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계와 미술 시장은 2000년대
이후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이사장
김영석)와 아트프라이스(대표 고윤정)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4년간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은 1830배 성장을 보였으며, 2022년
기준 전체 낙찰총액은 약 2조5354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첫 미술품 경매사가 생긴 1998년의 약 1억8000만원 규모였던 경매시장 규모가 최대 규모를 보인 2021년 약 3294억까지 성장한 것이다.
지난 24년간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변동 추이를 1998년(약 1.8억원)을 시작점으로 살펴볼 때,
고점은 2007년(약 1859억원), 2018년(약 2130억원), 2021년(약 3257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반면
저점은 2009년(약
659억원), 2013년(약 724억원), 2020(약 1163억원), 2022년(약 2361억원) 등이었다.
이렇게 외연을 확장해 가면서 세계 미술시장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야
하니 그들의 유명 아트페어도 국내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한국 작가들이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으며
세계 미술계에서의 K-아트의 위상은 과거보다 더욱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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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
미술계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구태적이며 고질적인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옥션은 과거 이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운영방식에는 변함이 없다. 한결같은 것이 때론 좋을 수 있으나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의 새로운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곧 도태요 죽음을
뜻한다.
과거에는 경매나 아트페어가 이미 시장에 나온 작품들을 순환시키는 2차 시장의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면, 이제는 시대가
급변하여 경매나 아트페어를 통해서도 새로운 작가가 데뷔하고 스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미술계가
아직은 보수적이라 뮤지엄을 통해서 좋은 작가들이 선별되고 등장하는 것이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제는 유명
뮤지엄을 통해 성장한 작가도 시장에서 외면받으면 그 미래와 생계가 불분명해지는 바야흐로 ‘대 역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국의 옥션, 오늘의 현실
작년 말 올해 초 한국을 대표하는 경매회사들의 출품작과 낙찰결과를 보면
실망을 넘어 자괴감이 들 정도이다. 경매 참여 작품은 작년에 본 것인지 올 해 본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같은 작가들의 유사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낙찰 결과도 그래서 별 변수없이 대부분 예측 가능하고 대부분
그대로 맞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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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매 시장은 소수 특정 작가의 작품이 반복적으로 출품되는 반복적이며
폐쇄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신진 작가들이 시장에 진입할 기회는 고사하고, 실력 있는 중견 작가들조차도 경매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기존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수준낮은 작품이 이름값을 통하여 반복적으로 출품되며, 소위 시장에서만 인기있다는 작가들의
‘시장용 작품’이 주를 이룬다.
그 결과, 이 작품의 구입자들도
자신에게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만을 사고 팔기를 반복하면서 경매시장의 올가미
같은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옥션에 출품되는 작가들이 한정되고 소수에 머물면, 마치 동종 교배를 하면 유전적 결함으로 질병에 걸려 멸종하듯이, 조금만
어려운 시기가 오거나 외부 환경이 변하게 되면 경매 시장은 일회성 장터의 땡처리 시장과 같은 역할만을 반복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현실의 상황이 이러한데 하물며 시장이 좋아 해외 진출이라도 할라치면 과연
그 경쟁력이 있겠는가 싶다.
한국의 옥션, 그 침체의 근본
원인
한국 경매 시장의 부진은 단순한 경제적 요인 때문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경매사들의 운영 방식과 작품 선정 기준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아직도 구시대적
방식으로 작가와 작품을 선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수 시장 작가 중심의 폐쇄적 구조
한국 경매 시장은 특정 작가들의 작품만을 지속적으로 유통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미 옥션에서 판매된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유사한 작품 경향이 끊임없이 반복 출품 되기 때문에, 새로운 작가 혹은 새로운 컬렉터를 개척하는 경우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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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크리스티 홍콩 하반기 경매가 27일 홍콩 컨벤션센터(HKCEC)에서 열린 가운데
20&21세기 이브닝 경매 중 경매사가 이우환의 '점으로부터' 응찰자를 기다리고 있다.
350만 홍콩달러(약 5억 8천만원)에 입찰을 시작했으나 유찰되었다. / ©한국일보
‘작품 구입자’들 역시 대부분이
작품의 가치를 이해하고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의 ‘이름값’만을 따라가고 그것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미술시장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들 역시 이러한 옥션의 낙후된 습성에 따라 움직이니 더욱 그럴수 밖에 없고 이러한
구습의 결과는 지금과 같이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때 더욱 더 최악의 상황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옥션에 출품되는 작품들은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 해도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새로운 미적 시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는 작품성이 뛰어난 작가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들을 섭외하여
출품할 ‘능력’이나 용기를 갖춘 스페셜리스트들이 없고 미술품을
단지 많이 판매하려는 ‘세일즈 피플’들의 집합체인 것이다. 우리나라 옥션의 현실이 그렇다.
전문성 부족과 단기적 수익 중심 운영
모든 시장의 속성이 그렇듯이 돈이 되면 다 파는 것이 자본주의이자 상업주의다. 세계적인 경매사들도 마찬가지로 돈이 된다면 자본가들을 현혹하여 가치가 없는 작품도 적당히 얼버무려 속여파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경매를 보면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반영하고 시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일정 이상 해 나가고 있다. 그들의 경매 카탈로그를 보면 출품작의 수준이 동시대 미술의 작은 미술사가
수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매 시장을 보라. 매일
나오는 작가들이 그밥에 그나물이다. 우리나라 옥션은 단기적인 낙찰률과 판매 실적에만 집중하며, 장기적인 시장 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옥션의 수준이 작품 감정, 가치
평가, 시장 분석 능력도 없는 인력이 대부분이며, 이러한
상태에서 단순한 작품의 유통 역할에 머물러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작품 구입자’들 역시 이러한
시장 구조 속에서 작품의 가치를 발견하기보다는, 옥션 시장에서 유통되는 작가들의 작품만을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른다. 자신들이
구입하는 작품이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자신이 구입하는 작품의 가치여부에 대한 판단을 하지
못하니 이러한 현상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한국 경매, 그 개혁의 방향
이 상태로는 한국 미술 시장의 지속적인 발전이나 세계진출은 더욱 더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단순한 작품 판매를 넘어, 경매
시장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유명 작가의 이름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반영한 다양한 작품이 출품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장 작가들이 아니라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경매 시장이 미술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다양한 스타일과 시대적
감각을 반영한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출품될 수 있어야 한다. 미술계에서 인정받는 다양한 작가들에게 문을
열어주고, 보다 다양한 작품이 출품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매사들의 전문성 강화 및 시스템 개선
또한 작품 감정과 시장 분석 역량을 갖춘 전문가를 양성하고, 신뢰할 수 있는 감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컬렉터들이
보다 다양한 작품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한국 미술 시장이 단순한 투자 대상이 아닌 예술적
가치가 존중되는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 옥션, 이제 더 이상
변화를 늦출 수는 없다.
최근 국내외 경제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옥션 시장의 부진을 단순한 경기 침체 탓으로 돌리는 것은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다. 미술 시장에 대한 중장기적인 통계를 보면, 경기 변동과 관계없이 미술품의 투자 수익률은 주식투자 보다 항상 높게 유지되어 왔다. 다만, 한국에서는 미술 시장이
단기적 투기 수단으로 변질되었고, 이에 따라 작품의 질과 가치에 대한 고려 없이 무분별한 거래가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비정상적인 구조가 오늘날 한국 옥션 시장의 신뢰 하락을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이다.
우리나라 경매 시장의 운영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
미술시장은 결국 일본처럼 될 것이다.
일본에는 ‘미술계’ 는 없고 ‘미술’만 있다.
이 말은 더 이상 일본에는 동시대 미술의 생산자로서의 역할은 없으며, 아시아에서 이러한 역할을 해나갈 수 있는 나라는 현재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한국에는 아직 생산자와 생산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작가의 수와 역량이
살아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 상태로 십 년만 더 지난다면 우리나라도 이제 일본처럼 동시대
미술의 생산자의 역할이 더 이상 불가능한 ‘미술 소비자’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자국의 문화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냐. 자국의 문화를 생산해내지 못하는 국가는 결국 남의 정신을 수입할 수 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 문화 속국이나 정신적
노예가 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일본을 보면 그 결과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이제 옥션이 살아나려면 변화를 넘어 변혁이 필수적이다. 더이상 미룰 시간이 없다.
경매 시장이 단순한 작품 거래소가 아니라, 미술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중요한 생산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야 하며 이를 위해 경매사들은 작품 선정 방식을
혁신하고,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작품 구입자’들은 진정한 컬렉터로 거듭나야만 한다. 그래야만 역설적으로 돈도 벌 수 있고 명예도 고급지게 높일 수 있다.
한국의 옥션, 정말로 근본적인
변화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상황이 어려운 지금이야 말로 오히려 한국의 옥션들이 새롭게 변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한국 옥션의 미래는 없다. 나아가 한국 미술시장의 미래도 없다.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