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미술계는 그야말로 ‘블록버스터 전성시대’다. 반 고흐, 호퍼, 뭉크, 바스키아 등 해외 유명 작가들의 전시가 연이어 열리며, 마치 글로벌 스타들의 투어 콘서트를 방불케 한다.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은 개막 두 달 만에 35만 명이 방문했고,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는 티켓을 구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이는 표면적으로 미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과연 한국 미술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 포스터


해외 유명 작가 수입 이벤트, 한국 미술의 성장인가?

2019년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가 3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끌어모은 이후, 해외 유명 작가들의 전시는 하나의 흥행 공식이 되었다. 기획사들은 바스키아, 카텔란, 호퍼, 뭉크 등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작가들의 작품을 수입해 대형 전시를 기획하고, 미술관들은 이와 같은 전시를 반복적으로 개최하며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한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미술은 철저히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데이빗 호크니 전시장 앞 포토존

대형 블록버스터 전시는 국내 작가들의 작업과 실험적 미술이 설 자리를 좁히며, 한국 동시대미술이 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미술관들은 신진 작가나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층위를 탐구하기보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해외 작가들의 전시를 수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전시 기획의 방향성 문제가 아니라, 한국 미술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다.


 
상업적 이벤트로 변질된 전시 – 미술의 상품화

이러한 블록버스터 전시는 단순한 미술 전시가 아니라, 철저히 기획된 상업적 이벤트에 가깝다. 전시의 본질이 작품 감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반 고흐를 봤다” “바스키아 전시를 갔다”는 인증 문화와 소셜미디어 공유가 중심이 된다. 관객들은 작품을 이해하고 음미하기보다, 화려한 전시 공간에서 사진을 찍고 이를 SNS에 올리는 행위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서울시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 관람객이 길게 줄 서 있다. / ©HMG그룹

전시 기획사들은 입장권 판매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화려한 전시장 구성과 감각적인 조명을 활용해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한 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이러한 경향은 미술을 본질적 가치가 아닌 단순한 상품으로 취급하는 문제를 초래하며, 미술관은 점점 교육적 기능과 비평적 역할을 상실하고 있다.



과거 일본의 사례 – 버블 경제 속 블록버스터 전시 붐의 교훈

1980~90년대 일본도 한국과 유사한 상황을 겪었다. 경제 호황기였던 ‘버블 경제’ 시절, 일본은 대규모 미술품 수입과 블록버스터 전시 붐을 경험했다. 일본의 기업과 개인 투자자들은 미술품을 일종의 투자 수단으로 인식했고,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수집해 대형 전시를 개최했다.

일본의 미술 시장 지배력은 1990년 반 고흐의 〈Dr. 가셰의 초상〉 이 8,250만 달러에 판매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 ©Peter Morgan, Associated Press

1990년 반 고흐의 〈Dr. 가셰의 초상〉이 8,250만 달러에 낙찰된 것은 이러한 흐름의 정점이었다. 그러나 버블 경제가 붕괴하면서, 일본의 미술 시장도 급격히 침체되었고, 많은 작품이 다시 해외로 유출되거나 가치가 하락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 사례는 블록버스터 전시의 상업화가 미술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자국의 미술 문화를 성장시키기보다 해외에서 검증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소비하는 데 집중할 경우, 단기적인 경제적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미술 생태계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시대에 뒤처진 작가 전시, 단순한 ‘이벤트’가 된 미술

현재 한국에서 열리는 블록버스터 전시들의 또 다른 문제는, 전시되는 작가들이 시대적으로 이미 한참 지난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19세기 후기 인상파, 20세기 초·중반 모더니즘 작가들의 전시는 여전히 흥행 보증수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는 한국 미술이 동시대의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기보다, 이미 역사적으로 정리된 해외 작가들의 유산을 반복 소비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 고흐, 바스키아, 뭉크 등의 작품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왜 지금 이 전시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현재 한국의 블록버스터 전시들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기보다, 단순히 유명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작품을 다시금 수입해 보여주는 것에 머물러 있다. 이는 미술을 학문적 탐구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흥행과 소비의 대상으로만 접근하는 전시 기획 방식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미술은 감각의 유행이 아닌 ‘사유’의 대상이어야 한다

블록버스터 전시는 대중적 관심을 끌어올리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흐름처럼 미술이 단순한 인증 소비의 대상이 되고, 해외 유명 작가들의 전시가 반복되는 구조라면 한국 미술의 성장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미술관과 기획사들은 ‘어떤 전시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다시 해야 한다. 미술관이 단순한 흥행 플랫폼이 아니라, 비평적 담론을 형성하고 예술적 탐구를 지원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지금과 같은 수입 중심의 블록버스터 전시 구조는 한국 미술의 토양을 점점 메마르게 만들 수밖에 없다.

미술은 단순한 체험형 콘텐츠가 아니라, 깊이 있는 사유와 감상의 대상이어야 한다. 미술관과 전시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동시대 예술과 사회적 맥락을 연결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지금의 블록버스터 전시 붐이 미술의 외형적 성장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미술적 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 시점이다.

김종호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였다. 1996-2006년까지 갤러리서미 큐레이터, 카이스갤러리 기획실장, 아트센터나비 학예연구팀장, 갤러리현대 디렉터, 가나뉴욕 큐레이터로 일하였고, 2008-2017까지 두산갤러리 서울 & 뉴욕, 두산레지던시 뉴욕의 총괄 디렉터로서 뉴욕에서 일하며 한국 동시대 작가들을 현지에 소개하였다. 2017년 귀국 후 아트 컨설턴트로서 미술교육과 컬렉션 컨설팅 및 각 종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1년 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설립 후 한국 동시대 미술의 세계진출을 위한 플랫폼 K-ARTNOW.COM과 K-ARTIST.COM 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