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무대 디자이너이자 시각예술가인 에스 데블린(Es Devlin, b. 1971)의 국내 첫 개인전 《세 번째 시: 에스 데블린, 다시 집으로(3rd Poem: Es Devlin, Come Home Again)》가 2026년 8월 20일부터 2027년 1월 17일까지 서울 북촌 푸투라서울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푸투라서울의 장기 전시 프로그램 ‘백 개의 시(100 POEMS)’의 세 번째 장이다. 푸투라서울은 각각의 전시를 한 편의 ‘시’로, 참여 작가를 그 시를 쓰는 ‘시인’으로 바라보며 동시대의 주요 문제를 감각적인 공간 경험으로 풀어내고 있다.
 
앞선 레픽 아나돌과 안소니 맥콜의 전시가 데이터와 빛, 관객의 신체를 매개로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을 탐구했다면, 이번 전시는 에스 데블린이 지난 30여 년간 발전시켜온 공간과 관객의 관계에 주목한다.
 
에스 데블린은 오페라와 연극 무대에서 작업을 시작해 비욘세, 아델, U2 등 세계적인 뮤지션의 공연과 2012년 런던올림픽 폐막식, 2020 두바이 엑스포 영국관 등을 설계한 바 있다.


2020 두바이 엑스포 영국관 〈Poem Pavilion〉 / 사진: 알린 콘스탄틴, 이미지 제공: 에스 데블린

2016년 이후에는 공연 무대에서 축적한 공간 언어를 전시공간과 공공장소로 확장해왔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작업의 흐름을 바탕으로 책과 드로잉, 설치, 빛과 소리, 관객의 참여가 결합한 동시대미술을 선보인다.
 
 
 
관객이 만드는 공간
 
데블린은 같은 장소와 시간을 공유하는 관객을 ‘일시적 사회(Temporary Society)’라고 설명한다. 서로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하나의 공연이나 작품을 함께 경험하는 동안 짧은 공동체가 형성된다는 의미다.
 
그의 작업에서 공간은 작품을 담는 배경이 아니라 관객의 시선과 움직임을 조직하는 매체다. 공연 무대가 수만 명의 관객을 하나의 장면에 집중시켰다면, 전시공간은 관객이 직접 이동하고 참여하면서 자신과 타인, 주변 환경의 관계를 발견하도록 만든다.


〈스크린쉐어〉, 2024, 종이, 프로젝션영상, 사운드, 11.6 x 3.6 m. 종이협찬: 한솔제지 / 사진: 푸투라서울

〈스크린쉐어(Screenshare)〉는 데블린이 지난 30여 년간 축적한 스케치와 작업 기록을 거대한 종이 스크린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드로잉과 메모, 협업의 과정이 영상과 함께 펼쳐지고, 상영이 끝나면 관객은 스크린을 구성하는 스케치 가운데 한 장을 가져갈 수 있다.
 
전시가 진행될수록 하나의 스크린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관객들의 일상으로 이동한다. 작가가 남긴 기록을 관객과 나누는 이러한 방식은 작품을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변화하고 확산되는 관계로 만든다.


〈인피니트 라이브러리(Infinite Library)〉 설치 전경, 2026 / 사진: 푸투라서울

책을 통과하는 경험
 
전시는 〈인피니트 라이브러리(Infinite Library)〉에서 시작한다. 책등이 보이지 않도록 거꾸로 꽂힌 중고 서적 위로 데블린의 드로잉과 영상이 투사되고, 책과 독서에 관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영상이 진행되면 서가 중앙이 열리고 관객은 책 사이의 통로를 지나 다음 작품으로 이동한다.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과 삶을 만나는 독서의 경험이 전시장 안에서 실제 공간을 통과하는 신체적 경험으로 전환되는 구성이다.


〈미러 메이즈(Mirror Maze)〉, 2026, 거울, 사운드, LED, 가변 크기 / 사진: 푸투라서울

거울과 빛이 만드는 공간
 
이어지는 〈미러 메이즈(Mirror Maze)〉에서는 천장과 벽을 이루는 다면 거울이 관객의 모습을 여러 방향으로 분할하고 반복한다.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야 안으로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거울은 자신을 확인하는 장치인 동시에 같은 공간에 있는 타인의 존재를 발견하게 만드는 매체가 된다. 공연장에서 공간을 확장하고 시선을 집중시키는 데 사용됐던 데블린의 거울은 전시장 안에서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인식하게 하는 설치 작품으로 변화한다.
 
정원을 향해 열린 공간에 설치된 〈라인 오브 라이트(Line of Light)〉는 작가가 잠에서 깨어 주변 공간보다 먼저 한 줄기의 빛을 인식했던 경험에서 출발한다. 스트로브 조명과 사운드, 물로 구성된 작품은 전시장 내부의 인공적인 빛과 창밖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을 하나의 풍경으로 연결한다.
 
빛은 물에 반사되고 자연광은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푸투라서울의 건축과 정원, 관객의 이동이 작품과 맞물리면서 공간은 고정된 장면이 아니라 빛과 시간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환경으로 작동한다.


〈다시 집으로(Come Home Again)〉, 2026, 도색합판, 사운드, LED, 5 x 3m / 사진: 푸투라서울

인간과 다른 생명이 공유하는 집
 
전시의 중심 작품인 〈다시 집으로(Come Home Again)〉는 2022년 런던 테이트 모던 앞에서 선보인 동명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서울의 환경에 맞게 새롭게 제작한 작품이다.
 
런던에서 발표된 원작은 멸종위기에 놓인 243종의 생물을 데블린이 직접 그린 드로잉과 디아스포라 합창단의 목소리로 구성됐다. 서울 전시에서는 런던의 생물 이미지에 서울에서 살아가는 생물종을 추가해 두 도시의 생명을 하나의 풍경으로 연결한다.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각예술가이자 무대 디자이너인 에스 데블린(Es Devlin) / 사진: 푸투라서울

여기에서 ‘집’은 개인의 거주 공간을 넘어 인간과 다른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환경을 의미한다.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이다. 인간 역시 다른 생명과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의 생태환경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이 드로잉과 소리, 빛과 공간을 통해 제시된다.

에스 데블린이 공간을 예술로 만드는 방식의 중심에는 같은 공간에 모인 존재들이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관계를 형성하는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다. 무대에서 시작된 그의 작업은 전시장과 도시로 이동하면서 공간을 하나의 시각적 장면에서 타인과 공동체, 생태환경을 경험하는 장소로 변화시키고 있다.
 
 
 
전시 정보
 
전시명: 《세 번째 시: 에스 데블린, 다시 집으로》
작가: 에스 데블린
전시 기간: 2026년 8월 20일–2027년 1월 17일
전시장: 푸투라서울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61
웹사이트: www.futuraseoul.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