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볼수록 멀어지는 것들
 
마리나 레인가츠(Marina Rheingantz)의 《Míope》가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10월 24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레인가츠의 한국 첫 개인전으로, 지난 1년 동안 상파울루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신작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전시 제목 《Míope》는 포르투갈어로 ‘근시’를 뜻한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번 전시는 가까이에서 보는 것과 멀리서 보는 것 사이에서 이미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준다. 레인가츠에게 풍경은 고정된 장면이 아니라 시선의 거리와 기억, 물질의 상태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이미지다.


화이트큐브 서울 전시전경 / 사진: White Cube Seoul

불완전한 시선과 변화하는 풍경
 
레인가츠의 풍경은 특정한 장소나 시간을 명확하게 지시하지 않는다. 브라질 농촌 풍경에 대한 기억, 자신이 축적한 사진, 회화와 직물에서 가져온 시각적 참조가 서로 겹치며 하나의 가변적인 화면을 만든다.
 
실제로 보았던 장면과 기억 속에 남은 이미지, 자연에 대한 감각이 중첩되면서 그의 풍경은 구체적인 장소의 재현에서 벗어난다.


마리나 레인가츠, 〈Míope〉, 2026, 캔버스에 유채, 210 x 300 cm / 사진: White Cube Seoul

전시 제목과 같은 작품 〈Míope〉(2026)는 이러한 작업 방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식물이나 지형을 연상시키는 형태들은 화면 위에서 선명해졌다가 다시 흐려지고, 일부는 서로 중첩되며 이중 혹은 삼중으로 보이는 듯한 효과를 만든다. 수평선이나 고정된 소실점이 사라진 화면에서 관객은 거리와 크기를 계속해서 다시 판단하게 된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해체되는 이미지
 
레인가츠의 회화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정확히 확인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본다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조건적인지를 경험하게 하는 데 가깝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풍경처럼 읽히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화면은 붓질과 얼룩, 물감의 층과 흔적으로 분해된다. 더 가까이 본다고 해서 더 많은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지 전체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그의 회화는 구축과 제거의 과정을 반복한다. 물감을 여러 번 덧바르고 지우며, 희석된 안료가 흘러내리도록 두거나 표면에 물질을 축적한다. 그 결과 화면은 풍경을 묘사하는 평면이라기보다 침식과 퇴적, 생성과 소멸이 반복되는 하나의 지형처럼 변한다.






마리나 레인가츠, 〈Bromélia Caranguejo〉, 캔버스에 유채, 190 x 252.5 cm

위: 작품 전체 이미지, 아래: 작품 부분 디테일 / 사진: White Cube Seoul

구상과 추상의 경계
 
〈Bromélia Caranguejo〉에서는 전경처럼 보이는 나뭇가지가 등장하지만, 그 뒤의 녹색과 미색 평면은 전통적인 원근법에 따라 자연스럽게 멀어지지 않는다.
 
〈Periquita〉, 〈Caracol〉, 〈Taturana〉 같은 작은 작품에서는 두꺼운 물감과 얼룩, 오일스틱의 흔적이 오래된 프레스코나 벗겨진 벽지 같은 표면을 만든다.
 
작품 제목에는 브라질의 동식물에서 가져온 구체적인 이름이 남아 있지만, 화면은 끝까지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 머문다.
 
이러한 방식은 레인가츠의 풍경이 특정 장소를 재현하기 위한 이미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한다. 그에게 풍경은 보고, 기억하고, 잊고, 다시 바라보는 과정 속에서 계속 변화하는 이미지다.


마리나 레인가츠 / 사진: Denise Andrade, 2022

작가소개
 
마리나 레인가츠는 1983년 브라질 아라라콰라에서 태어나 현재 상파울루에서 활동하고 있다. 브라질의 자연과 농촌 풍경에 대한 기억을 기반으로 회화와 직물 작업을 발전시켜왔으며, 풍경이라는 전통적인 장르를 기억과 물질, 지각의 영역으로 확장해왔다.
 
최근에는 ICA Milano, Musée des Beaux-Arts de Nîmes, White Cube London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2024년 제15회 광주비엔날레에도 참여했다. 작품은 파리 퐁피두센터,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 런던 테이트, 암스테르담 스테델릭미술관, LACMA, 피노 컬렉션 등 주요 국제 기관과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White Cube
 
화이트 큐브는 1993년 런던에서 출발한 국제 현대미술 갤러리로, 영국 현대미술의 국제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후 런던을 기반으로 홍콩, 파리, 뉴욕, 서울 등으로 공간을 확장하며 국제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화이트 큐브 서울은 2023년 개관했다. 강남구 도산공원 인근에 위치한 300㎡ 이상의 공간으로 전시장, 프라이빗 뷰잉룸, 오피스 등을 갖추고 있으며, 홍콩에 이어 화이트 큐브가 아시아에 마련한 두 번째 상설 공간이다.
 
 
 
전시정보
 
전시: 마리나 레인가츠 《Míope》
기간: 2026년 9월 1일–10월 24일
장소: 화이트 큐브 서울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5길 6)
웹사이트: 화이트 큐브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