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이민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1902년 인천항이다. 일제강점기 때 간도와 연해주,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로 노동 이민을 한 역사를 시작으로 6·25전쟁 이후 전쟁고아 입양, 그리고 1962년 해외이주법 제정 이후 경제 성장을 위해 독일로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 베트남과 중동으로 파견된 기술자 등 우리나라는 격변의 역사와 조응하며 이민 역사를 써 내려갔다.
인천시에서는 세계 한인의 날(10월 5일) 전후로 한민족의 이민 역사 1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올해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시각 예술 레지던시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복합예술공간인 인천아트플랫폼도 여기에 동참해 기획전으로 “코리안 디아스포라 한지로 접은 비행기(Korean Diaspora Ricepaper Airplane)”전을 9월 30일부터 11월 27일까지 개최하고 있다. 전시 제목은 하와이 이민 3세인 게리 팩(Gary Pak)의 영어 소설 “A Ricepaper Airplane”의 제목에서 영감을 얻었다.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용어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분산(分散) 또는 이산(離散)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원래 팔레스타인 밖에 거주하면서도 종교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던 유대인과 그들의 거주지를 뜻했다. 오늘날에는 그 의미가 확장되어 모국 밖으로 추방된 소수의 집단 공동체나 정치적 난민, 이민자, 소수 인종 등과 같은 다양한 범주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과거에는 타율적으로 이산과 이주가 이뤄졌다면, 특히 2000년대 이후에는 개인과 집단의 자유 의지에 의한 이주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그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번 기획전은 경희대 미술대 교수를 역임한 이태호 기획자가 전시예술감독을 맡았다. 전시에서는 한국, 일본, 독일, 프랑스, 덴마크,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미국 등 8개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고, 현재도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계 현대 및 동시대 미술 작가 18명의 회화, 사진, 설치, 영상, 애니메이션, 조각, 드로잉 등 다양한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참여 작가로는 갈라 포라스-김(미국 로스앤젤레스), 글렌 모리, 줄리 모리(미국 콜로라도), 김수자(한국 서울), 김희주(미국 코네티컷), 다프네 난 르 세르장(프랑스 파리), 민영순(미국 로스앤젤레스), 박유아(한국 서울/ 미국 뉴욕), 박이소(한국 서울/ 미국 뉴욕), 백남준(한국 서울/ 미국 뉴욕), 윤진미(캐나다 벤쿠버), 이가경(미국 브루클린), 이영주(미국 캠브리즈), 이현희(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제인 진 카이젠(덴마크 코펜하겐), 최성호(미국 뉴욕), 케이트 허스 리(독일 베를린), 하전남(한국 서울/ 일본 나가노)이 있다.
다양한 이민 형태가 존재하는 오늘날 참여 작가들의 작품은 그 형태와 내용이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태호 감독에 따르면 전시된 작품들은 “모국에 대한 어떤 문화적 기억(백남준, 케이트 허스 리 등), 정치적/사회적 우려와 연민(최성호, 민영순, 박유아 등), 개인 혹은 집단의 슬픔과 그리움(진미 윤, 제인 진 카이젠, 하전남, 이현희 등), 역사에 대한 분노와 고발(글렌 모리, 줄리 모리, 이가경, 김희주 등) 등의 정서”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한민족의 혈통을 이어받은 이들은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이유로 모국을 떠나 타자로 그리고 비주류로 살아가면서 나름의 민족적 정체성을 질문한다. 특히 참여 작가 18명 중 4명은 1980년대 유아기에 해외로 입양을 간 작가들로 누구보다도 ‘나는 누구이며, 한국인은 어떤 사람인가’를 질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태호 전시 감독은 “한국 작가들의 시각으로 본 우리만의 ‘디아스포라’를 살피기보다 해외에 있는 한국 혈통 작가인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서 들어 보는 것이 더 유의미하겠다고 생각해 국내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작가들을 이번 기회에 모셨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는 한민족 혈통이라는 연결점이 있는 동시에 국외자인 사람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반도의 상황을 동시대 예술로 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세계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상황을 살펴볼 기회를 얻게 된다. 즉, 한국 디아스포라의 현재 상황과 그 문화적 성격을 전망해 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