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먼 장소
 
프리드리히 쿠나스(Friedrich Kunath)의 《The Nearest Faraway Place》가 10월 24일까지 페이스 서울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쿠나스가 2025년 페이스 갤러리에 합류한 이후 선보이는 두 번째 개인전이자, 페이스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개인전이다.
 
전시는 장소와 이동, 그리움과 소속의 감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제목인 《The Nearest Faraway Place》는 가까움과 멂이라는 서로 반대되는 상태를 하나의 문장 안에 함께 놓는다. ‘가장 가까운 먼 곳’이라는 역설은 쿠나스의 작업 전반을 관통해온 거리와 기억, 이동과 귀환의 감각을 압축한다.


프리드리히 쿠나스의 《The Nearest Faraway Place》 전시모습 / 사진: 페이스서울 홈페이지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풍경
 
쿠나스의 풍경에는 길과 산, 수평선과 석양, 자동차와 작은 인물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도로는 모퉁이나 언덕 뒤로 사라지고, 인물들은 자신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본다. 모든 것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목적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가 다루는 거리는 단순한 지리적 거리가 아니다. 쿠나스는 이번 서울 전시를 앞두고 때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지만, 전시장에 놓인 자신의 작품과 함께 있을 때는 오래된 친구들과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집에 돌아온 듯한 감각을 느낀다고 말했다.


프리드리히 쿠나스의 《The Nearest Faraway Place》 전시모습 / 사진: 페이스서울 홈페이지

이동과 기억 속에서 만들어지는 ‘집’
 
그의 삶 자체가 지속적인 이동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이러한 작업의 배경이 된다. 그는 수십 차례 거처를 옮긴 뒤 이사 횟수를 세는 것조차 그만두었고, 현재도 유럽과 로스앤젤레스 등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그래서 쿠나스에게 ‘집’은 특정한 주소라기보다 음악과 영화, 문학과 친구, 그리고 기억이 잠시 하나의 장소를 만들어내는 상태에 가깝다.
 
이번 전시의 풍경에서도 길은 계속 이어지지만 목적지는 분명하지 않다. 인물들은 이동하고 있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멈춰 있고, 수평선은 도달할 수 있는 장소라기보다 끊임없이 멀어지는 이미지처럼 존재한다.
 
 
 
아름다움이라는 ‘트로이 목마’
 
쿠나스의 회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러한 정서적 불안을 매우 아름다운 이미지 안에 배치한다는 데 있다.
 
석양과 산, 길과 빛은 낭만적이고 영화적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쿠나스는 이러한 풍경을 관객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이는 하나의 장치로 사용한다.
 
그는 아름다운 석양과 풍경을 ‘트로이 목마’에 비유하며, 그 이미지 안으로 관객을 끌어들인 뒤 외로움과 불안, 존재에 관한 더 깊은 감정과 마주하게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프리드리히 쿠나스의 《The Nearest Faraway Place》 전시모습 / 사진: 페이스서울 홈페이지

독일 낭만주의와 미국 대중문화의 교차
 
쿠나스의 작업에는 독일 낭만주의와 미국 대중문화가 동시에 존재한다. 독일 낭만주의 회화와 허드슨 리버 스쿨의 풍경, 음악과 영화, 개인적인 기억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자유롭게 결합된다.
 
아이러니와 진지함, 비극과 코미디가 한 화면 안에서 공존하고, 사랑과 절망, 희망과 두려움, 멜랑콜리와 그리움이 서로 교차한다.
 
이 때문에 쿠나스의 풍경은 실제 장소를 재현하는 이미지에서 점차 벗어난다.
 
 
 
심리적 거리로서의 풍경
 
그의 풍경은 현재의 나와 내가 도달하고 싶다고 느끼는 장소 사이에 형성되는 심리적 공간에 가깝다.
 
쿠나스의 작업에서 반복해서 돌아오는 질문도 결국 하나의 장소를 향한다.
 
집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그 장소는 반드시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곳이어야 하는가.
 
쿠나스의 풍경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는 때로 가장 멀리 있는 장소가 된다.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보다 기억과 감정 속에서 만들어진 장소가 더 가까울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쿠나스 / 사진: Michael Schmelling, 사진: 페이스서울 홈페이지

작가소개
 
프리드리히 쿠나스는 1974년 독일 켐니츠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8년 브라운슈바이크 예술대학을 졸업했으며 회화, 드로잉, 조각, 설치, 영상 등 여러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해왔다.
 
그의 작업은 독일 낭만주의와 19세기 풍경화, 미국 대중문화, 음악과 영화,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을 자유롭게 결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멜랑콜리와 유머, 진지함과 아이러니를 한 화면 안에 함께 배치하면서 감정과 기억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최근에는 말라가 Centro de Arte Contemporáneo, 베를린 KINDL, 라이프치히 G2 Kunsthalle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2025년 페이스 갤러리에 합류했다. 같은 해 뉴욕 페이스에서 《Aimless Love》를 통해 갤러리와의 첫 개인전을 선보였고, 이번 서울 전시는 그 이후 이어지는 새로운 작업의 흐름을 보여준다.
 
 
 
Pace Gallery
 
페이스 갤러리는 1960년 미국에서 설립된 국제 현대미술 갤러리로, 20세기와 21세기의 주요 작가들과 장기간 협업하며 성장해왔다. 현재 미국과 유럽, 아시아의 여러 도시에 공간을 운영하며 현대미술과 전후 미술을 아우르는 국제적인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다.
 
페이스는 2017년 서울에 상설 공간을 열며 한국에 비교적 일찍 진출한 국제 갤러리 가운데 하나가 됐다. 2021년 한남동 르베이지 빌딩 2·3층으로 확장 이전했고, 이후 1층 전시장과 야외 공간을 추가하면서 서울 거점을 확대했다.
 
 
 
전시정보
 
전시: 프리드리히 쿠나스 《The Nearest Faraway Place》
기간: 2026년 9월 1일–10월 24일
장소: 페이스 갤러리 서울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67)
웹사이트: 페이스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