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의 경계를 넘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동시대 조각의 선구자인 권오상은 그의 대표적인 ‘사진조각(photo-sculpture)’ 기법을 통해 대중문화의 시각적
언어를 해체하고 탐구한다.
그는 사진과 삼차원 조형을 결합함으로써 재현(representation)의 개념을 질문하며, 조각이 단순한 물리적
형상이 아니라 다층적이고 유동적인 매체임을 드러낸다. 그의 2015년작
<무제: G-Dragon, 이름이 비워진 자리>는 서울시립미술관의 《PEACEMINUSONE_Beyond
the Stage》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었으며, 약 10년 후 지드래곤이 발표한 앨범 “위버멘쉬”와 개념적으로 맞닿아 있다. 이러한 사상적 동시성은 더욱 면밀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

<무제: G-Dragon, 이름이 비워진 자리,> 2015, C-프린트, 혼합 매체, 가변 크기,
《PEACEMINUSONE_Beyond the Stage》에서 전시,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이미지 제공: 작가 및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이미지를 해체하다: 권오상의
하이브리드 조각
권오상의 작업은 조각이 고정된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다층적이고 조합적인
구조를 띠는 개념임을 보여준다. 그의 사진조각은 조각과 사진의 경계를 허물며 현대적 정체성의
유동성과 분절성을 반영한다.
<무제: G-Dragon, 이름이 비워진 자리>에서 권오상은 지드래곤이라는 문화적 아이콘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그의 본질이 지속적인 변화와 자기 창조 속에서 형성됨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스타의 이미지가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만들어지고, 증폭되며, 왜곡되는지를
시각적으로 탐색한다.

재해석된 “위버멘쉬”
프리드리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위버멘쉬(Übermensch)” 개념을 제시하며, 기존의 도덕과 가치를 초월하여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를 설명했다.
권오상의 조각 속 지드래곤은 바로 그러한 인물로 형상화된다. 그는 단순한 K-pop 스타가 아니라 음악, 패션, 동시대 문화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존재다.

권오상의 작품은 전통적인 성 미카엘 대천사가 악마를 무찌르는 도상을 차용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지드래곤의 얼굴이 천사와 악마 양측 모두에 배치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작품은 선과 악, 영웅과 적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를 전복하며, 현대적 스타가 어떻게 숭배와 비판의 대상이 되며, 미디어 속에서
끊임없이 구축되고 해체되는지를 시각적으로 상징한다.

(R) <독일 함부르크의 성 미카엘 대천사 조각상>
거울 속 이미지: 반사와 변주
<무제: G-Dragon, 이름이 비워진 자리>에서 또 하나의 핵심 요소는 거울이다.
이 거울은 관람자의 위치에 따라 다른 형태의 지드래곤을 보여주며, 정체성이 단일하고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다층적이고 변화하는 개념임을 강조한다. 관람자는 자신이 보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하게 되며, 이는 자아는 외부의
시선과 내면의 형성 과정 속에서 구성되는가? 라는
근본적인 존재론적 질문을 제기한다.
또한, 거울은 단순한 반사
장치가 아니라 관람자의 역할을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포함시키는 장치로 작동한다.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 자신도 반사되며, 이를 통해 권오상은 이미지 소비와 의미 형성 과정에서 관람자의 역할을
탐구하고 있다. 결국, 이 작업은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흐리게
만든다.
이분법을 넘어: 권오상과 포스트-아이덴티티 시대
권오상은 지드래곤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예술적 범주를 넘나드는 작가다. 그의 조각은 순수미술과 대중문화, 고급 미학과 미디어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특정한 정체성에 고정되지 않는 유동적인 예술적 태도를 보여준다. 제작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무제: G-Dragon, 이름이 비워진 자리>는 현대적 정체성, 미디어의 왜곡, 그리고 수행적 자아(performativity)에 대한 논의를 선도하고 있다.
지드래곤의 “위버멘쉬” 앨범이 기존의 틀을 넘어서는 초월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권오상의 작업은 그러한 초월이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임을 시각적으로 제시한다. “위버멘쉬”는 단순한 이상적 존재가 아니라, 자기 해체와 재구축의 연속 속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다.
이러한 점에서 권오상의 조각 속 지드래곤은 단순한 스타가 아니라, 21세기의 급변하는 패러다임 속에서 정체성을 구성하고 재해석하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의 작업은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인식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기술과 문화, 미디어 속에서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탐색하는 도구가 된다. <무제: G-Dragon, 이름이 비워진 자리>는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라, 현대 정체성의 역학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강력한 비평적 장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