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화 화백(1932-2026) ⓒ갤러리현대

2026년 1월 28일,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정상화(1932-2026) 화백이 향년 93세에 숙환으로 영면에 들었다.
 
한국 1세대 전위미술 작가인 정상화는 반복적으로 들어내고 메꾸고 물감을 겹쳐 발라 제작하는 자신만의 기법인 ‘들어내기(peeling off)와 메꾸기(filling in)’를 고안하며 자신만의 화면을 완성했다. 이 독창적인 과정으로 완성된 작품은 그의 신체적, 정신적 노동 시간이 그대로 녹아져 있는 결과물이다.


《정상화: 무한한 숨결》 전시 전경(갤러리현대, 2023) ⓒ갤러리현대

한국전쟁이 진행되던 시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한 고인은 대상을 재현하는 구상 회화를 주로 그렸고, 1950년대 중후반 당대 전위 미술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던 현대미술가협회와 악튀엘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던 시기에는 6.25를 겪으면서 느꼈던 아픔을 앵포르멜 경향의 전위 미술로 표현하는 것에 몰두해 있었다.
 
물감을 던지고, 뿌리고, 부풀려서 비틀고 뜯어내고, 메우는 등 전후 어두운 사회적 분위기를 격동적인 행위와 강렬한 색채로 화폭에 담아냈다.
 
1969년 일본 고베로 이주한 그는 내용 면에서도 기존의 강렬한 색채와 거친 마티에르를 사용한 비정형의 앵포르멜식 회화에서 벗어나 평면에 깊이를 탐구하며 변화를 모색했다. 정상화는 이 시기 엄격하게 색을 절제하고, 내용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평면화를 추구하며 1973년부터 단색의 그리드 회화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정상화 화백(1932-2026) ⓒ갤러리현대

1978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작업에 몰두했고, 1992년 귀국해 경기도 여주에 작업실을 짓고 줄곧 한국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왔다. 2015년에는 그의 작품 〈무제 05-3-25〉이 11억4천200만원에 낙찰돼 이우환에 이어 두 번째로 생존 작가 중 작품 가격이 10억원이 넘는 '10억원 클럽'에 속하기도 했다.
 
그는 2023년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화가로서 하고 싶은 거 다 했다. 그런데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 더 잘해야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다"며 "예술이란 끝없는 것을 시작하는 것. 내가 끝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것을 하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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