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광주비엔날레 3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성과를 짚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광주비엔날레와 더불어 국내에서 활발히 개최되고 있는 다양한 비엔날레들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이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해보겠습니다.
광주비엔날레와 한국 비엔날레의 현황
김영호 평론가(중앙대 교수)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전역에서 16개 이상의 비엔날레가 개최되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 광주, 부산, 대전, 대구, 청주, 창원 등
주요 도시에서 열리며, 대표적인 행사로 광주비엔날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 청주공예비엔날레
등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여수국제미술제나 양림골목비엔날레처럼 새롭게 등장한 비엔날레도 증가하면서 대한민국은 '비엔날레 대국'으로 불릴 정도입니다.
비엔날레는 동시대의 중요한
문제들을 탐구하고, 그것을 논의하는 장을 마련하고, 시대
정신과 문화적 흐름을 반영하며, 그것을 예술로 보여주고 기록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다양한 국가와 문화권의
예술가들이 모여 세계적인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문화적 배경과 관점을 공유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일반
관람객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참여하여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비엔날레들은
이러한 본래의 목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지역 홍보나 관광객 유치의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는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 비엔날레의 기획 문제
현재 한국에는 국제적인 수준에서
비엔날레를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전문가가 매우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국내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비엔날레가
외국의 성공적인 비엔날레를 모방하는 데 그치고 있거나 외국의 유명 기획자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엔날레의 목적은 행사를 통하여
한국 문화예술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입니다. 비록 처음에는 우리의 기획능력이 부족하여 외국의 유명
기획자에게 맡기더라도 이제는 그들의 선진마인드와 노하우를 배워서 자생적인 행사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그러한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비엔날레는 거의 없고 한국의 기획자들을 성장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도 제대로 마련되어있지 않습니다.
외국인 예술감독의 장단점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같이
규모가 큰 경우는 대부분 외국인 예술감독이나 국제적 경험이 있는 한국인 큐레이터들을 선정합니다.
외국인 감독은 대부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유명인을 초대하여 진행하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글로벌 트렌드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 동시대 미술의 맥락 속에서 시대를 재조명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예술감독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는
판소리와 현대 사운드스케이프를 결합한 전시를 통해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고 세계의 시대적 모습을 반영하는 전시를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해외에서 체류하고
살아온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국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깊이있게 이해하지 못할 수 있으며, 한국만의 특수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또한, 이들이 자신들의 노하우를 한국의 기획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는데 이의 부재로 인하여 한국
미술계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광주비엔날레의 과제
이제 세계의 동시대 미술은
국제화, 자본화, 전문화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말은 작가와 작품, 나아가 한국의 미술문화가 제대로 자리매김 하려면 일정 이상의 자본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미술관이나 갤러리, 그리고 기획자나 평론가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한 팀이 되어작가와 함께 해야만 미술계가 생존할 수 있고 나아가 국제무대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30년이 된 광주비엔날레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수 많은 비엔날레들은 아직도 이러한 전문적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지자체의 일회성 행사로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모적 운영체계로는 한국 동시대 미술계의
발전은 물론 한국의 문화적 성장이나 예술의 풍요로움은 맛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행사들이 지속적인
발전과 국가경쟁력을 갖추려면 다음과 같은 기본과제들이 선결되어야만 합니다.
가장먼저, 아카이브의 기능을 강화해야만 합니다.
비엔날레는 대규모의 행사로서 한 시대의 성격을 규정하고 그 시대를 보여주는 전세계의 많은 작가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잘 보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 미술아카이브 〈레퍼런스 라이브러리〉 ©서울시립미술관
하지만 한국 동시대 미술계의
커다란 단점 중 하나는 이에 대한 미학적 미술사적 기록의 부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일정이상의
시간을 두어 연구하고 이를 자료화해야만 하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일회성 행사로 성급히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제라도 비엔날레에
참가한 작가나 전시작품에 대해 제대로 연구하고 기록할 수 있는 인력과 아카이브를 제대로 구축하여 이를 한국 문화예술의 자산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을
기울여 가야할 것입니다.
두번째로 한국 작가들과 기획자들의 전문적인 양성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런 대규모의지자체 행사들을 일회적이고 단발적인 이벤트로 진행하고 말 경우 예산낭비가 심할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의 발전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21세기 예술가를 위한 포럼
CUE 아트 재단과의 협력으로 조직된 일련의 대화 중 다섯 번째 대화.
제목: "이중적으로 살다" © CUE Art Foundation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동시대
미술계에 있어서 비엔날레는 자국의 미술문화에 대한 수준을 가장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오프라인 플랫폼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이를 제대로 활용하여
국내의 많은 작가와 기획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교류 프로그램, 워크숍,
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 글로벌 역량을 키우고 국제 미술계에서 더 큰 활동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대중과의 소통능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전시가 지나치게 난해하거나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미술이 대중예술과 다른 점은 세상과 인간의 본질을 다루는 영역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미술의 본질은 최근에 등장한 AI 기술로 인하여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듯이 매우 자연스런 것입니다.
테이트 모던 터빈 홀 프로젝트 © Sarah Ransome Art
한국에는 많이 알려져있지 않지만
서구미술에서 새로운 담론을 형성해가는 주요 비엔날레로 평가받는 베를린 비엔날레를 보면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적 상황과 현실인식을 그들만의 시각으로
공론화하고 이를 새로운 시대적 이슈와 아젠다로 자리매김해 가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이것은 비엔날레가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본질을 고민하고 탐구하여 앞으로 미래에 바람직한 인간의 모습을 고민하는 중요한 인프라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반 관람객들에게 예술가들의 시대적 고민이 담긴 작품에 대해 공감하고 이를 바탕으로 함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를 적절히 해설하고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나 대중 참여가 가능한 강좌프로그램 등을 적극적으로 운영하여 서로 공유하고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가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결론 및 미래의 전망
광주비엔날레는 지난 30년 동안 한국 동시대 미술의 국제화를 촉진하고, 예술을 통한 시대의
메시지를 효과적인 전시로 전달함으로써 한국 동시대 미술의 발전과 국제적 위상에 큰 기여를 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다른 비엔날레와
차별성 없는 유사한 비엔날레가 난무하고 변별성 없는 형식의 전시가 반복되는 상황은 우리 스스로의 발전을 가로막고 결국에는 이벤트성 행사로 진행되다가
사라질 확률이 높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한국만의
자생적인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비엔날레의 형식을 새롭게 고민해, 우리만의 독창적이고 차별화된 비엔날레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국내외에서 독보적인
예술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과 예술적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비엔날레가
글로벌 예술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문화 브랜드로 성장하며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기반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