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b. 1981)은 작품이 설치될 공간의 건축적 요소와 그곳에 내재한 보이지 않는 감각을 조형적으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작업은 가느다란 실이나 약간의 무게를 가진 체인, 얇은 와이어 등 최소한의 재료를 이용하며 대상과 그 대상을 둘러싼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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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부터 시작된 그의 초기 작업 ‘Found gesture’ 시리즈는 작가의 주변에서 발견한 일상적 사물들을 소재로 한다. 오종은 길에서 우연히 만난 돌, 화장 붓, 나무, 의자 등을 주운 다음 형태를 해체하거나 그 물성 자체를 조형적으로
활용하여 전시 공간의 물리적 조건과 어우러지는 새로운 오브제로 탈바꿈한다.
이때 사물의 물질적 특성도 주요한 요소로써 작품에 개입하지만, 동시에
작가는 보이지 않는 힘인 중력의 불안정한 성질을 설치에 이용한다. 가령, 무게를 가진 사물이 아래로 향하도록 이끄는 중력의 성질과 마찰하는 장치를 개입시켜 미묘한 긴장감과 조화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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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 〈Treeangle 2〉, 2012 ©오종
한편 오종의 또 다른 초기작 〈Treeangle〉(2012)은 야외 공원의 나무들을 대상으로 삼는 장소 특정적 작업이었다. 이
작업은 ‘자연’이라는 이미 존재하는 장소와 구조 안에서 어떠한
작업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나무의 속성 중 탄력에 주목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실을 나뭇가지 위에 팽팽하게 설치했다. 자세히 들여다 보았을 때 발견할 수 있는 〈Treeangle〉은
마치 기하학적인 선 드로잉처럼 나뭇가지의 유기적인 형태와 어우러지며 친숙한 장소에서의 비일상적인 경험을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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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 〈Line Sculpture #4〉, 2013 ©오종
조각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Line Sculpture’(2013-) 시리즈는 기존의 작업처럼 실, 나무 막대, 연필 선 등 단순한 재료를 이용해 3차원의 기하학적인 형태를 이룬다. 이러한 재료로 만들어진 조각의 가녀린 프레임은 전시 공간의 일부분을 시각적으로 구획하며 조각 내부의 응축된 공간을 임시적으로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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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 〈Line Sculpture #8〉, 2015 ©오종
또한 그리드와 같은 기하학적 패턴들이 차가운 느낌을 자아내는 동시에 작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디테일로써 미세하지만
따뜻한 느낌이 이중으로 더해진다. 이를 테면, 오종은 기계적인
공정을 거친 검은 실을 쓰는 대신에 일부러 흰 실을 써서 그 표면에 페인트나 목탄 가루를 손으로 칠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와 같이 수작업이 개입되는 이유에 대해 작가는 “미국 미니멀리즘의
진지하고 기계적인 공정을 환기하는 느낌을 지양”하며 “따뜻한
기하학적 작업”을 하고자 하는 작가의 오랜 바람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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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e Sculpture’ 시리즈에서는 선적인 요소가 두드러졌다면, ‘Folding Drawing’(2016-) 시리즈는 ‘면’에 대한 작가의 실험이 드러난다. 비교적 작은 규모로 제작된 ‘Folding Drawing’은 면의 ‘접힘’을 통해 작지만 깊은 차원을 탐구한다.
오종은 나무 패널을 기본 조형 재료로 사용해 다양한 접힘의 형태를 만든 다음 하얀색 페인트를 칠한다. 이와 함께 검은 색의 얇은 체인이나 와이어 등이 설치되며 마치 하얀색 도화지 위에 그려진 드로잉이 3차원으로 펼쳐진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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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살펴본 ‘Line Sculpture’와 ‘Folding Drawing’의 연장선에서 제작된 ‘Room
Drawing’(2016-) 시리즈는 주어진 전시 공간 전체를 대상으로 삼는다. 이 작업은
공간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때 오종은 공간이 지닌 건축적 요소뿐만 아니라 공간의
쓰임에 따른 작은 흔적들까지 살펴봄으로써 공간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작가는 공간과의 교감을 통해 그로부터 나지막한 ‘공명’을 감각한다고 표현한다. 이에 대한 작가의 반응으로 제작된 ‘Room Drawing’은 기존의 작업에서부터 쓰인 가녀리고 단순한 재료들로 구성된 3차원의 기하학적 설치로, 공간 전체를 부유하며 시선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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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m Drawing (found objects) #1〉(2018)의 경우에는 그의 초기작인 ‘Found gesture’ 시리즈처럼 작가가 우연히 발견한 사물들을 작업의 소재로 삼는다. 작가는 전시 기간 동안 길에서 수집한 나뭇가지, 자물쇠, 우산의 일부, 스프링, 바위, 체인, 꽃 등 사소한 사물들로 작품을 완성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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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완결된 형태로 제시되기 보다는 마치 하나의 이야기를 써 나가듯 매일 아침 작가가 주워 온 물건들로 작품을 채워 나가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작업이었다. 이에 따라 작품은 전시 기간 동안 매일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으며, 그러한 작업 과정 자체 또한 관객들이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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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Room Drawing’ 시리즈는 ‘Line Sculpture’ 시리즈처럼 선적인 요소로 공간을 가로지르며 드로잉하는 동시에 ‘Folding Drawing’ 시리즈처럼 면과 면이 접하면서 생긴 작고 응축된 공간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나아가 이 시리즈는 모서리, 창문,
기둥 등 본래 건물에 있던 건축적 요소와 반응하는 형태로 확장되어 보다 공간적인 차원의 감상으로 이끈다.
오종이 공간 곳곳에 그린 드로잉들을 따라가다 보면 시선의 방향에 따라 작업과 공간이 매번 다르게 보인다. 보는 시점에 따라 선이 되기도 하고, 면이 되기도 하면서 가변적인
공간 안에 들어온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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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공간에 내재한 보이지 않는 감각을 구축적인 조형으로 시각화하는 그의 작업에 최근 LED 조명이 새로운 재료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예로, 지난해 작가는 페리지갤러리에서의 개인전 《white》에서 ‘하얀색’을 소재로 하얀 빛과 천으로 이루어진 설치 작업 〈Light Drawing (room) #1〉(2024)을 선보였다.
하얀색의 반투명한 천은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지며 하얀 빛을 발산하는 LED 조명
설치들을 둘러싸며 공간을 나눈다. 동시에 그 경계에 빛이 더해져 다채로운 시각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이때 천의 겹침의 정도와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온전히 밝은 빛을 볼 수 있거나 전혀 안 보이기도 하며, 심지어는 빛이 여러 개로 나뉘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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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는 빛과 천이 만들어내는 반복적인 순환 구조다. 공간
안에서 빛은 고정되지 않고, 관객의 움직임과 시선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 이를 통해 오종은 관객에게 공간이 가진 리듬과 울림을 스스로 느끼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오종의 작업은 주어진 공간과 작가 사이의 대화를 거쳐 감각한 ‘공간의
울림’을 조형적으로 풀어나가는 데서 출발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의 작업은 관객으로 하여금 공간의 보이지 않는 어떠한 리듬 또는 울림을 감지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며 공간에 내재한 다양한 감각적 차원을 새롭게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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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장소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나의 작업에서
건축이 가진 ‘공간(空間)’의
울림을 감각하고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주어진 건축을 처음 마주할 때 그곳에서는 늘 나지막한
공명(共鳴, echo)이 감지되는데, 아마도 돌이나, 쇠 등의 건축 자재들이 가진 무게 때문이거나, 또는 건축이 가진 직선의 무거운 기하학적 구조, 거기에서 비롯된
묵직한 리듬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 울림은 장소를 온전히 점유하기 보다는, 공(空)으로서 그곳에 머무는 모든 것들을 감싸고 어루만지며 가볍고 부드럽게
진동한다. 나는 그 진동이 허락하는 자유 안에서 그 음(⾳)을 완성하듯이 작업을 해나간다.” (오종,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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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 작가 ©뉴시스
오종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학사를 졸업하고,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 순수미술과에서 석사를 마쳤다. 주요 개인전으로 《white》(페리지갤러리, 서울, 2024), 《Merestone》(Sabrina Amrani Gallery, 마드리드, 스페인, 2023), 《낮은음으로부터》(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2022),
《서로 선 면》(씨알콜렉티브, 서울, 2022), 《호 위에 선》(두산갤러리, 서울, 2021), 《주고받는 모서리》(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8) 등이
있다.
단체전으로는 《현장 속으로: 기억과 사건》(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24),
《오프사이트》(아트선재센터, 서울, 2023), 《극장》(부산시립미술관, 부산, 2023), 《제20회
송은미술대상전》(송은, 서울, 2020), 《Negative Space》(ZKM, 카를스루에, 독일,
2019) 등이 있다.
오종은 2022년 제33회
김세중청년조각상, 2021년 20회 송은미술대상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두산레지던시(뉴욕, 2021) 등에 입주 작가로 참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