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국 동시대 미술을 소개하거나 옹호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또한 새로운 사조를 선언하거나 미래의 형식을 예언하기 위한 목적도 아니다. 이 연재가 출발하는 지점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다.

컨템퍼러리 미술은 어떤 조건 위에서 작동해 왔으며,
그 조건은 지금도 유효한가?

오늘날 ‘포스트 컨템퍼러리’라는 용어는 일정한 이론적 합의나 분석 틀로 사용되기보다는, 컨템퍼러리 미술 이후의 막연한 상태를 지칭하는 편의적 명칭으로 호출되는 경우가 많다. 이 용어는 종종 새로운 경향이나 세대, 혹은 아직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변화를 가리키는 잠정적 표식으로 사용되며, 그 자체가 어떤 작동 조건이나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개념으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그 결과 ‘포스트 컨템퍼러리’는 미래를 향한 예고이거나 또 하나의 경향명처럼 소비되며, 컨템퍼러리 미술이 전제로 삼아온 조건이 실제로 어떻게 변형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으로는 충분히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 연재는 포스트 컨템퍼러리를 선언하거나 정의하기에 앞서, 컨템퍼러리 미술이 전제로 삼아온 조건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검토하는 데서 출발하고자 한다.
 
 

컨템퍼러리 미술이라는 인식 체계
 
컨템퍼러리 미술은 단순히‘동시대에 제작된 미술’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인식 체계이자 제도적 합의였다. 세계는 해석 가능하며, 비판은 유효하고, 의미는 지속적으로 생산될 수 있다는 전제가 공유되었고, 이 전제 위에서 작품은 여전히 핵심 단위로 기능했다.
 
비평과 제도는 작품의 의미를 조정하고 축적하는 장치로 작동했으며, 가치에 대한 판단은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지 않고 모두에게 해석 가능한 열린 과정으로 정착되었다. 이 체계를 지탱한 핵심 작동 원리는 판단의 유예, 관계 중심성, 제도 비판이었다.
 
‘판단의 유예’는 하나의 기준만으로 위계를 구성하는 폭력을 경계하기 위한 장치였고, ‘관계 중심성’은 작품을 사회·제도·담론의 맥락 속에서 읽기 위한 분석 틀이었으며, ‘제도 비판’은 미술 제도의 권력과 규범을 드러내고 수정 가능하게 만드는 비판적 실천이었다. 이 전제들은 한때 세계를 읽는 가장 유효한 미학적·비평적 도구였다.
 
 
 
판단 유예에서 구조적 회피로
 
그러나 이러한 전제들은 장기간 반복되며 점차 의도되지 않은 결과를 낳기 시작했다. 여기서 말하는 판단 유예란, 단지 평가를 늦추는 태도가 아니라, 전시와 작품이 설정한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그 목표가 실제로 달성되었는지, 무엇이 실패했는지를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판단의 유예, 즉 가치 판단의 보류는 더 이상 유연성의 장치로 기능하지 않고, 가치에 대한 판단을 구조적으로 미루는 상태로 고착되었다. 이 구조 속에서 전시는 끊임없이 생산되지만, 전시가 제기한 의제가 작품 선정과 전시 구성, 관람 경험을 통해 어떤 미적·비평적 성취로 검증되었는지에 대한 성과는 축적되지 않는다.

실패는 분석되지 않고, 한계는 수정되지 않으며,
판단은 다음 전시를 위한 기준으로 남지 못한다.
 
유예는 개방성을 보장하는 장치가 아니라, 
판단과 책임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드는 구조적 회피로 전환된다.


관계 중심성과 작품의 고유가치


‘관계 중심성’ 역시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그 가치가 왜곡되었다.
 
관계는 본래 작품을 사회적·제도적 맥락 속에서 정교하게 읽기 위한 분석의 언어였다. 그러나 같은 포맷으로 반복되는 전시 환경 속에서 관계는 점차 작품의 가치를 논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뒤로 하고 그 맥락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중립적 언어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관계가 발생했다는 사실, 참여가 이루어졌다는 서술, 맥락이 호출되었다는 설명이 작품 고유의 성취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작품의 완성도—형식, 밀도, 설계, 숙련—에 대한 논의는 비평의 중심에서 사라져버렸으며 이 자리는 점점 비 본질적인 것들이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작품은 더 이상 평가의 대상이라기보다
하나의 사례, 사건의 계기, 담론을 호출하기 위한 매개로 소비된다.
 
관계는 확장되지만,
작품 자체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언어는 점차 약화된다.


제도 비판의 권력화와 책임의 소거

 
제도 비판 역시 중요한 전환을 겪었다. 제도 비판은 원래 미술관, 비엔날레, 시장, 담론 구조가 권력과 규범을 드러낼 때 그것을 수정 가능하게 만드는 미학적 실천이었다. 그러나 제도 비판적 담론과 실천이 장기간 반복되며 전시의 필수 레퍼토리가 되었을 때, 이제 이러한 비판은 제도를 흔드는 행위라기보다 기성 제도의 안정된 권위 안에서 당연히 수행되는 하나의 역할론으로 의미가 고착되었다.
 
이때 제도 비판은 전시를 정당화하는 언어로 기능하지만, 제도 운영의 책임 구조와 판단 기준이 실제로 바뀌거나 수정하는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제도 비판적 구조에서는 더 이상 작품 선정과 전시 구성에서 이루어진 판단에 대해 누가 어떤 기준으로 책임을 지는지, 그 판단이 왜 옳았는지 혹은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불분명해진다.

비판은 제도권 안에서 반복될 뿐, 책임은 없어지거나
가볍게 분산되고 그 대상과 실체는 비가시화된다.


“이미 정당화된 규칙”에 대한 재검토


컨템퍼러리 미술은 오랫동안 암묵적으로 다음과 같은 태도를 전제해 왔다. 이 전시는 이미 검증된 제도 안에서 이루어졌고, 이 규칙들은 정당성을 확보했으니, 관람자와 참여자는 그것을 신뢰하고 따라도 된다는 전제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이 지금 가장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전시가 제시하는 규칙과 포맷, 판단의 방식이 이미 정당하다는 가정 자체가 유지되는 한, 그 규칙이 실제로 무엇을 생산했고 무엇을 실패시켰는지는 질문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문제는 규칙이 있다는 데 있지 않고, 그 규칙이 여전히 유효한지,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 수정 가능한 대상인지가 충분히 질문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포스트 컨템퍼러리의 조건

이러한 상태—판단이 구조적으로 유예되고, 관계가 정당화의 언어로 기능하며, 제도 비판이 ‘제도화’되고, 책임과 수정의 회로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를 이 글에서는‘포스트 컨템퍼러리의 조건’이라 부른다.
 
이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국면이 아니라, 이미 형성되어 작동 중이지만 충분히 인식되지 않은 조건이다. 또한 이는 특정 지역이나 비서구 미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세계 동시대 미술 전반이 공유하는 구조적 상태다.


 
한국 동시대 미술이 놓인 위치

한국 동시대 미술은 이 조건을 가장 압축적으로 경험한 장(field) 중 하나다. 국제적 언어와 제도적 포맷을 빠르게 내면화하며 성장해 온 한국 미술은, 이제 더 이상 “서구 담론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를 묻는 위치에 머물러 있지 않다. 오히려 질문은 반대로 설정되어야 한다.

지금 세계 동시대 미술이 직면한 이 조건을, 
누가 가장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가.

이러한 의제의 설정은 결핍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새롭게 재설정 되어야만 하는 미래의 위치다. 조건을 통과한 주체만이 조건을 사유할 수 있다.
 


이 연재의 구성과 목적
 
이 연재는 총 3회에 걸쳐 오늘날 동시대 미술이 작동해 온 조건을 단계적으로 점검하고, 그 조건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지점을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핵심은 새로운 이론이나 해답을 제시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컨템퍼러리 미술이 전제로 삼아 온 판단 방식과 제도적 작동 원리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검토하고, 그 한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1회에서는 컨템퍼러리 미술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판단 유예의 구조가 반복 속에서 어떻게 고착되었는지를 분석한다.
 
판단 유예는 본래 단일한 기준의 폭력을 경계하고,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열어 두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 유예가 장기간 반복되면서 전시는 스스로의 성취와 실패를 규정하지 않는 상태로 굳어졌고, 판단은 유연성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회피되는 상태로 전환되었다.
 
이 회차에서는 전시가 설정한 기획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그 목표가 작품 선정과 전시 구성 과정에서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지, 그리고 무엇이 성취되었고 무엇이 실패했는지가 왜 판단되지 않는 상태로 남게 되었는지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컨템퍼러리 미술의 판단 구조가 더 이상 축적과 수정의 회로로 기능하지 못하게 된 과정을 구체적으로 검토한다.
 
 
2회에서는 판단 기준이 약화된 이후의 상태를 다룬다.
 
판단과 평가의 공백은 중립적인 상태로 유지되지 않는다. 이 공백은 자본, 가시성, 네트워크, 서사적 연결성에 의해 대체되어 왔다.
 
이 회차에서는 담론이 언어 차원에서는 유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가치 판단의 기준이 어떻게 노출 빈도, 제도적 연결성, 브랜드화된 급진성으로 이동했는지를 분석한다.
 
구체적으로는 탈자본적 언어와 자본 논리가 동시에 작동하는 방식, 비엔날레·미술관·시장·브랜드가 결합하는 구조, 그리고 작품의 질이나 완성도 대신 가시성이 평가 기준으로 기능하게 된 과정을 통해 담론 이후의 동시대 미술이 어떤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3회에서는 이러한 조건 속에서 한국 동시대 미술이 놓인 위치를 검토한다.
 
한국 동시대 미술은 세계 동시대 미술의 담론을 성실하게 수용하고 수행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국제적 언어와 제도적 포맷을 충분히 내면화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성취 이후, 동일한 질문을 반복하는 방식만으로는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기 어려운 단계에 도달해 있다.
 
따라서 이 회차에서는 한국 동시대 미술이 응답자의 위치를 넘어설 수 있는 조건, 담론을 수입하는 주체가 아니라 질문을 재설정하는 주체로 이동하기 위한 전제, 그리고 작품·판단·제도에 대한 분석 능력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이를 통해 포스트 컨템퍼러리적 조건을 사유의 출발점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검토한다.
 


나아가며
 
이 연재의 목적은 새로운 해답을 제시하는 데 있지 않다. 현재 동시대 미술이 직면한 문제는 또 하나의 선언이나 새로운 개념의 도입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엇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지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판단이 어떻게 유예되었고, 그 유예가 어떤 구조적 결과를 낳았는지, 관계와 비판이 어떤 방식으로 중화되었는지를 분석하지 않는 한, 미래에 대한 논의는 공허한 차원에 머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연재는 한국 동시대 미술이 세계 동시대 미술의 현재를 단순히 추종하는 위치를 넘어, 그 조건 자체를 분석하고 질문하는 하나의 참조점으로 이동할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한국 동시대 미술의 미래를 논하기 위해 반드시 논해야만 하는 필요불가결한 작업에 해당한다.
 
미래는 새로운 형식을 선언함으로써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조건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조건을 사유의 대상으로 전환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