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애(b. 1981)는 개인이 사회 안에서 경험하고 인식하게 되는 다층적인 틀, 또는 시스템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이어왔다. 작가는 자신과 주변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에서부터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합의 등에 수반하는 자기모순적인 모습들을 주목하며, 이러한 상황을 주어진 공간 안에 삼차원의 언어로 구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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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애의 작업은 작가 주변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의 초기작은 김민애라는 한 개인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자기반성으로부터
기인한다. 이를 테면, 그의 첫 번째 개인전 《익명풍경》(2008)에서는 앞으로 나아가려는 욕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거리를 유지하게 되는 작가 자신의 모순된 태도에
대한 성찰을 주변의 사물들을 이용한 조형물로써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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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영국 유학시절 제작했던
작업인 〈난문제〉(2010)의 경우에는 망원경의 형태를 차용하여 무언가를 갈구할 때 직면하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김민애는 렌즈 부분에 양면거울이 부착된 거대한 망원경을 제작했다. 그러한 구조로 인해 관객의 시야에는 외부의 풍경이 아닌 난반사된 주변의 혼란스러운 모습만이 펼쳐지게 된다.
망원경의 앞부분에는 작은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그 위에 올라가면
갑작스럽게 자신의 얼굴이 비춰지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예상과 어긋나는 상황들이 연속되는 이러한 구조는
자신이 추구하는 바에 도달하려 할 때 오히려 이로부터 멀어지게 되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를 직면하게 되는 상황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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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애, 〈모서리를 바르게 유지시키는 구조물〉, 2010 ©국립현대미술관
김민애는 이처럼 주변의 사물
또는 사물의 구조에 자신의 상황을 대입하는 작업과 더불어 작가의 주변에서 발견한 건축적 구조들에 주목했다. 예를
들어, 2010년작 〈모서리를 바르게 유지시키는 구조물〉은 건물 어디에나 존재하는 모서리라는
공간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불현듯 이 모서리라는 공간을 사회적인 규범과 틀에 자신을 맞추어야 하는 상황과 빗대어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작가는 마치 사회 안에서의 자기 자신처럼 빼도 전혀 건물에 지장을 주지 않는, 어떠한 기능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 않는 희한한 구조물을 모서리에 설치하기로 했다.
모서리에 설치된 구조물은 이러한 존재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작가는
구조물에 손잡이를 부착하여 뺐다 끼기를 반복할 수 있도록 하였고 이러한 과정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작업에 개입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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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구조물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젊은 모색 2013》에서 보다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전시에서
작가는 과천관 계단에 설치된 투박한 난간의 모습을 본 딴 구조물을 전시장 안으로 들여오는 설치 작업 〈상대적상관관계〉를 선보였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온 난간 형태의 구조물은 본래의 역할도 작품으로서의 역할도 아닌 중간의 상태로 존재한다. 가령, 작품들 사이에 군데군데 존재하며 때로는 관객들의 동선을 제안하기도
하고 방해할 수도 있는 애매모호한 역할을 한다.
7개의 난간들은 그 자체로 권위나 가치를 가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에서 작품으로 보이는 상태로 관객의 움직임에 개입하고 관계하며 기능적인 물건과 오브제 사이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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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김민애는 공간과 관계하는 작업들을 전개해오며 우리가 당연하게 인식해온 것들 또는 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는
제도 자체를 드러내거나 그 안에 존재하는 개인들을 조형물로 빗대어 보여줬다. 2014년 두산갤러리에서
선보인 〈검은, 분홍 공〉은 특정 장소에 임시적으로 개입하고 난 이후 맥락을 잃어버린 작품들을 재등장시키며
제도와 틀이 가진 견고함과 그것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민애는 이를 위해 두산갤러리 내부 공간에 또 다른 화이트큐브를 세웠다. 그리고
그 안에 과거 전시에서 파편적으로 선보였던 자신의 작품들과 분홍 빛의 무빙 라이트 두 개를 불규칙하게 배치했다.
관객은 내부가 거의 차단된 불투명한 벽으로 인해 오직 빛에 의해 드러나는 작품들의 그림자와 실루엣만을 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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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분홍 빛은 이 작업에서 ‘분홍 공’으로 존재하며 작품을 가시화하는 역할을 하지만 이 또한 임시적으로 공간을 머물 뿐 분명한 실체 없이 존재한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분홍 공, 전시에 초대되었지만 그 안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관객들, 맥락을 잃은 장소 특정적 작품들은 모두 갤러리 안에서 모순적인 상황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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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애 개인전, 《기러기》 전시 전경(아뜰리에 에르메스, 2018) ©에르메스 재단
2018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의 개인전 《기러기》에서는 작품이 전시장에 전시되며 ‘미술’로 규정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순에 대해 다룬다. 김민애는 미술을 담는 공간이 거꾸로 미술을 규정하는 틀로 둔갑하는 지점에서 작품 스스로 ‘미술’임을 증명하기 위해 알리바이를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비논리적이고 부조리한 것들이 감춰지는 현상에 주목했다. 전시는 이러한 제도와 관습 아래 미술이 스스로를 증명하는 일련의 상황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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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애 개인전, 《기러기》 전시 전경(아뜰리에 에르메스, 2018) ©에르메스 재단
작가는 전시장을 일종의 무빙 이미지 장치처럼 변화시켰다. 텅 빈 전시장에서는
푸드덕 거리는 새의 날갯짓 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려 퍼지다가 움직이는 조명에 따라 벽면의 거대한 새 형상이 드러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전시장 벽면에 희미하게 드러나는 (가짜) 주인공의 형상과 그에 화답하는 빛과 소리가 구현해내는 ‘전시’라는 결과물은 미술 안팎에서 미술을 규정해온, 미술에 부여해온 ‘그럴싸한’ 모습들을 보다 날 것으로 드러내려는 시도에 대한 은유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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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서 선보인 작업 〈1. 안녕하세요 2. Hello〉(2020)는
지난 작가의 작업들을 총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전시는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세 개의 레이어로
구성된다.
1차적인 레이어는 서울관 2전시실의
독특한 건축구조와 반응하는 설치물들로 이루어진다. 평상시에 지나치기 쉬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조형적으로는 인식되지 않는 ‘간과된’ 공간들이 전면에 드러나면서 작품의 역할을 하고, 이러한 공간들에
반응하여 형식적으로 대응되는 일련의 조각들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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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이러한 1차적인 레이어와 또 다시 반응하는 2차적인 레이어가 펼쳐진다. 여기서는 작가의 과거 전시에서 등장했던
요소들이 소환되어 기존 작업의 방법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역사적 레퍼런스로 기능하기도 한다.
이 두 레이어를 기반으로 펼쳐지는 마지막 레이어에서는 자립하고 있는 모양새의 조각 작품이 등장한다. 이 조각은 단독 좌대 위에서 자립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세 개의 레이어가 만들어 낸 다층적인 맥락들과
여러 반응들이 혼재된 상태로 존재한다.
서로 조응하거나 대치하는 조각들은 다분히 작위적인 설정을 드러내면서 거기서 오는 뒤틀림, 우연,오류 등이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조각적 상황극을 연출한다. 공간과 구조물, 작품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상황은 “조각이 주어진 환경이나 맥락과 떨어져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작가의
오랜 질문에서 출발하여, 나아가 “미술이 무엇인가?”라는 성찰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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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원앤제이 갤러리에서의 개인전 《거인》에서는 작가로서의 고민뿐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풀어냈다. 김민애는 주어진 전시 공간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삼으며 ‘믿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욕망’과
‘조각에 대한 질문’을 각 층에서 다른 방식으로 구현하고, 그것이 반영된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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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미켈란젤로나 로댕 등 대가들의 조각이나 현대 사회에서 대량생산되는 종교 성상 복제품의 형태가 합쳐진 듯한
정체 불분명한 형상을 만들고, 이를 복제하여 전시장 곳곳에 설치했다.
이는 미술도 종교처럼 어떠한 신념이 작동하는 과정이 반복되어 온 것임을 암시한다.
화려한 레이스 장식을 하고 좌대 위에 서있는 〈연속된 조각상/연속된
좌대〉(2023)는 마치 우상처럼 서있을지라도 복제가 가능하고 나아가 공간에 의해 머리가 잘릴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덩어리로 존재한다. 김민애는 《거인》을 통해 늘 어딘 가에 기댈 존재를 만들어내 소망하거나
보이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애쓰는 등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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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민애는 지난해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IMA Picks 2024》에서는
일민미술관이 위치한 광화문이라는 장소가 지닌 맥락을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공간 안으로 소환했다. 전시는
‘서커스’라는 단어가 가진 다층적인 뜻(곡예, 원형, 광장, 소란함, 공연 시설 등)을
근대성과 동시대성이 혼재된 미술관 일대를 조망하는 시선과 엮는다.
작가는 시대의 변천이 이루어진 현장이자 다양한 목소리들이 오고 갔던 광화문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전시장 안에 고궁, 식민주의적 양식, 고층 빌딩 등이 뒤섞인 광화문 풍경을 불완전한
기호로 소환했다. 가령, 건물 옥상의 사물을 조각으로 전환해
임시적인 추상성을 부여한 작품들, 한국에서 유행한 방수 도료의 마감을 연상케 하는 바닥 설치 등은 광화문
도심의 풍경과 인상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전망대처럼 놓인 〈관람 혹은 관망〉(2024)은 관객이
직접 밟고 올라가 관망자처럼 전시 공간 속 불쑥 개입한 현실의 표식들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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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다른 공간에서는 전시가 끝난 후 보관되어온 구작을 실내 장식으로 재조형한다. 가령, 《기러기》(아뜰리에
에르메스, 2018)에 놓였던 아홉 개의 새 부조를 한 데 뭉친 조각으로 만들거나, 《거인》(원앤제이 갤러리,
2023)의 좌대는 거울로 마감한 탁자가 되었다. 이들은 지난 개인전을 지탱한 개념으로부터
분리되어 새로운 맥락 안에서 다시금 반응한다.
이처럼 김민애는 자기 자신에 대한 내부적 시선에서 출발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적 시스템이나 미술제도 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성찰하며 그 안에서 발생하는 오류나 모순의 지점들을 조형적으로 드러내 왔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주어진 물리적 조건과 관객의 신체를 경유하며 어떠한 맥락과 호흡을 만드는가를 관찰함으로써 완성된다.
“내게 익숙한 것, 혹은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한 의심을 놓지 않으려 계속 노력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김민애, 퍼블릭아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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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애는 서울대학교 조소과 학사 및 동대학원 석사를 졸업하였다. 영국
왕립 예술대학 조소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순수미술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거인》(원앤제이 갤러리,
2023); 《기러기》(아뜰리에 에르메스, 2018); 《조건부
드로잉》(두산갤러리 뉴욕, 2015); 《검은, 분홍 공》(두산갤러리 서울,
2014) 등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주요 단체전으로는 일민미술관, 서울 (2024); 김세중 미술관, 서울
(2021);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0,
2017); 서울시립미술관,서울 (2018); 아르코미술관, 서울 (2018); 아트선재센터,
서울 (2018);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8, 2017) 등이 있다.
2020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2020’의 후원 작가로 선정된 바 있으며,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주요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
- 국립현대미술관, MMCA 작가와의 대화 | 김민애 작가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MMCA), MMCA Artist Talk | Kim Minae
- 두산아트센터, 검은, 분홍 공 (DOOSAN Art Center, Black, Pink Balls)
- 아뜰리에 에르메스, 기러기 (Atelier Hermès, GIROGI)
-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0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MMCA), Korea Artist Prize 2020)
- 일민미술관, IMA Picks 2024 (Ilmin Museum of Art, IMA Picks 2024)
- 원앤제이 갤러리, 거인 (ONE AND J. Gallery, Giant)
- 퍼블릭아트, 김민애 (Public Art, Kim Min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