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하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Seoul Biennale of Architecture and Urbanism 2025) 가 9월 26일 막을 올렸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 이 총감독을 맡아 내건 슬로건은 단 하나, “Radically More Human(극도로 인간적인)”. 이 단어는 그 자체로 선언문이다.

그는 오늘날의 도시를 “Blandemic(무미건조의 팬데믹)”이라 부르며, 전 세계의 건축이 점점 더 획일적이고 감정이 결여된 형태로 변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번 비엔날레는 그 무감각의 시대를 넘어, 다시 감정과 감각을 회복한 도시를 상상하는 실험의 장이다.
 

차가운 도시, 따뜻한 벽을 만나다





열린송현녹지광장에 설치된 길이 약 90m, 높이 16m에 이르는 “휴머나이즈 월”은 이번 비엔날레를 대표하는 상징적 설치작품이다. / ©김경선, 서울시 홈페이지

비엔날레의 상징적 설치물은 “Humanise Wall(휴머니즈 월)”. 길이 90미터, 1,400여 개의 철강 타일이 이어진 거대한 벽은 38개국에서 모인 400여 건축 이미지와 시민 커뮤니티의 감성적 기록을 담았다.
 
이 벽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다. 각기 다른 도시와 문화의 ‘감정의 파편’을 한데 엮은 건축적 모자이크이자, 차가운 도시가 다시 따뜻한 얼굴을 되찾는 상징이다. 흥미롭게도 디자인의 모티프는 한국 전통 조각보(jogakbo). 불완전한 조각들이 만나 하나의 아름다움을 이루듯, 도시도 사람들의 감정과 기억이 모여 완성된다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조각보", 35 x 34cm, 19c, 통인가게 소장 ⓒ 통인 화랑

전문가를 넘어, 모두가 건축가가 되는 도시
 
이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참여의 방식’이다.
 
요리사, 패션 디자이너, 자동차 디자이너, 수공예 장인 등 비건축 분야의 창작자들이 건축 외피를 재해석한 프로젝트 ‘Walls of Public Life’ 에 참여한다.


“일상의 벽”은 다양한 직업군 24개 팀의 상상이 실현된 공간이다. ©박지영

그들이 만들어낸 외벽의 조각들은 기능적 구조물이 아니라, 하나의 감정적 언어로 작동한다.
 
전시에 소개된 24개의 벽 구조물은 파사드 디자인에서 필수적인 ‘시각적 복잡성(visual complexity)’ 을 창조하는 다양한 방법을 보여준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참여한 전시물 "수연재(水然齋, The Healing Wall)"는 24개의 야외 설치 작품 중 하나로, 도심 속 인간 중심의 힐링 공간을 파사드 조형물로 구현됐다. 한국 전통 건축에서 영감을 받은 "수연재"는 일반적인 파사드 전시물과 달리 시민들이 직접 체험하고 내부에 들어올 수 있도록 구성됐다. /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이들은 의도적인 장식 요소가 건물의 외관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탐구하기 위해, 다양한 재료, 질감, 패턴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 벽들은 하나의 집합체로서, 건축 외피가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제시하고, 건물이 보다 감성적으로 공명하며 더 매력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안한다.
 
“건축은 전문가의 언어가 아니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감각의 언어여야 한다”는 메시지.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전환이 이번 비엔날레의 중심에 있다.
 
또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한 ‘오픈콜 프로젝트’ 도 눈길을 끈다.
 
83건의 제안 중 10개의 커뮤니티 팀이 최종 선정되어, 서울의 일상 공간 속에서 ‘감정의 건축’을 구현한다. 건축이 더 이상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이 아니라, 시민이 함께 만드는 ‘공감의 구조’ 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도시는 감정을 잃었는가

이번 비엔날레를 준비하며 서울시는 시민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놀랍게도 응답자의 97%가 “현재의 주거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답했고, 90% 이상이 “건축이 자신의 기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이 결과는 도시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정서적 환경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헤더윅은 “건축이 인간의 감정에 무감각할 때, 도시도 병든다”고 말한다.
 
결국 이번 비엔날레는 건축의 문제를 넘어, ‘도시의 정서적 회복’ 을 다루는 문화적 처방전이라 할 수 있다.
 

 
서울에서 세계로: 건축이 묻는 감정의 미래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다. 2017년 첫 회 “Imminent Commons”, 2019년 “Collective City”, 2021년 “Crossroads: Building the Resilient City”, 그리고 2023년 “Land Architecture, Land Urbanism” 을 지나, 이제 2025년의 주제 “Radically More Human” 은 하나의 귀결점처럼 다가온다.
 

“도시는 기술이 아니라 감정으로 완성된다”는 명제. 개막과 함께 열리는 ‘Emotional City Conference’ 에서는 전 세계 건축가, 도시학자, 예술가, 시민이 모여 ‘감정을 설계하는 도시’라는 새로운 의제를 논의한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이제 물리적 성장의 단계를 지나, 감성의 도시, 감정의 도시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도시는 결국 사람의 얼굴이다
 
2025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도시를 다시 ‘인간의 얼굴’로 되돌려놓으려는 시도다.
 
차가운 콘크리트와 유리 대신, 사람의 감정이 스며든 건축- 단순한 미학을 넘어, 건축이 어떻게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하는 자리- 그리고 무엇보다, 도시가 인간을 어떻게 품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건축은 피부와 같다. 그것이 따뜻해야 사람도 숨 쉴 수 있다.” 토머스 헤더윅의 이 말은 이번 비엔날레의 모든 것을 함축한다.

서울은 지금, 인간적인 도시를 다시 꿈꾸고 있다.
 
 
아래는 2025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Seoul Biennale of Architecture and Urbanism 2025) 의 공식 전시 및 주요 행사 장소들이니 참고바란다.


2025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주요 장소
 
1. 열린송현 녹지광장 (Open Songhyeon Green Plaza)

 
- 메인 전시장 및 대형 설치물《Humanise Wall》전시
- 서울 도심 한복판, 경복궁 동편에 위치
-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현동 48-9

 
2. 서울도시건축전시관 (Seoul Hall of Urbanism & Architecture)
 
- 학술·컨퍼런스 프로그램 및 관련 전시 진행
-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 5 (정동 일대)
 

3. 서울 전역의 공공공간 및 거리 일대 (Citywide Satellite Venues)
 
- 도심 속 공공장소, 골목길, 지역 커뮤니티 공간 등에서 시민참여형 프로젝트 전개
- 비엔날레의 “도시가 전시장이 된다”는 기조를 반영


- 기간: 2025년 9월 26일(금) ~ 11월 18일(화)
- 입장료: 무료
- 운영시간:
> 열린송현 녹지광장: 10:00–21:00
> 서울도시건축전시관: 10:00–18:00 (월요일 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