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은 2026년 7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임수범의 개인전《어젯밤 바라본 금빛 용의 신기루》를 개최한다.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처음 선보이는 이번 개인전은 회화와 도자 작업 등 62점을 통해 인간의 언어와 지각으로 완전히 규정할 수 없는 존재와 세계를 탐구한다.


전시 전경 / 사진: 아라리오갤러리

임수범은 자연과 물질의 근원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해 인간의 인식 체계로는 온전히 포착할 수 없는 존재들을 상상해 왔다.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생명체는 신인지 괴물인지, 수호자인지 위협적인 타자인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작가는 이러한 모호한 존재들을 통해 인간이 세계를 분류하고 위계화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진다.
 
전시 제목의 “신기루”는 눈앞에 분명히 나타나지만 끝내 도달할 수 없는 이미지다. 이는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감각과 그것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믿는 인식 사이의 간극을 상징한다. 임수범은 우리가 아직 보지 못했거나 이름 붙이지 못한 존재들이 인간의 인식 바깥에 머물고 있을 가능성을 회화적으로 제시한다.


전시 전경 / 사진: 아라리오갤러리

인간 중심의 세계에서 관계의 세계로
 
임수범은 세계를 인간을 중심으로 조직된 위계적 구조가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이 서로 연결된 관계망으로 바라본다. 그의 작품에서 인간은 세계의 중심을 차지하지 않으며, 규정되지 않은 존재들이 화면과 전시 공간의 주요한 주체로 등장한다.
 
작가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하나의 형상으로 확정하지 않는다. 대신 현실의 자연물과 신화적 존재, 고대 유물과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결합해 기존의 분류 체계에 포함되지 않는 생명체를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설정해 온 경계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낸다.


전시 전경 / 사진: 아라리오갤러리

경계를 지키는 신, 경계를 가로막는 괴물
 
이번 전시의 주요 모티프는 동아시아의 사신(四神)이다. 청룡·백호·주작·현무는 네 방위를 지키고 무덤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기능해 왔다. 임수범은 강서대묘의 사신도에서 출발해 이 오래된 존재들을 현대적인 조형 언어로 변형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사신은 안정적인 수호신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경계 안의 존재에게는 보호자이지만, 외부에서 안으로 들어오려는 타자에게는 길을 가로막는 괴물로 보일 수 있다. 동일한 형상이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신과 괴물, 보호자와 위협적인 존재로 달라지는 것이다.
 
임수범은 이러한 양가성을 통해 ‘우리’와 ‘타자’, 내부와 외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경계 역시 특정한 관점과 질서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어젯밤 바라본 금빛 용의 신기루〉, 2026, Acrylic on canvas, 224 × 224 cm (대각선 316 cm) / 사진: 아라리오갤러리

괴물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괴물은 오래전부터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와 사회적 경계를 시각화하는 형상으로 기능해 왔다. 무엇이 정상이며 무엇이 외부에 놓여 있는지를 드러내고, 인간이 설정한 질서의 한계를 가시화한다.
 
따라서 괴물의 외형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그것을 괴물로 규정하고, 어떤 불안과 공포를 그 형상에 투영하는가이다. 괴물은 낯선 존재에 관한 정보뿐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무지와 인식의 한계를 함께 보여준다.
 
임수범의 작업에서 신과 괴물은 서로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다. 신성한 것과 두려운 것, 친숙한 것과 낯선 것은 하나의 몸 안에서 공존한다. 작가는 존재를 단일한 의미로 규정하기보다 관점과 관계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지는 대상으로 제시한다.


〈냉기의 대지 위 검은 거북과 뱀〉, 2026, Acrylic on canvas, 140 x 200 cm / 사진: 아라리오갤러리

친숙함 속에서 발견되는 낯섦
 
임수범이 만들어낸 존재들은 전통적인 괴물의 위협적인 외형을 따르지 않는다. 둥글고 부드러운 윤곽과 순진한 표정,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모습은 관람자에게 먼저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자세히 바라볼수록 이들은 인간과 완전히 닮지 않은 모호한 존재로 남는다. 귀엽고 익숙해 보이지만 그 정체와 감정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다.
 
이는 불분명한 형상에서 인간의 얼굴이나 익숙한 대상을 발견하는 파레이돌리아와 연결된다. 인간은 비인간적인 존재에서도 자신의 표정과 감정을 읽으며 낯선 대상을 인간의 기준 안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임수범은 이러한 익숙함을 낯선 세계로 진입하는 통로로 활용하면서도, 그 존재가 완전히 이해되거나 해석되지 않도록 남겨둔다.


〈변방의 생명〉, 2026, Acrylic on canvas, 40.9 x 31.8 cm / 사진: 아라리오갤러리

끝나지 않는 이야기와 다층적 화면
 
임수범의 회화는 하나의 중심이나 완결된 서사로 조직되지 않는다. 화면 안에는 또 다른 화면이 열리고, 그 너머로 산과 우주, 용과 구름, 반복되는 풍경이 이어진다.
 
작가는 여러 이미지와 서사를 병치하고 겹쳐 놓는 패치워크 방식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관람자가 어떤 장면에 주목하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중심과 주변의 위치도 계속 달라진다.
 
이러한 구조는 세계를 하나의 의미로 환원하려는 태도를 경계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우주와 풍경은 인간의 인식 너머에도 세계와 이야기가 계속 존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임수범의 회화에서 이야기는 결론에 도달하기보다 인간의 시선이 멈추는 지점에서 다시 시작된다.
 
 
 
고대의 시간을 현재의 화면으로 옮기다
 
임수범은 박물관에서 마주한 고대 유물과 벽화에서 오랜 시간의 감각을 발견한다. 그에게 유물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낡은 사물이 아니라, 긴 시간을 통과해 현재까지 살아남은 물질적 존재다.
 
최근 회화에서는 강서대묘의 벽화를 연상시키는 표면을 만들기 위해 캔버스에 모래를 뿌리고, 희석한 아크릴 물감을 여러 차례 얇게 쌓는다. 물감은 거친 바탕에 스며들고 번지며 풍화된 벽화와 같은 질감을 형성한다.
 
서양의 현대적 재료인 아크릴 물감은 이 과정을 통해 동아시아의 전통 안료와 벽화를 연상시키는 표면으로 전환된다. 이는 과거의 이미지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시간의 감각을 현재의 회화적 언어로 다시 구성하는 작업이다.


〈공생하는 정령〉, 2026, 유약을 바른 도자, 아크릴, 퍼티, 석재용 에폭시, 40 x 40 x 104 cm / 사진: 아라리오갤러리

미래로 전달되는 도자의 시간
 
전시에는 회화와 함께 도자 작업도 소개된다. 임수범은 2022년부터 2023년 사이 도자를 배우면서, 먼 미래의 존재들이 자신의 작업을 발견한다면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상상했다.
 
흙이 불을 만나 단단한 형태로 변화하는 도자는 오랜 시간을 견디는 보존의 매체다. 작가는 회화 속에서 상상해 온 존재들을 도자라는 물질에 정착시키며 이들에게 시간적 지속성을 부여한다.
 
이는 평면의 형상을 단순히 입체로 옮기는 작업이 아니다. 고대의 유물에서 출발한 이미지가 현재의 회화와 도자를 거쳐 미래의 또 다른 존재에게 전달될 가능성을 탐구하는 조형적 시도다.
 
 
 
인간의 시선이 멈추는 곳에서
 
《어젯밤 바라본 금빛 용의 신기루》는 상상의 생명체를 묘사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전시는 인간이 세계를 어떤 기준으로 구분하고, 무엇을 신과 괴물, 인간과 타자로 규정하는지를 질문한다.
 
임수범은 고대 신화와 유물, 사신과 괴물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변형하며 인간 중심적 세계관 바깥의 존재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의 작품에서 신과 괴물, 친숙함과 낯섦, 과거와 미래는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화면과 존재 안에 함께 머문다.
 
신기루가 끝내 손에 잡히지 않으면서도 분명히 보이는 이미지이듯, 작품 속 존재들은 인간의 이해 바깥에 머물면서도 끊임없이 시선을 끌어당긴다. 인간의 인식이 멈추는 경계는 세계의 끝이 아니라, 다른 존재와 관계를 상상하기 시작하는 지점이 된다.


임수범 / 사진: 아라리오 갤러리

작가 소개
 
임수범은 1997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2022년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과정을 졸업했으며, 2026년 전남대학교 미술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스페이스 빈틀, 상업화랑, 예술공간 집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포스코미술관 광양, 디디에프, 광주비엔날레 광주파빌리온,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호랑가시나무 글라스폴리곤 및 베이스폴리곤, 대전시립미술관, 산수싸리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2022년 광주시립미술관 청년예술인지원센터와 2026년 에이치 아트랩 레지던시에 참여했다. 작품은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아라리오컬렉션 등에 소장되어 있다.


아라리오갤러리 전경 / 사진: 아라리오 갤러리

아라리오갤러리
 
아라리오갤러리는 한국과 중국을 기반으로 국내외 동시대 작가들을 소개해 온 현대미술 갤러리다. 신진 작가부터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중견·원로 작가까지 폭넓은 세대의 작업을 다루며, 회화와 조각,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전시를 기획해 왔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은 서로 다른 층고와 공간적 특성을 지닌 전시장을 활용해 작가의 작업과 건축적 환경이 긴밀하게 연결되는 전시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지하 공간은 임수범이 만들어낸 신화적 존재와 미지의 세계가 출현하는 장소로 전환된다.

 
 
전시 정보
 
전시명: 임수범 개인전《어젯밤 바라본 금빛 용의 신기루》
전시 기간: 2026년 7월 1일–8월 15일
전시 장소: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지하 1층
출품 작품: 회화와 도자 작업 등 62점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