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26일, 한국 1세대 실험미술가 곽덕준 작가가 향년 88세 나이로 별세했다. 곽덕준(1937-2025)은
한일 미술 교류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국과 일본의 현대미술 분야, 특히 실험미술 전개 과정에서 교두보 역할을 하며 독창적인 미술 언어를 확장해 왔다.
1970년에 제작된 ‘계량기’ 시리즈는 바로 그해에, 일본을 방문했던 당시 구겐하임 큐레이터 에드워드
프라이(Edward F. Fry, 1935–1992)에게 공개적인 찬사를 받으며, 한국 작가로서는 가장 이른 개념미술 작업으로 한·일 양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한다.
곽덕준은 1969년부터 정상화, 박서보
등과 어울리며 한·일 교류 전시에 지속적으로 참여한다. 그는
확고하게 자리 잡은 관념들의 절대성을 무너뜨리고 세계 인식의 무의미함을 독창적인 조형성이 담긴 작업으로 구현해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故곽덕준 작가(1937-2025) ©갤러리현대
하나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인 조형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의 작업은 회화에서 설치·퍼포먼스·영상·사진·판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전개되며, 그 실험의 진폭은 한 영역에서도
다양한 양태로 나타난다.
이처럼 곽덕준의 작품세계는 실험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작가 노트에서 드러나듯이 “재일한국인(Zainichi
Korean)”이 바라보는 역사와 사회에 대한 시선도 곽덕준 예술세계의 주요 키워드다.

작가는 1974년 대표작 ‘대통령과
곽’을 통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타임(TIME)』지 표지를 장식한 역대 미국 대통령의 얼굴 절반과 자신의 얼굴을 결합하는,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개념을 기반으로 한 이 작업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논란을 야기했다.
‘대통령과 곽’ 시리즈는
제럴드 포드(Gerald Ford)부터 버락 오바마(Barack
Obama)까지, 미국의 역대 대통령을 소재로 삼십 년 넘게 이어지며 그의 명성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곽덕준은 자신만의 아이러니한 유머와 냉소를 동원해 사회와 개인의 관계, 현실과
의식, 미디어와 개인적 사유의 거리라는 문제를 일관되게 풀어내며 세계의 이중성을 역설적으로 되묻고 진실의
허구성을 폭로해 왔다.
”한국에서도 이질적인 존재, 일본에서도 이질적인 존재, 이 두 가지가 뒤섞인 상태에서 생겨난
독자적인 세계관이 내 작업의 근원이 되었다.” —곽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