌더(Wilder)》를 9월 30일부터 11월 7일까지 한남동 전시 공간에서 개최한다.
 
새로운 연작 ‘윌더(Wilder)’, ‘멀리서 너무 가까이(Faraway, so close)’, 영상〈Landless〉로 구성된 이 전시는 생동하는 작가의 감각 속에서 사진을 향한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정희승은 지난 17년간 사진의 본질과 매체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접근법을 모색하며, 관념에 묶여 있지 않은 이미지의 표면을 만드는 일에 집중해왔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가 수시로 떠 올렸다고 하는 롤랑바르트의 문장 “궁극적으로 사진은 겁을 주거나 반발하거나 심지어 낙인을 찍을 때 전복적인 것이 아니라 사색하고 생각할 때 전복적인 것 입니다.”(『카메라 루시다』)는 풍경과 거기에 깃든 생명들을 향한 작가의 시선을 잘 대변한다.
 
전시는 우연적인 존재들과의 조우 가운데 관람객이 스스로 길을 잃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도록 구성되었으며, 작가는 이를 통해 “과연 사진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시금 던진다.  

매 전시마다 하나의 명확한 주제를 정하고, 이를 일관되면서도 예리하게 파고드는 정희승은, 단지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을 넘어 ‘사진을 통한 사유’라는 동시대적 실천을 제안해 왔다.


제12회 광주비엔날레에 소개한 <기억은 뒷면과 앞면을 가지고 있다(Remembrance has a rear and front, 2018)> 전시장면 / 사진:광주비엔날레

제12회 광주비엔날레에 소개한  <기억은 뒷면과 앞면을 가지고 있다(Remembrance has a rear and front, 2018)> 는 역사와 현재가 교차하는 곳에서 진동하는 어떤 상태를, 대형 인화와 도드라진 질감으로 이미지화 한 실험적 시도였다.


2020년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침몰하는 배에서 함께 추는 춤(Dancing together in a sinking ship)》전시모습/ 사진: 갤러리 바톤

2020년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침몰하는 배에서 함께 추는 춤(Dancing together in a sinking ship)》에서는 현실에서 분투하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의 관계를 사진, 글, 음악이 복합된 설치로 구현했다.  


Untitled from the series Wilder / 사진: 갤러리 바톤

‘길을 잃는다’는 뜻을 지닌 고어 ‘Wilder’를 차용한 연작과 이번 전시명은 무수한 세부와 가늠할 수 없는 밀도로 얽혀 있는 숲이라는 장소를 작가가 지각하고 그 곳에서 길을 잃음으로써 착안되었다.
 
작가는 전시를 준비하며 제주도의 숲을 긴 시간 산책했고 여러 장소를 온전히 감각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과정에서 사진을 찍는 자신과 포착되는 객체인 숲 과의 위계가 모호해지며, 지리적으로 고립되었으나 심리적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열리는 모순을 경험했다.
 
2m 이상의 높이로 인화된 하나의 이미지는 두 개의 패널로 나뉘어, 전시장에서 균일한 틈을 사이에 두고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되었다. 하나의 작품 가운데 형성된 1cm의 미세한 균열은 사진이 갖는 상징성과 실제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장치이다.
 
균열 속으로 그 너머로 길을 잃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숲에 들어서게 되며 "침묵이 밀도 높게 응축된 장소"를 전유하게 된다.



멀리서 너무 가깝게 (Faraway, so close)

‘멀리서 너무 가깝게 (Faraway, so close)’ 연작은 시간, 날씨, 환경을 비롯한 자연의 완전한 우연성을 수용한다. 


Untitled from the series Faraway, so close, 2025,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28 × 96 cm / 사진: 갤러리바톤 홈페이지



<장미는 장미가 장미인 것(Rose is a rose is a rose, 2016)> / 사진:페리지갤러리

<장미는 장미가 장미인 것(Rose is a rose is a rose, 2016)>과 같은 과거 스튜디오 작업 방식에서 탈피하여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소를 한껏 끌어안음으로써, 정희승의 렌즈는 세상의 우발성과 공명한다. 고해상도로 촬영한 사진들은 피사체를 낱낱이 드러내기 보다는 우리가 ‘본다’고 믿는 것이 무엇인지 되묻는 여전히 발화하는 이미지이다.


〈Landless〉, 2025, 싱글채널 비디오, 11분 20초 / 사진:갤러리바톤

영상〈Landless〉(2025) 는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배 그리고 구름, 바다, 사람들 주변의 무수한 움직임을 고요히 응시한 작품으로 사진과 영상의 중간 지점에 놓여있다. 영상의 우연성과 음악의 즉흥성은 이질적인 평행을 이루며, 자연이라는 어원에 깃든 자유로운 세계의 한 단면을 잠시나마 경험하도록 한다. 결국, 정희승은 이미지가 지시체로서의 해석을 탈피해 끝없이 변화하는 존재들의 집합임을 인식하도록 유도한다.


정희승 작가 / 사진:갤러리 바톤

작가소개

정희승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후, 런던 컬리지 오브 커뮤니케이션 대학교(London College of Communication)에서 사진학과 학사와 석사를 전공했다.

제11회 다음작가상 수상(2012),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전시작가로 선정(2020), 제1회 랄프 깁슨 어워드(2023)를 수상하며 한국 현대사진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다양한 작업을 소개해왔고 인지도를 공고히 했다. 일민미술관(2021), 아트선재센터(2013), 리움미술관(2014), 서울시립미술관(2014), 제12회 광주비엔날레(2018), 벨파스트 포토 페스티벌(Belfast Photo Festival, 2019)등 유수 미술기관의 전시에 참여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