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미술관에서 2026년 9월 1일부터 12월 27일까지 열리는 아트스펙트럼 《방이있고모든라디오가각기다른주파수를향하고있다》는 한국의 작가 발굴 프로그램이 국제적인 공동기획 전시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프랑스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와 함께 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10개국 창작자 23명(팀)이 참여하며, 시각예술과 건축, 영화, 디자인, 음악 등 여러 분야의 작품 63점이 소개된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것은 참여 지역과 장르의 확대가 프로그램의 목적과 작가를 바라보는 맥락까지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미술계에서 새로운 작가를 발견해온 아트스펙트럼은 이제 서로 다른 지역의 창작자들을 연결하고, 그 관계 속에서 한국 작가의 작업을 새롭게 읽는 자리를 마련한다. 전시의 성격을 이해하려면 개별 작품과 함께 이러한 제도적 전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목장세미(유혜미), 〈체력 단련 활동장〉, 2022년 리움미술관 아트스펙트럼 전시 전경. 사진: 리움미술관.

국내 작가를 발견하던 프로그램의 방향 전환
 
2001년 시작된 아트스펙트럼은 국내 신진 작가의 발굴과 지원을 위한 플랫폼으로 자리해왔다. 프로그램의 중요한 전환점은 2024년 《드림 스크린》이었다. 당시 리크리트 티라바니자가 예술감독으로 참여하고 전효경·유지원이 공동기획하면서, 참여 범위가 아시아로 확대됐다. 전시는 스크린을 통해 세계를 경험하며 성장한 세대의 신체 감각과 현실 인식을 공통의 질문으로 삼았다.


2024 아트스펙트럼 《드림 스크린》 공식 포스터



2024 아트스펙트럼 《드림 스크린》 전시장면

2026년 전시는 이러한 확장을 이어가면서 기획의 구조를 다시 조정한다. 전효경·곽준영과 팔레 드 도쿄의 위고 비트라니(Hugo Vitrani)가 공동으로 기획하고, 개최 장소도 리움에서 호암으로 옮겼다. 서로 다른 문화적·사회적 조건에서 만들어진 작업들을 하나의 정체성이나 서사로 수렴시키지 않으면서 함께 바라보겠다는 것이 이번 전시의 주요한 방향이다.
 
이 변화는 한국 작가를 읽는 비교의 범위를 넓힌다. 국내의 세대와 경향을 중심으로 살펴보던 작업은 아시아 여러 지역의 노동과 도시, 기술과 신체, 이주와 정체성의 경험 속에 놓인다. 한국 작가의 고유성 역시 이러한 관계 안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 비슷한 매체를 사용하거나 공통의 관심을 가진 작가들이 서로 다른 사회적 조건에 어떻게 응답하는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왜 팔레 드 도쿄와 함께 기획했는가
 
팔레 드 도쿄와의 협업은 두 기관의 신진 작가 발굴 활동이 만난 결과다. 한 인터뷰에서 비트라니는 젊은 작가 발굴이라는 공통 관심을 협업의 배경으로 설명하고, 아시아 작가들의 작업을 배우고자 했다고 밝혔다. 팔레 드 도쿄 역시 공식 자료에서 아시아의 예술·문화 현장과 교류를 확대해왔다고 설명한다. 이번 전시는 한불 수교 140주년 공식 프로그램에도 포함돼 있다.
 
비트라니는 도시문화와 미술기관의 관계를 탐구해왔으며, 팔레 드 도쿄의 지하 공간에서 도시미술을 실험하는 ‘라스코 프로젝트’를 시작한 기획자다. 그의 활동은 이번 전시에서 서브컬처가 미술관의 여러 공간에 개입하는 방식과 연결해 살펴볼 수 있다.
 
한국의 기관이 장소와 제작 조건을 제공하고, 서로 다른 현장을 경험한 기획자들이 작가와 작업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이번 협업은 의미가 있다. 한국 동시대미술의 국제화는 작가가 해외 전시에 참여하는 경로와 함께, 한국의 기관이 국제적인 대화를 직접 구성하는 역량을 통해서도 진행된다. 아트스펙트럼의 변화는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시아’를 연결하는 전시의 방식
 
이번 전시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지역의 창작자들을 연결한다. 프랑스 작가 이브라힘 메이테 시켈리의 참여는 그 범위가 아시아 국적의 작가들에게 한정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아시아 문화에 대한 관심과 교류, 지역 간 이동도 전시의 구성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한국과 프랑스의 기획자들은 이러한 배경의 차이를 유지하면서 작업 사이의 접점을 찾고자 한다.
 
그 접점은 노동 현장의 위험, 도시 기반시설을 사용하는 몸, 건축이 관람객의 이동을 조정하는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작가의 작업도 다른 지역의 실천과 함께 살펴보면서 동시대의 문제에 응답하는 방식을 읽을 수 있다.
 
 
 
노동과 신체를 공간으로 드러내는 작업들
 
중국 작가 루오판 첸의 〈숨 막히는〉은 우한의 가구공장에서 목격한 열악한 환기와 분진 노출에서 출발한다. 무너질 듯 기울어진 집 형태의 구조물은 사물을 제작하는 노동자들이 감당하는 위험을 전시장 안으로 가져온다. 집이 제공하는 보호와 안정의 이미지에 생산 현장의 불안정성이 겹쳐지면서, 관람객은 완성된 사물의 외형과 그 뒤에 축적된 노동 조건을 함께 생각하게 된다.


루오판 첸 작품 설치 전경 / 사진: 호암미술관

이동현의 〈매달린 아기 원숭이〉는 배관과 원단, 빛과 연기 등을 결합한다. 함께 출품된 〈잠자는 어미 원숭이〉와 이어지는 이 작업에서 어미와 아기의 몸은 빛과 연기, 소리가 오가는 구조로 연결된다. 이 배관 구조는 생명체의 내부와 도시의 설비를 함께 연상시킨다.
 
산업 재료로 만들어진 장치와 연약한 생명체의 형상이 겹쳐지면서, 하나의 몸이 다른 몸에 의존하는 상태가 드러난다. 두 몸을 잇는 흐름은 생명을 유지하는 연결을 보여주며, 돌봄과 의존의 관계로도 읽을 수 있다.


이동현, 〈매달린 아기 원숭이〉, 2026, 알루미늄 파이프, 스테인레스 타이, 고무링, 밧줄, 집게, 옷핀, 원단, 알루미늄 주름관, 실, 전구, 전선, 후크 고리, 7구 분배기, 덕트관, 전기 작동 연무기 및 시로코팬, (바닥) 220 × 180 × 200 cm, (천장) 가변 설치, 설치 전경, 호암미술관 커미션/ 사진: 호암미술관, 촬영: 김연제.


두 작업에서는 몸을 둘러싼 환경에 주목할 수 있다. 루오판 첸이 노동 현장의 위험을 드러낸다면, 이동현은 두 몸을 잇는 흐름으로 생명의 의존을 표현한다.
 
 
 
도시의 구조와 관람객의 움직임
 
일본의 작가 집단 사이드 코어는 〈로드 워크, 언더 시티〉에서 도시의 지하 기반시설을 스케이트보더들의 움직임과 연결한다. 배수시설과 터널, 관리 통로가 몸의 이동을 통해 새로운 경로로 이어진다. 네 채널의 영상은 평소 접근하기 어려운 도시의 내부를 드러내며, 정해진 용도를 벗어나 장소를 사용하는 가능성을 탐색한다.






사이드 코어, 〈로드 워크, 언더 시티〉, 2023, 4 채널 비디오, 컬러, 11.2-채널 사운드, 16분 40초 / 사진: 호암미술관 인스타그램

최리아의 〈언덕들〉, 〈기둥의 기둥〉, 〈웰컴 펜스〉는 전시장의 면을 나누고 공간을 가로지르며 관람객의 시선과 이동에 영향을 미친다. 공간을 지지하거나 구획하는 요소들이 조각으로 제시되면서, 관람객은 재료와 형태를 살피는 동시에 자신의 몸이 놓인 위치를 의식하게 된다.
 
〈웰컴 펜스〉의 제목은 환영의 말과 경계의 장치를 함께 제시한다. 공간이 사람을 맞이하면서 움직임을 조정하는 방식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최리아, 〈언덕들〉, 2026, 〈기둥의 기둥〉, 2026, 〈웰컴 펜스〉, 2026, 설치 전경/출처: 호암미술관, 사진: 김연제.

사이드 코어와 최리아의 작업에서는 공간을 사용하는 몸에 주목할 수 있다. 도시의 지하를 가로지르는 움직임과 조각 사이를 지나는 관람객의 이동은 공간의 구조를 새롭게 경험하는 두 가지 방식이다.
 
 
 
정원의 풍경과 머무는 방식을 바꾸다
 
레이첼 윤의 〈퍼레이드 파라디 II〉는 호암미술관의 실제 나무들 사이에 회전하는 인공 야자수를 배치한다. 기계적 움직임은 정원의 익숙한 풍경에 이질적인 리듬을 더하고, 살아 있는 나무와 제작된 나무가 함께 놓인 장면은 자연과 인공의 차이를 부각한다.
 
전통 정원과 야자수가 불러오는 이국적인 이미지의 만남은 낙원의 풍경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생각하게 한다. 작품은 호암의 정원이 지닌 문화적 이미지와 부딪치며 의미를 얻는다.


레이첼 윤, 〈퍼레이드 파라디 II〉, 설치 전경. 사진: 호암미술관.

일본 건축가 야마다 스즈코의 〈매달린 달〉은 정원에 지름 8m의 반구형 캐노피를 매달아 관람객이 그 아래 머물 수 있는 장소를 만든다. 거대한 형태를 떠받치는 구조와 중력을 살펴보고 그 아래에서 쉬는 행위가 작품 경험에 포함된다.


야마다 스즈코, 〈매달린 달〉, 2026, FRP, 금속, 보강 콘크리트, 호암미술관 커미션 / 사진: 리움 인스타그램

레이첼 윤이 정원의 풍경에 낯선 움직임을 더한다면, 야마다 스즈코는 그곳에 머무는 장소를 만든다. 두 작품은 관람과 산책, 휴식이 이어지는 방식으로 야외 전시의 경험을 넓힌다.
 
이러한 공간 실험에는 이동현과 최리아의 작업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몸을 잇는 장치와 관람객의 이동을 이끄는 조각은 한국 작가가 국제 공동기획 안에서 제시하는 구체적인 질문이다.
 
 
 
국제적 확장 이후, 작가 지원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아트스펙트럼의 확장은 국내 작가에게 새로운 비교와 교류, 제작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신작 커미션은 작가가 미술관의 공간과 조건에 맞춰 작업을 발전시키도록 지원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한국 작가가 국제적인 동료 및 기획자와 관계를 맺는 기회 역시 프로그램의 새로운 가치가 될 수 있다.
 
이 변화와 함께 기존의 국내 신진 작가 지원 기능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살펴야 한다. 국제적 참여 범위가 넓어지는 과정에서 작가 발굴의 기준과 지원 대상, 후속 기회가 어떻게 조정됐는지는 프로그램의 방향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2026 아트스펙트럼은 한국의 작가 발굴 프로그램이 국제적인 관계를 구성하고 전시와 지원의 형식을 넓혀가는 사례다. 그 성과는 참여 국가와 장르의 수에 더해, 한국 작가의 작업을 새롭게 읽는 맥락과 신작 제작의 기회, 전시 이후 이어지는 교류를 통해 평가할 수 있다. 호암의 공간을 활용한 실험이 작가 지원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연결될 때 이번 확장의 의미도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전시 정보
 
전시명: 2026 아트스펙트럼 《방이있고모든라디오가각기다른주파수를향하고있다》
기간: 2026년 9월 1일–12월 27일
장소: 호암미술관
공동기획: 전효경·곽준영·위고 비트라니
참여작가 및 작품: 10개국 창작자 23명(팀), 작품 63점 - 레나 부이, 루오판 첸, 무스퀴퀴 치잉, 최리아, dpgp78, 할로미늄, 홍애린, 자슬린 카우어, 김지수, 이동현, 엘리아 누르비스타, 박웅규, 미셸 창 친, 신도시, 시가 리에코, 사이드 코어, 이브라힘 메이테 시켈리, 출라얀논 시리폴, 마틴 웡, 야마다 스즈코, 요코야마 유이치, 레이첼 윤, 장쉬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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