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심사위원단 5명의 사퇴성명서 / 사진 : e-flux 인스타그램 캡쳐화면

2026년 4월 30일,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In Minor Keys》의 국제심사위원단 5명 전원이 사퇴했다. 개막을 단 9일 앞둔 시점이었다.
 
위원장 솔랑쥬 올리베이라 파르카스(Solange Oliveira Farkas)를 비롯해 조 버트(Zoe Butt), 엘비라 디안가니 오세(Elvira Dyangani Ose), 마르타 쿠즈마(Marta Kuzma), 지오반나 자페리(Giovanna Zapperi)는 e-flux를 통해 짧은 사퇴 성명을 발표했다.


왼쪽부터 솔랑쥬 올리베이라 파르카스(Solange Oliveira Farkas), 조 버트(Zoe Butt), 엘비라 디안가니 오세(Elvira Dyangani Ose), 마르타 쿠즈마(Marta Kuzma), 지오반나 자페리(Giovanna Zapperi). / 사진: en.ara.cat

솔랑쥬 올리베이라 파르카스(Solange Oliveira Farkas)는 비데오브라질(VideoBrasil)의 창립 디렉터로, 라틴아메리카와 글로벌 사우스의 영상문화와 비주류 미술 담론을 오랫동안 다뤄온 큐레이터다.

조 버트(Zoe Butt)는 베트남과 동남아시아 동시대 미술을 국제적으로 소개해온 큐레이터이며, 엘비라 디안가니 오세(Elvira Dyangani Ose)는 적도 기니 출신으로 공공미술과 탈식민 담론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마르타 쿠즈마(Marta Kuzma)는 동유럽과 포스트소비에트 지역의 비평적 미술 담론을 다뤄온 큐레이터이며, 지오반나 자페리(Giovanna Zapperi)는 페미니즘 미술사와 현대미술 이론을 연구해온 미술사학자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러시아와 이스라엘 국가관 참여 문제가 있었다. 심사위원단은 앞서 발표한〈의향 성명(Statement of Intention)〉에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된 국가 지도자가 있는 국가의 국가관을 황금사자상·은사자상 후보에서 제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결정은 사실상 러시아와 이스라엘 국가관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었고, 곧바로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이를 예술의 정치화이자 반이스라엘 정치 선전으로 비판했다. 이탈리아 문화부 장관 알레산드로 줄리(Alessandro Giuli)는 비엔날레 프리뷰와 개막식 보이콧을 선언했고, EU 역시 러시아 참여 문제를 이유로 2028년 베니스비엔날레 지원금 약 200만 유로의 철회 결정을 내렸다.
 
결국 심사위원단은 사퇴했고, 베니스비엔날레 재단은 기존 황금사자상 시상 구조를 폐지한 뒤 관람객 투표 기반의 ‘비지터스 라이언(Visitors’ Lions)’으로 대체, 시상식을 11월 22일 폐막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시위 현장
비엔날레 관계자와 참가 작가들을 포함한 예술가 및 활동가들이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이스라엘관 폐쇄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이날 베니스에서는 파업이 선언되었으며, 18개 국가관이 전시를 중단했고, 일부 작가들은 본전시 작품을 가리는 방식으로 연대 의사를 표명했다. / 사진 및 내용 출처 : @Oren_ziv



비엔날레 관계자와 참가 작가들을 포함한 예술가 및 활동가들이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이스라엘관 폐쇄를 요구하며 “예술로 집단학살을 정당화하지 말라
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 사진 및 내용 출처 : @Oren_ziv

예술의 자율성과 정치적 책임 사이
 
국제미술계는 오랫동안 예술의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를 핵심 원칙으로 삼아왔다. 미술관과 비엔날레는 현실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도, 그 현실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공적 장으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전쟁과 인권, 국가 폭력, 플랫폼 정치가 실시간으로 확산되는 오늘의 환경에서는 그 경계가 훨씬 복잡해졌다. 국가관의 참여 여부, 후원 구조, 작가의 발언, 기관의 침묵까지 모두 논쟁의 대상이 된다.
 
이제 동시대 예술은 현실을 바깥에서 바라보는 위치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치적 갈등, 시장 질서, 기술 변화, 정체성 문제는 작품의 주제를 넘어 전시가 구성되고 해석되는 조건으로 작동한다.


푸시 라이엇(Pussy Riot) 멤버들과 활동가들이 러시아의 베니스비엔날레 참가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 및 내용 출처 : @Oren_ziv

오늘날 많은 국제전은 젠더, 식민주의, 환경, 난민, 전쟁 등의 의제를 다룬다. 이 과정에서 작품의 형식과 감각뿐 아니라 작가와 기관의 태도 역시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된다.
 
플랫폼 환경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빠르게 확산시킨다. 작품은 전시장에서 천천히 경험되기보다 온라인 이미지로 먼저 유통되고, 전시는 공유 가능한 장면으로 소비된다.
 
결국 오늘의 국제미술계에서 예술의 자율성과 정치적 책임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예술이 현실과 맺는 관계를 어떤 형식, 감각, 제도적 언어로 만들어내는가이다.


2026 베니스비엔날레(제61회) 국제미술전 한국관 전시 개막식. /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6 베니스비엔날레(제61회) 국제미술전 한국관 전시장면. / 사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 동시대 미술이 마주한 질문
 
2026년 베니스비엔날레 심사위원단 전원 사퇴 사태는 국제미술계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쟁과 인권, 국가관과 제도, 예술의 자율성과 정치적 책임은 이제 분리된 문제가 아니다. 동시대 예술은 이미 폭풍의 눈 속으로 들어와 있다.
 
이 변화는 한국 동시대 미술계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한국 미술계는 해외 아트페어 참여, 국제 비엔날레 진출, 해외 갤러리와 기관의 관심, 젊은 작가들의 국제적 활동 증가를 통해 글로벌 시스템 안으로 진입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집중해왔다.
 
그러나 이제 중요한 것은 참여 자체가 아니라, 세계 미술계의 구조가 흔들리는 상황을 어떤 시각과 언어로 읽어낼 것인가이다.
 
한국 미술계 역시 빠른 시장 노출, 이미지 중심의 전시 유통, SNS 반응 구조, 비평의 약화 속에서 작품의 축적과 판단 기준이 흔들리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동시대 미술은 국제 흐름을 단순히 따라가는 방식에 머물 수 없다. 한국 사회가 경험해온 압축 성장과 분단 현실, 초고속 도시화와 플랫폼 문화, 극단적 경쟁과 고립, 디지털 감각의 변화는 오늘날 세계가 겪고 있는 불안정성과 구조적 충돌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한국 동시대 미술 역시 그 폭풍을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휩쓸리지 않는 일이다. 세계의 언어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통과하고 있는 현실을 자기만의 감각과 구조로 다시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해석을 작품과 전시, 비평과 제도, 시장과 플랫폼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기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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