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9일,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의 평론가 마크 젠킨스(Mark Jenkins)는 미국 워싱턴 D.C. 아메리칸대학교 뮤지엄(American University
Museum)에서 열린 전시《Soaring (Narsha)》에 대해 “대담하면서도 깊이 뿌리내린 전시”라고 평가하며, 다문화 사회에서 예술과 정체성이 교차하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성찰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한미예술가협회(Han-Mee Artists Association of Greater Washington)의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특별전으로, ‘날다’는 의미의 고어 *나르샤(Narsha)*에서
전시명이 유래했다. 이는 한글 창제 직후인 1447년에 쓰인
서사시에서 착안한 것으로, 전시의 정서는 전통에 머무르기보다 오늘날 미국과 한국, 양 문화 사이에서 살아가는 작가들의 다층적 정체성과 감각을 담아낸다.
기획은
조지워싱턴대학교 이정실(Jung-Sil Lee) 교수가 맡았으며, 전시에는
미술사와 현대문화를 넘나드는 31명의 한국계 미국 작가가 참여해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의 작업을 선보였다.
전통과 현대, 한국과 미국을 잇는 작품들

문민선, <용>, 2025년. 종이 위에 먹잉크 / 사진 출처: 워싱턴 포스트
문민선(Minsun Oh Mun)은 <용> 이라는 한글 안에 한국 전통 문양과 미국 국회의사당, 자유의
여신상 등 상징물을 병치하며 두 문화의 공존을 드러낸다.
호건 유미(Yumi Hogan)는 한국 풍경화의 구도에 미국적
색채 감각을 더해 전통 산수화의 경계를 확장한다.
이규진(Kyujin Lee)은 유럽 동화 속 캐릭터들을 한국식
지붕 아래 배치한 회화로, 문화 간 충돌과 서사의 재구성을 탐구한다.
작품〈Disquiet Unveiled〉에서는 작은 인어공주와 빨간 모자가 등장하고, 화면을 지퍼 형태의 구조가 가로지르며 이야기를 열고 닫는다.
회화와 조각 사이, 물성과 의미의 변주

정순희, <눈에 보이지 않는 것 10>, 2025년. 캔버스에 유채. / 사진 출처: 워싱턴 포스트
정순희(Sunhee Kim Jung)의 식물 클로즈업 회화는 조지아 오키프를 연상시키며, 고요한 생명감을 평면적 표현으로 전달한다.
그리피스
기순(Kisoon J. Griffith)는 빈 셔츠와 바지 같은 서양 의류를 정물처럼 그려, 부재된 인물의 존재감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백영희(Yeong-Hi Paik)는 납작한 산과 입체적으로 표현된 구름을 병치시켜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허문다.
정은미(Eunmee Chung)는 전통 버선의 형태를 그림과 입체 오브제로 결합하며,
붉은색과 흰색의 색채 대비를 통해 전통과 현대의 충돌을 시각화한다.

김주, <그리움>, 2025년. 실크 실, 철사, 철망, 손바느질. / 사진 출처: 워싱턴 포스트
김주(Joo Kim)는 자수천과 철사를 활용한 유기적 조형물 〈Longing〉을
통해 감정의 흐름을 붉은 곡선으로 표현했다.
문화적 암시와 종교적 상징의 현대적 해석

(왼쪽) 신인순, <아리랑의 환상 V>, 2025년. (오른쪽) 김진호, <펼쳐짐>, 2025년. 알루미늄, 분체 도장. / 사진 출처: 워싱턴 포스트
신인순(In-soon Shin)의 <아리랑의 환상 V> 는 전통 민요 '아리랑'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서양적 그래픽 구조 안에 한지를 활용해 전통성과 실험성이 공존한다.
김진호(Jean
Jinho Kim)는 신약성서의 겨자씨 비유에서 영감을 받은 조형물을 전시했다. 높이 8피트의 추상 조각은 산업적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종교적 상징을 현대 조형 언어로 번역한다.

수리, <태양>, 2025년. 모노필라멘트 뜨개질, 플라스틱 메시. / 사진 출처: 워싱턴 포스트
수리(SuLi, 이수영)는 뜨개질된 플라스틱 반구 15개를 동일한 구성으로 배열하되 색채만을 다르게 하여, 특정한 문화적
기원을 벗어난 순수 조형성을 추구한다.
오킴
홍자 코멜리아(Komelia Hongja Okim)의 〈Marching
Forward〉는 청동과 구리로 만든 조각으로, 유럽적 조형 안에 도가적 사유를 담아냈다.
태 D 김-제임스(Tae D Kim-James)는 바이오 플라스틱을 이용해 남성 누드 조각을 제작했으며, 퀴어 정체성과 시대성을 함께 반영한다. 인물의 유일한 ‘의복’은 실제 백팩으로, 유머와
메시지가 공존한다.
전시의 의의
《Soaring (Narsha)》는 한국계 미국 작가들이 경험한 이문화 간의 긴장,
화해, 그리고 혼종을 섬세하게 풀어낸 전시다. 작품
속에서 전통은 지워지지 않되 고정되지 않고, 문화는 뿌리를 유지한 채 가지를 뻗는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전시에 대해 “교차문화 예술은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길을 탐색할 수 있다. ‘나르샤’는 대담하지만 동시에 뿌리 깊은 전시”라고 평했다.
전시는 2025년 8월 10일까지
아메리칸대학교 카첸 아트센터(Katzen Arts Center)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