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센터 나비의 재개관전으로 한진수 개인전《뜸: A Pregnant Pause》이 서울 종로구 사간동의 새로운 공간에서 6월 12일부터 8월 1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키네틱 설치 작가 한진수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움직임, 시간, 우연성, 생성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전시장에는 전선, 기계장치, 액체,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구조물들이 하나의 생태계처럼 펼쳐진다. 작가는 완성된 형태보다 어떤 현상이 발생하기 직전의 상태, 질서와 불확실성이 함께 작동하는 순간에 주목한다.


전시장면 / 사진: 아트센터나비

전시 제목인 “뜸”은 이러한 태도를 잘 드러낸다. “뜸”은 무언가를 서둘러 완성하지 않고 내부에서 천천히 변화가 일어나도록 기다리는 시간이다. 영문 부제 ‘A Pregnant Pause’ 역시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가 생겨나기 직전의 충만한 정지를 의미한다.


전시모습 / 사진: 한진수 인스타그램

한진수의 작업은 기술의 속도와 효율을 강조하기보다, 기계적 장치가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과 감각의 흐름을 보여준다.
 
 
 
결과보다 생성의 과정
 
한진수는 오랫동안 평면, 조각, 설치, 키네틱 아트를 넘나들며 물질과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생성의 구조를 탐구해 왔다. 이번 전시 역시 완성된 결과를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벽면의 기계장치에서 수많은 전선들이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검은 액체 위에서 작은 구조물들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기계는 작동하고 있지만 그 움직임은 결코 완전히 예측되지 않는다.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하나의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 자체이다.
 
작가는 결과보다 “발생의 조건”에 주목한다. 질서와 무질서, 필연과 우연, 통제와 불확실성 사이에서 생성되는 미묘한 순간들을 포착하려는 것이다.


한진수,〈그림형성기 #1(Painting Formation Machine #1)〉, 2014. / 사진: 아트센터나비

기계는 어떻게 생명처럼 움직이는가
 
흥미로운 점은 한진수의 작업이 첨단 기술의 화려함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많은 미디어아트가 AI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면, 한진수는 오히려 단순한 기계장치와 반복적인 운동을 통해 생명체와 유사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기계는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그 규칙이 환경과 우연한 변수들을 만나게 되면 예측할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 순간 기계는 더 이상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보인다.
 
이번 전시는 바로 그 경계에 주목한다. 기계와 자연, 인공과 유기체, 질서와 혼돈 사이에 존재하는 생명의 가능성이다.
 
 
 
“뜸”이라는 시간
 
한국어에서 “뜸”은 음식을 익힐 때 불을 끈 뒤 한동안 그대로 두어 내부에서 천천히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무언가를 서둘러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익어가도록 기다리는 시간이다.
 
영문 부제인 ‘A Pregnant Pause’ 역시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정지가 아니라, 새로운 무엇인가가 생겨나기 직전의 잠시 멈춤이다. 아직 완성된 형태는 없지만, 내부에서는 이미 변화가 시작된 상태다.
 
한진수의 이번 전시는 바로 이 ‘기다림의 상태’를 작업의 조건으로 삼는다. 기계 장치, 회로, 움직임, 데이터와 같은 기술적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그것들은 빠른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라기보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는 환경을 구성하는 장치에 가깝다. 작가는 무엇을 완전히 통제하기보다, 물질과 기계, 시간과 우연이 서로 반응하도록 둔다.
 
그래서 이 전시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의 새로움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을 통해 무엇이 즉시 산출되는가보다, 그 과정 안에서 어떤 변화가 천천히 발생하는가를 바라보게 한다는 점이다. 효율과 속도에 익숙한 시대에 한진수의 작업은 잠시 멈추고, 기다리고,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뜸: A Pregnant Pause》는 완성된 결과보다 과정의 시간에 주목하는 전시다. 작가는 기계와 물질, 데이터와 우연이 얽히는 장면을 통해, 무언가가 스스로 변화해가는 시간을 보여준다. 이 전시의 핵심은 거창한 미래 기술의 선언이 아니라, 빠르게 결론 내릴 수 없는 상태를 그대로 견디며 바라보게 하는 데 있다.


한진수 / 사진: 한진수

작가 소개
 
한진수(Han Jinsu)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이다. 평면, 입체, 키네틱 아트, 설치 작업을 중심으로 물질의 변화와 기계적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생성의 구조를 탐구한다. 최근에는 단순한 재료와 반복 장치를 통해 결과보다 “발생의 조건”에 가까운 상황들을 구축하며, 필연과 우연, 질서와 불확실성 사이에서 미세하게 흔들리는 감각의 흐름을 작업으로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여러 매체를 이용하여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 오래 머무는 작업을 이어 왔다. 무한한 붓질을 통해 완성을 지연시키는〈그림형성기〉(2014~), 얕은 수면 위에서 생성과 소멸의 흔적이 동시에 발생하는 설치〈화이트 폰드〉(2007~), 중심 없이 부유하는 검은 버블이 끊임없이 흔적을 남기는〈불확실의 꽃〉(2022~) 등이 대표작이다.〈불확실의 꽃〉은 2022년 창원조각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바 있다.


재개관한 아트센터나비 전경 / 사진: 아트센터나비

아트센터나비
 
아트센터 나비는 2000년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서린빌딩에서 출발한 이후 예술과 기술의 접점을 중심으로 전시, 교육, 연구, 국제 교류를 지속해 왔으며, 인공지능, 로보틱스, 인터랙티브 미디어, 네트워크 문화 등 기술 기반 예술의 주요 의제들을 일찍부터 다루어 왔다.
 
특히 뉴 미디어를 동시대 기술 환경 속에서 확장하며, 예술가와 공학자, 디자이너, 건축가, 인문학 연구자들이 함께 교류하는 실험적 플랫폼으로 기능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