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동시대 미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기초지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미술은 시대의 흐름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그 변화의 근본에는 시대정신의
변화나 새로운 과학의 발견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미술의
감상과 이해’의 의미와 ‘미술과 철학 그리고 과학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21세기 동시대 미술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국제화, 전문화, 산업화되고 있는 ‘동시대 미술의 운영구조’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미술은 각 시대마다 작품의 평가기준을 달리 하기 때문에 과거의 감상법으로 오늘날의 미술을 이해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지금의 미술을 이해하려면 새롭게 변화된 미술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아직 19세기식 미술 감상법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감상과 이해의 의미
‘감상’이란 감각을 통해서 얻어지는 마음 속의 감정이나 생각을 말하며, ‘이해’란
이성을 통하여 얻어지는 경험이나 지식을 말한다.
인간의 두뇌는 감성과 지성의 영역이 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대상을 인지하고 판단하고 또 이를 바탕으로 모든 결정을 내린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미술품의 창작 역시 단순히 감각적 행위의 결과물이 아니라 감성과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통합적
사고가 적절한 내용과 형식을 통하여 드러난 시각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심지어 같은 예술가들도, 위대한
화가들은 원래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명작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한다. 마치 고흐는 타고나면서
정신적으로 특이한 사람이기 때문에 독창적인 작품이 가능했다거나 피카소는 원래 천재이기 때문에 막 그려도 최고의 작품이 될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오른쪽: 빈센트 반 고흐, 양털 깎는 사람 (밀레의 작품을 모작), 1889 ⓒVan Gogh Museum
고흐가 우울증을 앓거나 섬세한 성격으로 인하여 정신적 어려움을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작품을 할 때는 자연주의의 대표화가 밀레의 작품들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 기법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피나는 연습을 반복했다는 것을 그가 남긴 수많은 드로잉과 습작들을 보면 잘 알수 있다.
피카소, <과학과 자비>, 1897, 캔버스에 유채,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피카소는 16세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 그는 스스로 "열두 살 때 이미 라파엘로처럼 그렸다"고 할만큼 기교가 뛰어났지만 아무리 잘 그린다 해도 결국엔 그들의 아류밖에 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수없이 많은 날들을 방황하다 마침내 ‘회화는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세잔의 방식을 깨닫게 되면서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리게 된 것이다.
15살부터 90살이 될 때까지 피카소 자화상의 변천.
피카소는 유명해진 이후에도 작품에 대한 공부와 습작을 계속하였고 평생동안 수 만점의 작품을 남길 정도로 창작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처럼 위대한 미술가는 우리가 당연시하는 천재적 재능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각고의 노력으로 만들어졌으며, 미술을 올바로 감상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을 성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취향과 수준, 그리고 가치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좋아하는(like)것을 좋다(good)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은 개인의
취향(taste)으로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유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옳다거나 틀리다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 취향이 가치와 수준을 가지려면 반드시 선결해야할 중요한 문제가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 맛나게 먹었던 ‘설탕 많이 넣은 달달한 떡볶이’를 좋아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지만, 이렇게 달달한 떡볶이가 건강에 좋은 음식이 되려면 설탕 대신 좀 더 좋은 재료와 양념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좋은 미술작품도 마찬가지다. 작가의 상상력 혹은 즉흥적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표현했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유명한 작가들도 그때 그때의 기발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미술이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좋은 작품이 되려면 아이디어 수준을 넘어 그 작가의 사상을 제대로 정리한 개념과
주제가 보편 타당성을 획득하여야 하며, 이 내용에 적절한 시각적 형식을 가질 수 있을때 비로서 좋은
작품으로서의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예술이 가치
있는 이유는 자신은 물론 타인의 삶을 구속하지 않으면서 삶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미술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의 취향을 가치있고 수준있게 만들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예술은 무의미하다.
미술, 과학, 철학
철학이나 과학은 이성적이고 예술은 감성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 상관없는
분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인간의 머리는 이성과 감성이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서로 밸런스를
맞추며 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세 분야는 인간 정신의 본질을 다루는 학문들이기 때문에 논리를 필요로 하는 철학이나 실증을
필요로 하는 과학 역시 감성의 영역인 상상력이나 직관의 도움이 없으면 지적 깨달음이나 과학적 발견은 불가능하다.
그리스의 전성기인 클래식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서 〈도리포로스 Doryphoros〉라는
조각이 있다. 이 뜻은 '창을 맨 사람'으로서 폴리클레이토스가 만들었는데, 그의 책 〈카논canon〉의 ‘신체비례론’을 보면 ‘인간의 신체는 신의 외형을
닮았으며, 7등신이 가장 완벽에 가깝다’고 주장하였다. 이 생각은 사람을
신의 모방으로 생각했던 신인동형론(Anthropomorphism)에 기초하는데, 당대의 시대정신을 합리적 방식으로 미술품에 적용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중간) 미켈란젤로 (1475-1564), 다비드, 4.34미터, 1504년,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오른쪽) 제프 쿤스 (1955-), 뽀빠이, 거울처럼 반짝이는 스테인리스강, 198x131x72cm, 2009-2011년, 1/3
르네상스 시대의 일점 투시법은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돔을 완성한 부르넬레스키에 의해 고안되었다. 일점투시법은 대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점에서 각 지점까지의 거리를 작은 화면에 동일한 비례로 축소시켜 표현한 획기적 방법으로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나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 등 당 대 최고의 걸작들이 이 실증적 이론과 기법에 근거하여 탄생하였다.
원근법을 묘사한 작품. 모델 앞에 격자무늬 스크린을 놓고 종이에 정확히 옮긴다.
인상주의의 탄생 역시 뉴튼의 스펙트럼의 발견에 기초하며 오늘날의 현대미술 역시 최첨단 과학 지식이나 기술의 진보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들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2017년 광주 국립 아시아 문화 전당에서 전시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현대미술가이자
건축가인 토마스 사라세노(Tomas Saraceno)의 〈행성 그 사이의 우리〉전을 보면, 천체물리학과 우주항공학 그리고 생물학자와 물리학자들과의 협업을 통하여 미래의 사회와 환경 그리고 도시의 모습
등을 첨단기술로 재현한 멋진 설치작품을 볼 수 있는데, 앞으로 미술과 철학 그리고 첨단과학의 만남은
이러한 방식으로 더욱 더 활성화되고 가속화될 것이라 생각한다.
‘예술은 시대정신의 산물’이라는 말을 한 알로이스 리글(Alois Riegl, 1858-1905)은 말할 것도 없고, 르네 마그리트가 ‘작품을 통해서 철학을 한다’거나 아인슈타인이 ‘신이 없는 과학은 불가능하다’라는 말처럼 미술작품은 언제나 끊임없이 새로운 시각적 방식으로 그 시대의 변혁을 드러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동시대 미술의 운영구조
동시대 미술의 구조는 이를 구성하는 각 분야들이 유기적 관계를 통하여 순환되는 전체적 틀을 말한다. 이를 이루는 각 분야를 간단히 살펴보면, 작가와 작품을 중심으로 하는 창작의 영역과 이의 미적 가치를 논하는 이론분야(미학, 미술사, 평론)와 작품들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공간(미술관, 비영리 기관, 비엔날레)들이 있으며, 작품의 유통과 판매를 위하여 운영되는 상업공간(갤러리, 옥션, 아트페어), 그리고 소장 혹은 투자를 목적으로 작품을 구입(컬렉션)하는 영역으로 구성된다.
동시대 미술의 구조가 완성되려면 먼저 다양한 작품을 생산해내는 작가들이 있어야 하며 이들이 전시할 수 있는 중소 갤러리나
비영리공간과 같은 기초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통하여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진 작가들을 선별해 내고 이들의 작품을 전시를 할 수 있는 큐레이터와 미술관이 있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이들의 작품세계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있는 이론가의 비평이 필요하다.
이후 작품을 1차 시장에 공급할 수 있는 상업 갤러리가 있어야 하며, 컬렉터 혹은 공공의 컬렉션을 통하여 작품의 소장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1차 시장에서 판매된 작품들은 시장의 원리에 따라 2차 시장 시스템(옥션, 딜러, 컨설턴트, 어드바이저)을 통하여 공정하고 투명한 작품의 유통이 이루어져야만
하며, 이 전 과정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작품들이 미술사가와 미학자들의 미술사적 미학적 가치
평가를 통하여 예술품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미술을 돌아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시대의 사상이나 권력 혹은 사회의 특성이 고스란히 작품에 반영되어 왔지만, 오늘날처럼 창작의 영역과 각 구조가 동등하게 전면에 부각된 시대는 없었다.
특히 동시대 미술구조는 이를 이루는 각 분야들이 더욱 더 전문화, 자본화, 세계화되면서 미술작품의 탄생과 존재방식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