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새(b. 1987)는 인터넷이나 언론 매체, 일상생활에서 마주한 불안정한
변화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가령, 작가는 평범한 일상 풍경
속 미묘하게 흐르는 기류를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불만과 그것에 반응하는 반항적
상상들을 수집하고 이미지로 기록한다.

이은새는 찰나의 느낌, 즉 보이지 않고 붙잡을 수도 없는 순간의 미묘한
감각들을 그림 속에 담아낸다. 이러한 작업은 2012년부터
선보인 ‘돌 던지는 사람’ 시리즈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작가는 사람들이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지면서 수면 위아래 경계가 모호해지고 연못에 파문이 생기는 것을 그림으로
그렸다.
이때 작가는 물 위에 파장이 일듯이, 그 순간 돌을 던지는 사람과
이를 목격하는 사람의 내면에 발생하는 보이지 않는 파장 또한 그림에 담고자 했다. 이 연작을 시작으로, 이은새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변화의 순간에 발생하는 파장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은새가 탐구하는 변화의 순간과 그때 발현되는 감각들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예를
들어, 그는 작업실을 오가며 본 풍경들, 뉴스나 인터넷, 신문 기사에서 본 이미지들, 영화 속 장면들, 친구와의 대화 등에서 우연히 발견한 불안정한 파장의 순간을 기록한다.
예컨대, 〈무너지는 틈〉(2014)은
종로를 지나다가 우연히 본 공사 현장의 모습을 그림에 담은 것이다. 작가는 공사 현장에서 틈 사이를
계속해서 막아내려는 사람들의 몸짓에도 불구하고 비집고 터져 나오는 틈이 마치 당시 작가가 사회에서 느꼈던 상황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는 쏟아져 내리는 틈과 이를 목격하며 자신의 내면에 일었던 파장이 더욱 집중적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인물들의 형상은 두루뭉실한 선으로 가볍게 그렸다.

소설에서 본 장면을 회화로 표현한 〈아이스크림을 자르려는 사람들〉(2014)은
이은새가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기류 또는 파장과 같은 감각들을 단단하게 덩어리진 아이스크림으로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그림은 사람들이 테이블에 놓인 커다란 덩어리의 아이스크림을 자르려고 하지만 너무 단단해 잘리지 않고 계속 미끄러지면서
테이블 위에 녹아 내리는 상태를 담고있다.
이러한 모습은 작가가 보았던 어떤 소설에서 언어로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표현하기 전 내면의 뭉뚱그려져 있는 상태를
묘사한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자신이 회화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것 또한 저 단단한 덩어리진 아이스크림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작업으로 끌어왔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이은새는 목격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바라본 현실의 풍경과 순간들을 캔버스 위에 이미지로 옮긴다. 초반의 작업에서 작가는 맥락과 상관없이 필요한 장면들을 추출해 그리곤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태도에 스스로 불편함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목격한 것들, 즉 눈 앞의 현실을 마음대로 이미지로 소비하고, 작업으로 다뤄도
되는지 자문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질문은 자신의 작업 방식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미디어의 작동방식에 대한 고찰로 이어졌다. 이은새는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면서, 쉽게
대상화되는 다양한 인물에 관심을 두고 규정되거나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이미지의 파사체를 그려 나갔다.

예를 들어, 〈ㅗㅗ〉(2016)는
인터넷 또는 성인 잡지 등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선정적인 자세와 소녀의 이미지를 가져온 듯하지만, 이
그림 속의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 있음으로써 “순응적이고 순진한
소녀”에 대한 기대를 기꺼이 저버린다.
〈바이킹의 소녀들〉(2016)의 경우에는 카메라 앞에서 망가지지 않으려는
여성 아이돌의 모습을 담았다. 한때 바이킹을 탄 여성 아이돌 그룹의 영상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방송사는 젊고 아름다운 그녀들이 망가지기를 바랐고 (혹은 의도했고) 시청자들 또한 그러한 순간을 기대했으나, 그녀들은 시청자와 방송사의
기대에 부응하기 보다는 소위 ‘굴욕 짤’을 남기지 않기 위해
연신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굳건한 표정을 유지했다.

2018년 대안공간 루프에서의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그의 대표작 ‘밤의 괴물들’ 시리즈는 술에 취한 여성을 주제로 삼는다. 그의 작업에서 술에 취한 여성들은 피해자, 약한 존재, 범죄의 표적 등으로 타자화되고 대상화되는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 실제로
작가가 마주친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바탕으로 그려졌다.
이은새는 밤의 해변을 기분 좋게 산책하는 여성부터, 억지로 마신 술을
토하고 그 토사물을 상대방에게 권하는 사람, 지구대에 앉아있는 친구들,
산발을 한 채 거칠게 이를 드러내는 사람까지 다양한 상황 속의 술 취한 사람들을 그렸다.

이은새가 그린 이들은 모두 만취했어도 자유로운, 새벽녘 구토하고 쓰러지더라도
약자가 되어 범죄의 대상으로 존재하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인물들이다. 작가는 이 작업에 대해 “위협을 가하기 쉬운 밤이라는 시공간에서 인물들은 무방비한 상태가 아니라 공격적으로 쏘아보고 행동하는 밤의 괴물로서, 오히려 상대를 향해 끔찍한 반격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자들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은새, 〈As usual at bar〉, 2020,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90.9x72.7cm ©갤러리2
한편 2020년 갤러리2에서
열린 개인전 《As Usual: 늘 마시던 걸로》에서는 어떠한 주제나 내용보다 작가의 머릿속에서 아직
고정되지 않은 액체 상태의 이미지가 드로잉이나 회화의 형태로 그려지게 될 때의 차이를 주목하며, 두
장르 간의 간극을 좁히는 데 주력했다.
이은새는 기록된 사진이나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장면을 상상으로 나온 이미지와 더해 그림을 그린다. 이러한 이미지를 더욱 자유롭고 빠르게 고정시킬 수 있는 것은 드로잉 작업이다.
어눌해 보이고 과장되고 왜곡되고 모든 것이 복잡 미묘한 상태로 드러나는 드로잉은 미해결 상태로 남아 불완전하지만 그만큼 잠재력을 가진다. 반면, 회화는 여러 차례의 드로잉을 거쳐 확신에 찬 상태로 신중하게
그려진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이러한 이중의 리듬, 즉 드로잉의 명쾌한 단순화와
회화의 진중한 진보를 한 캔버스에 모두 담아내려 했다. 또한, 그림을
그리는 방법론뿐만 아니라 매체에 대한 새로운 탐구를 선보였다. 기존에 주로 사용하던 붓에 비해 형상을
그릴 수 있는 범위가 더 넓고 과장된 표현이 가능한 에어브러쉬를 새롭게 사용함으로써, 그의 작업 세계에
형식과 매체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나아가, 2021년 이은새는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IMA Picks 2021》에 참여해 PET 필름, 쇠 평면과 같은 이질적인 재료를 캔버스에 견주어 활용하며 기존 회화 구조로부터 탈피한 작품을 새롭게 선보였다. 이 재료들은 이미지가 대상화되고 소비되는 일방향의 회로를 교란하기 위한 회화적 장치로 작용한다.

이렇게 구성된 평면은 본 것이 그대로 옮겨지는 재현이 아니라 직접 재료를 자르고 연마하는 과정을 통해 몸을 경유하는
인식과 의식 중에 유예하는 생각이 뒤섞인 구체적인 행위로 채워진다. 그리고 거울처럼 반사되는 재료들의
특성으로 인해 관객은 작품을 보는 동시에 그에 비친 자신의 모습 또한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매끈하지 못한 표면은 관객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기 보다는 뿌옇게 번져 왜곡된 모습으로 비추며 불완전함과
동요를 내비치는 작가의 작품과 같은 프레임 안에 놓이게 한다.

한편 이은새는 그의 최근 개인전 《Mite Life》(갤러리2, 2023)에서 자신의 사사로운 일상적 경험과 한국의 설화를
겹쳐 풀어낸 회화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 작업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물을 마시러 나가기 귀찮았던
작가가 언제 따 놓은 지 모를 페트병에 든 물을 마시고 갈증은 해소되었지만 찝찝한 마음에 마치 체한 것처럼 밤을 지내다 원효대사의 해골물을 떠올리게
된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송대의 문헌 『임간록(林間錄)』에
의하면 원효는 동료인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다가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을 마시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린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러한 설화의 내용과
작가의 경험이 동일하게 겹쳐지지는 않지만, 작가는 특별할 것 없는 사사로운 사물로부터 변화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자신의 경험과 접점을 보았다.

이은새는 물을 정서적인 변화, 생각의 전환, 어떤 차원이나 사고가 겹치게 되는 포탈(portal)로 새롭게 바라보며, 정지하여 움직이지 않는 정물(靜物)
그 자체로서 그리기로 했다. 이와 함께 작가는 역사적 기록과 개인의 경험, 과거와 현재, 구상과 비구상이 뒤엉켜 낯설고 모호한 화면을 만들어
냈다.
작가는 정지된 사물이 발산하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것은 아마 익숙한 사물이 어느 순간
여러 상념과 상상 그리고 심정적 변화를 불러일으키며 편협한 사고를 전복시키는 힘을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
이처럼 이은새는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감정과 사건 속에서 감지되는 변화의 기류와 정서적 변화 등을 회화적 언어로
풀어낸다. 특히 작가는 당연하게 여겨지거나 고착화된 이미지에 균열을 내는 순간들을 포착하며 단일하게
규정할 수 없으며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모호하고 복잡하며 모순된 상태들을 회화로 담아내고
있다.
”회화는 이 세상의 모호한 상태를 전부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라고 생각해요. 쉽사리 표현되지 못하는 것, 심지어 양가적인 것을 전부 표현할 수
있는 도구죠.” (이은새, W 컨셉 인터뷰, 2020.01.10)

이은새 작가 ©삼성문화재단
이은새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술원 조형예술과 전문사를 취득했다. 이후 L21(마요르카, 스페인), PHD Group(홍콩), 대안공간 루프(서울), 갤러리2(서울), 갤러리 조선(서울)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최근 참여한 단체전으로는 《아트스펙트럼: 드림 스크린》(리움미술관, 서울, 2024), 《꿀꺽》(두산갤러리, 서울, 2024), 《헥스드, 벡스드 & 섹스드》(웨스트
덴하그, 헤이그, 네덜란드,
2023), 《미니멀리즘-맥시멀리즘-메커니즈즈즘
1,2막》(아트선재센터, 서울, 2022), 《젊은모색: 액체, 유리, 바다》(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9) 등이 있다.
이은새는 올해 파리 시테 레지던시(2025-2026) 입주작가로 선정되었으며, 네덜란드 라익스아카데미(2023-2025), 인천아트플랫폼(2021), 국립현대미술관 고양 레지던시(2020),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19)에 입주 작가로 활동한 바 있다.
References
- 이은새, Eunsae Lee (Artist Website)
- 학고재, 이은새 (Hakgojae Gallery, Eunsae Lee)
- 헬로! 아티스트, 이은새: 찰나에 퍼지는 감각의 물결
- OCI 미술관, 책의 무덤 (OC뉴시스, 이은새, 힘의 근본성 자문하다…‘길티-이미지-콜로니’, 2016.12.28
- 대안공간 루프, 이은새 개인전: 밤의 괴물들 (Alternative Space Loop, Eunsae Lee Solo Exhibition: Night Freaks)
- 인천문화통신 3.0,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예술가: 이은새, 이희준, 정금형, 2021.08.17
- 갤러리2, As usual : 늘 마시던 걸로 (Gallery2, As usual)
- 일민미술관, IMA Picks 2021 (Ilmin Museum of Art, IMA Picks 2021)
- 보그 코리아,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여성 작가 3인의 삼중주, 2023.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