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이 사라진 시대, 그 침묵의 무게
 
한국 동시대 미술계는 지금, 비평의 부재라는 깊은 침묵 속에 놓여 있다. 전시장은 넘쳐나고 작품은 미술시장의 거래를 통하여 빠르게 소비되지만, 그 모든 흐름을 해석하고 견제하며 의미를 새기는 비평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비평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대. 비평이 없는 예술계는 눈먼 시장과 같다. 판단은 대중의 기호와 자본의 손에 맡겨지고, 작가의 예술적 실천은 설명되지 않으며, 예술은 점점 더 '말 없는 소비적 이미지'로 전락하고 있다.
 
단순히 평론가의 수가 줄어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미술생태계 전체가 '비평이 필요 없는 구조'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그 전환은 넘쳐나는 미술시장과 제대로 된 기획이 없는 전시, 자본을 목적으로 하는 공모제도, 전시기획방식 등 복합적인 요인 속에서 일어났다. 결국 그것은 한국 미술의 주체성 상실, 창작의 방향 상실, 미술 본질의  훼손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비평의 몰락을 이끈 구조적 요인들
 
1. 자본주의적 미술시장과 '기획의 시대'

한국 동시대 미술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인 시장화의 흐름을 탔다. 아트페어의 성장, 컬렉터층의 확대, 갤러리 산업의 활성화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예술에 대한 판단 권한이 점점 '기획자'와 '딜러'의 손에 넘어가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평론가가 작가를 발굴하고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주체였다면, 이제는 큐레이터가 작가를 선별하고, 시장이 평가하는 구조가 되었다. 비평은 이 흐름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기획이 곧 해석이고, 전시가 곧 비평이 되었기 때문이다.

 
2. 공모제도와 공공기관의 기획 독점

국공립 미술관과 문화재단들이 주도하는 공모 중심의 창작지원제도 역시 비평의 자리를 빼앗는 데 기여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기보다 ‘기획안 작성’으로 선정되고, 평론가는 작가에 대한 해석이 아닌, 기획안 심사에 참여하는 행정적 역할로 제한된다. 평론의 기능은 ‘프로젝트 실행을 위한 부속 서류’로 전락하고, 비평의 언어는 차츰 표준화되고 무기력해졌다. 공공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대부분의 전시는 다채로운 해석보다 ‘기획 목적에 부합한 실행’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3.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와 비평의 고립

디지털 전환 이후, 미술 관련 콘텐츠는 대부분 ‘뉴스’나 ‘인터뷰’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포털 중심의 유통구조는 긴 글을 소화하지 못하고, 소셜미디어는 비평보다 감상과 홍보에 적합한 매체다. 과거 미술잡지나 평론지에서 활발히 논의되던 심도 있는 글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이와 더불어, 비평 자체의 생산 기반도 붕괴되었다. 비평가는 전업으로 생존할 수 없고, 대학 내 전공도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독립적으로 비평을 발표할 공간도 마땅치 않다. 이러한 생태계 속에서 비평은 ‘사라진 글쓰기’가 되어버렸다.

 
4. 한국 사회에서의 비판 불가능성

한국 사회는 구조적으로 ‘비판’을 어렵게 만든다. 비평은 곧 진영논리로 오인되거나, 인신공격으로 왜곡되며, 관계망 안에서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언어’로 간주된다. 미술계는 좁고 밀접하며, 비평가가 발언하기 위해선 그 내부와 일정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비평가는 생존을 위해 기획이나 지원사업에 관여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비평의 독립성과 비판성은 자연스럽게 약화된다. 결국 '지적 침묵'이 생존을 위한 전략이 되었고, 그 침묵이 비평을 몰락시켰다.


 
비평의 복원은 예술의 주체적 생산성을 되찾는 길이다

비평은 단지 해석의 도구가 아니라, 예술의 존엄과 시대정신을 연결하는 통로다. 비평이 없는 예술계는 자율성을 잃고, 방향을 잃고, 결국에는 창작의 내적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한국 동시대 미술이 다시 예술적 주체성을 회복하고, 세계 속의 독자적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비평의 회복이 선행되어야 한다.
 
비평의 복원은 단지 국내 미술계를 위한 과제가 아니다. 지금은 한국 동시대 미술이 세계 속에서 자리를 잡아야 하는 국제화의 시대다. 작품이 국경을 넘고, 전시가 해외에서 개최되며, 작가가 글로벌 담론 속에 위치해야 하는 오늘, 비평 역시 세계를 향한 시선과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다시 말해, 비평의 부활은 국제적 경쟁력과 자생적 담론 형성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복원하는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
 
국제 미술계에서 작가와 작품은 단지 시각적 매체로만 이해되지 않는다. 비평은 그 의미와 맥락을 해석하고 연결하는 언어이자, 미술사를 구성하는 지식의 축이다.
 
어떤 작가가 세계 미술계에 진입하고, 제도와 시장 속에서 지속 가능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담론과 해석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미술계는 아직까지도 국내 중심의 평면적인 평가와 단발성 소개에 머무르고 있으며, 세계 미술계에서 통용될 수 있는 비평의 구조화, 번역, 전달체계가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비평의 부재’는 단순히 해석의 부재를 넘어,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미술이 주체적 언어로 말하지 못하는 상황과 직결된다. 한국 미술이 해외에서 수동적 소비의 대상이 아닌, 적극적 발화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평론 생태계의 회복이 절실하다. 그것은 더 이상 ‘국내 미술계 내부에서 말하기 위한 비평’이 아니라, ‘세계 미술계와 대화하기 위한 비평’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평 역시 국제적인 시야와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세계 미술사의 변화, 담론의 흐름, 이론의 확장성 속에서 한국 미술을 관조할 수 있는 비평이 필요하다. 단지 전시의 소개를 넘어,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미술 실천이 어떤 시대적, 지역적, 철학적 맥락 위에 놓여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 미술이 세계화의 선두에 설 수 있는 길이며, 외부의 언어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언어를 가진 미술로 성장하는 방법론이다.
 
비평의 부활은 단지 미술계 내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문화 경쟁력의 문제이며, 언어 주권의 문제이며, 예술을 통한 국가적 정체성 형성의 문제다. 작품이 세계에 나가고 있는 지금, 그 작품을 설명하고 의미화하는 자국 비평의 힘이 없다면, 결국 한국 미술은 ‘말 없는 이미지’로 소비될 뿐이다. 예술은 이미지이지만, 세계화는 언어로 이루어진다. 이제 우리는 예술을 설명할 수 있는 우리의 언어, 우리의 비평을 다시 세워야 할 때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히 ‘비평을 다시 쓰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평론 플랫폼의 구축, 공공 지원의 구조 개편, 비평가 생태계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평을 수용할 수 있는 미술계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단지 글 몇 편이 아니라, 예술이 사회와 호흡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힘이었다. 자본의 언어가 예술을 점령한 지금, 우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예술의 가치를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누가 그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