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컨템퍼러리를
향하여
모더니즘이 형식의
혁신과 역사적 진보를 미술의 내적 동력으로 삼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그 서사를 해체하며 의미의 상대성과
차이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오늘날의 컨템퍼러리 미술은 더 이상 새로운 미학적 원리나 단일한 역사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체계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규범이나 목표라기보다, 역사 이후의 조건 속에서 미술이 작동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서로 다른 시간대의 담론, 매체,
정치적 맥락이 위계 없이 병존하며 충돌하는 상황 자체가 컨템퍼러리의 전제가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컨템퍼러리는 특정한 양식이나 사조가 아니라, 미술이 단일한 기준으로 정당화될 수 없게 된 이후의 운영
체계라 할 수 있다. 이 체계 안에서 작품은 형식적 필연성보다는 제도적 맥락, 담론의 위치, 유통 구조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획득해 왔다. 미술의 자율성은 내적 논리에서 보장되기보다, 외부 조건들과의 긴장
속에서 간신히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이 조건 역시 한계에 이르고 있다. 모든 것이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상태가 지속되면서, 미술은 스스로를 규정할 좌표를 상실하고 있다. 차이와 다원성은 더
이상 비판적 힘을 갖지 못하고, 담론은 축적되기보다 반복·소모되는
경향을 보인다. 컨템퍼러리라는 개념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을 설명하는 언어로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제 우리가
마주한 국면은 컨템퍼러리라는 개념 자체가 설명력을 잃어가는 상태, 다시 말해 포스트 컨템퍼러리(post-contemporary)의 문턱에 가깝다.
포스트 컨템퍼러리의
핵심은 단순한 ‘컨템퍼러리 이후’의 시기나 새로운 형식의
제안이 아니라, 동시대 미술을 둘러싼 조건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인 전환에 있다. 이 전환은 새로운 스타일이나 사조의 등장으로 식별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담론 체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지점에서, 서로 다른 질문들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로
드러난다.
포스트 컨템퍼러리의
시대와 한국 동시대 미술의 대응
- 작가의 새로운 위치와 조건
포스트 컨템퍼러리의
시대에서 작가는 더 이상 새로운 형식을 발명하는 주체로만 규정되기 어렵다. 이는 창작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대부분의 형식이 출현했고, 매체 간
경계가 해체된 상태에서, 형식의 새로움만으로 작업의 의미를 정당화하는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새로운 형식의 부재가 아니라, 형식이 더
이상 판단의 최종 근거가 될 수 없게 된 상태가 문제의 핵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소멸한 것은 아니다. 포스트 컨템퍼러리 상황에서 작가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된다. 작가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 이전에, 어떤
조건 속에서 작업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주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제도적 맥락, 전시와 유통의 구조, 기술과 자동화의 개입 수준은 더 이상 외부에서
주어지는 환경이 아니라, 작가가 스스로 판단하고 감당해야 할 작업의 일부가 되었다.
이제 작업은
단순히 결과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제도에 편입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유통될 것인지, 기술적 개입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연속적인 선택과
태도의 집합으로 성립한다. 이 선택들은 작품의 의미를 사후적으로 장식하는 요소가 아니라, 작업 그 자체를 구성하는 핵심 조건이 된다. 다시 말해, 작가는 형식을 생산하는 존재에서 작업이 성립하는
조건을 선택하고 배열하는 존재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
속에서 작가의 아이덴티티 역시 새롭게 정의된다. 더 이상 독창성은 고유한 스타일이나 차별화된 시각 언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어진 조건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디까지
받아들이며, 어떤 지점에서 거부하거나 재구성하는가에 대한 판단 능력에서 드러난다. 작가성은 독창성의 신화가 아니라, 조건을 사유하고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태도에서 형성된다.
결국 포스트
컨템퍼러리의 작가는 새로운 형식을 제시하는 발명가라기보다, 이미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세계 속에서 작업이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을 선택하고 그 선택의 책임을 떠안는 주체에 가깝다. 이때 예술은 더 이상 ‘무엇을 보여주었는가’로 평가되지 않는다. 대신 ‘어떤 조건에서, 어떤
판단을 통해 작업이 가능해졌는가’가 작가를 규정하는 핵심 질문으로 떠오른다.
- 비평의 언어는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는가
포스트 컨템퍼러리의
조건에서 비평의 언어와 역할 역시 근본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동시대 미술에서 비평은 오랫동안 맥락
설명과 담론 중계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 작품을 특정 이론, 정치적
이슈, 사회적 담론에 연결하고 그 위치를 정당화하는 것이 비평의 주요 임무로 간주되었다. 이 과정에서 비평은 판단의 주체라기보다, 이미 형성된 의미를 정리하고
배치하는 해설자의 역할에 가까웠다.
그러나 포스트
컨템퍼러리의 조건에서는 이러한 설명 중심의 비평은 점차 설득력을 잃는다. 이미 대부분의 작업은 과잉
맥락화되어 있으며, 의미는 오히려 넘쳐난다. 이론적으로 무엇이
참조 가능한가보다, 무엇이 실제로 중요한 문제인가를 가려내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평이 기존처럼 의미를 덧붙이는 역할에 머무른다면, 그것은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기보다 의미의 과잉을 가속화하는 장치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따라서 오늘날
비평이 수행해야 할 역할은 의미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기준을 다시 설정하는 일에 가깝다. 무엇이 이 작업에서 핵심적인 질문인가, 어떤 선택이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회피되었는가, 이 작업은 어떤 시간성과 책임의 범위를 전제하고 있는가를 묻는 언어가 필요하다. 이는 작품을 ‘이해시키는’ 언어가
아니라, 작품이 놓인 조건과 그 선택의 결과를 드러내는 언어다.
이러한 비평은
더 이상 중립적일 수 없다. 판단을 수행한다는 것은 곧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며, 틀릴 가능성을 전제하는 행위다. 포스트 컨템퍼러리의 비평은 해석의
확장이 아니라 판단의 수행에 가깝다. 그것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가 아니라, 특정한 문제를 중요하다고 선언하고 그 선언에 책임을 지는 행위다. 이
지점에서 비평은 다시 정치적이며 윤리적인 위치에 놓이게 된다.
결국 포스트
컨템퍼러리 미술은 작가와 비평, 제도와 시장이 각자의 역할을 재확인하는 과정 속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 더 많은 이미지나 더 빠른 순환이 아니라, 느려진 판단과 조건에
대한 자각이 요구되는 국면이다. 이 전환은 새로운 이론의 등장이나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다만 기존의 언어와 구조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시작되며, 그
인식이 지속될 때에만 비로소 새로운 미술의 좌표가 형성될 수 있다.
시장, 제도, 그리고 인공지능
예술은 더 이상
경험이나 사유의 장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지, 담론, 데이터, 가격이라는 지표로 환원되며 순환하는 체계 안에 편입되었다. 작품은 의미를 생성하기보다, 의미로 소비되도록
관리되는 단위가 되고, 미술은 점점
더 가독성과 전파 가능성을 중심으로 조직된다.
이 과정에서
제도는 미술을 이동·전시·기록하는 시스템으로 기능해 왔다. 미술관, 비엔날레, 공공
컬렉션은 작품을 역사화하고 담론 속에 위치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동시에 선택과 배제의 논리를 통해
특정 경향과 언어를 고정시키는 힘을 행사한다. 제도는 중립적인 보관소가 아니라, 미술이 어떻게 이해되고 기억될 것인지를 규정하는 판단 장치다.
시장은 이러한
구조를 가치의 언어로 전환시킨다. 작품의 고유성에 대한 판단은 점차 가격, 희소성, 유통 이력과 결합되고, 예술적
의미는 경제적 신호로 번역된다. 생산과 소비의 리듬은 작업의 속도와 방향을 규정하며, 미술은 점점 더 빠르게 반응하고 즉각적으로 해석 가능한 형식을 요구받는다. 이때
판단은 숙고의 결과가 아니라, 시장 반응의 집계로 대체된다.
기술은 이 두
영역을 가속화하는 조건으로 작동한다. 디지털 플랫폼과 알고리즘,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지의 생산과 유통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며, 창작의 주체, 저자성, 원본성이라는 전통적 개념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인공지능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창작과 판단의 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조건으로 등장하며, 예술이 무엇을 생산하는가보다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는가를 다시 묻게 만든다.
중요한 점은
자본, 제도, 기술이 더 이상 분리된 외부 조건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제도는 시장의 논리를 내면화하고, 시장은
기술을 통해 확장되며, 기술은 다시 제도적 승인 속에서 의미를 획득한다. 이 결합된 구조 속에서 예술은 끊임없이 순환하지만, 판단의 기준과
책임의 위치는 점점 불분명해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동시대 미술의 위기는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의미와 판단이 성립할 수 있는 조건 자체의 문제로 드러난다.
따라서 포스트
컨템퍼러리 미술이 요구하는 것은 새로운 이미지나 스타일의 생산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이 여전히 판단과
책임, 시간성과 경험의 밀도를 가질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다시 사유하는 일에 가깝다. 포스트 컨템퍼러리는 결과를 제시하는 영역이 아니라, 예술이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을 묻는 문제 영역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포스트 컨템퍼러리의
새로운 주체를 향하여
오늘날 세계
미술은 더 이상 단일한 중심을 전제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상태를 모두에게 열린 해방이나 모두를
존중하는 다원성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독이다. 중심 권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판단과 승인, 유통의 구조 속으로 재배치되었고 그 작동은 이전보다
훨씬 정교해졌다. 세계 미술은 지금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판단하고 누가 승인받는가를 둘러싼 경쟁 속에서 재편되고 있다.
이 전환 국면에서
한국 동시대 미술이 직면한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글로벌 미술 시스템의 빠른 수용자이자 효율적인 참여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질문을 생산하는 주체, 다시 말해 세계
동시대 미술의 한 축으로 기능할 것인가. 이 차이는 규모나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무엇을 더 많이 보여줄 것인가가 아니라, 주체적
사유를 시작하고 그것을 끝까지 감당할 것인가의 문제다.
지금 세계 미술이
요구하는 것은 새로운 스타일이나 지역적 특색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세계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조건—기술과 삶의 급격한 밀착, 과잉 연결 속의 고립, 기억과 역사에 대한 비대칭적 처리, 판단의 자동화—을 지속적으로 문제화할 수 있는 사유의 밀도와 구조다. 한국 사회는
이러한 조건들이 가장 응축된 형태로 작동해 온 장소 중 하나다. 이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잠재적 생산
조건이지만, 그 잠재력은 결코 저절로 현실화되지 않는다.
문제는 역량의
부족이 아니다. 한국 동시대 미술이 직면한 핵심 문제는 오히려 이러한 전환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 감당하지
않으려는 구조적 태도에 가깝다. 작가는 트렌드를 재현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학습해 왔고, 비평은 제도와 충돌하지 않는 언어에 익숙해졌으며, 제도는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시스템을 반복해 왔다. 시장은 이러한 선택들을 가격과 가시성으로 보상해 왔다. 그 결과 일시적인 성과는 얻었지만, 지속적으로 축적되는 성취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포스트 컨템퍼러리로의
전환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것은 새로운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판단의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작가는 더 이상 이미지를 생산하는 기술자에 머물 수 없다. 어떤 조건에서 작업할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비평은 설명과 정당화의 언어를 넘어, 틀릴
가능성을 감수하면서도 판단을 수행해야 한다. 제도는 반복적인 성과를 증명하는 장치에서 벗어나, 실패와 지연이 장기적으로 축적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시장 역시 단기적
유행과 가격 상승을 증폭시키는 기능을 넘어서, 의미 형성의 위험을 일정 부분 분담하는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주체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포스트 컨템퍼러리 국면에서 다시금 순수예술의 소비자이자
유통의 주변부에 머물 수밖에 없다.
‘한국 미술은 잠재력이 있으며 가능성이 있다’는 말은 이제 진부하다. 가능성은 이미 충분히 확인되었다. 지금 요구되는 것은 더 이상의
기대가 아니라, 결단과 실행의 언어다. 무엇을 더 배울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남아 있다.
그동안 한국
미술계가 유보하고 미뤄 온 질문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책임 있는 해답을 직접 감당하지 않는 한, 어떤 실질적인 전환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제 한국 동시대
미술의 다음 국면은, 이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그
판단의 결과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주체가 등장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